저, 평창에서 왔는데요?

통영 바다에 뚝 떨어진 그의 1년살이

by MinChive

2019년 2월 25일, 첫 발령지에 떨어진 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거긴 어때?’ 였다.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은 언제나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키면서도, 거짓말은 아닌 대답, ‘여행 온 기분으로 살고 있어요.’ 였다. 그러면 ‘와 좋겠다... 바다도 보이고, 한적하고, 집에서 너무 먼 거 빼면 괜찮네.’ 라는 반응도 심심찮게 받을 수 있었다. 그러면 나는 ‘그 여행이 그 여행이 아닌데...’라는 생각과 현대 기술이 아직은 내가 영상통화를 하지 않는 이상 지금 내 모습을 영상에 담아 상대방에게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핸드폰을 내려 놓았다.


20세기 후반을 지나며 많이 간단해졌지만 그전까지 ‘여행’은 언제나 시간과 비용이 많이들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일생일대의 고역이었다. 영어 ‘travel’이 여행이라는 의미로 쓰인 것은 14세기 무렵으로, 고대 프랑스어인 ‘travail’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단어를 찬찬히 뜯어보면 우리가 ‘여행’하면 떠올리는 ‘힐링’,‘즐거움’,‘해방감’ 등의 이미지랑은 다른 의미가 있다. ‘노동’,‘수고’,‘고통’ 같은 의미가 담겨져 있을 뿐이다. 심지어 현대 영어에서는 이 ‘travail’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는데, ‘in travail’ 이라고 하면 ‘산고로 고통받다’ 같은 의미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을 쳐서 ‘객사’나 ‘역마살’이 나오면 불길하게 생각했다. 서양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통 그들의 여행은 삶의 터전을 빼앗긴 자들의 피난이거나,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한 경우들이었다. 종교적인 순례도 있었지만 말 그대로 험난하고 고생스러웠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통영 발령은 그런 느낌이었다. 분명히 쉽지 않을 것을 알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의무가 있는 여행이자, 같은 한국임에도 불구하고, 해외만큼의 낯섦이 존재하는 1년짜리 여행. 눈에는 사방이 산이었던 강원도의 풍경이 바다로 변했고, 코에는 산의 흙내음 보다는 약간은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났으며, 입에는 각종 산나물, 소/돼지 보다는 통영의 조개, 굴, 생선의 맛을 더 볼 수 있고, 마지막으로 귀에는 tv에서 봤을 때는 뭔가 특유의 억양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사투리, 기관총 소리처럼 귀에 때려박는 경상도 사투리 특유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같은 한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제까지 겪은 환경과 '반대'인 이 도시에 갑자기 뚝 떨어진 느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처음에는 계장님들이 부르는 '우주임'이라는 호칭이 매번 '우주인'이라고 들렸다.)

이제부터 이야기 할 것들은 이 짧다면 짧았고 길다면 긴 1년 짜리 외로운 타지 여행중에 반짝이던 순간들에 대해서, 혹은 이곳에 사는 내가 본 사람들에 대해서, 혹은 어떤 장소들에 대해서, 혹은 이곳의 아쉬운 점들이라든지... 어떻게 보면 밖에서 온 '외지인'이라 보기에도 애매하고 '주민'이라 부르기엔 더더욱 애매한 중간자의 입장에서 본 '통영' 이야기를 한번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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