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피랑을 이야기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서피랑 이야기를 하게 된다. 통영 얘기를 하다보면 제일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동피랑이 더 좋아, 서피랑이 더 좋아?'일 만큼 외지 사람들도 동/서피랑은 한 묶음처럼 생각한다.
동피랑마을이 먼저 생기고, 서피랑마을이 나중에 생긴 곳이다. 동과 서라는 이름 때문에 두 마을 간의 거리가 좀 멀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사실 두 마을 간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통영은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수군이 활약했던 거점 중 한 곳이었다. 조선 선조 37년(1604) 삼도수군통제사 이경준이 지금의 통영으로 통제영을 옮긴 다음 크게 번성하다가, 숙종 4년(1678) 윤천뢰 통제사 때 항구 뒷산을 빙 둘러싸는 통영성을 건립하였다. 통영성은 남쪽으로 통영항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조성한 성(城)으로, 남해안 일대 최고의 군사적 거점 기능을 했다.
이 통영성 동쪽 언덕 위에 동포루, 서쪽 언덕 위에 서포루, 북쪽 언덕 위에 북포루를 세워 망루 겸 전망대 역할을 했는데, 바로 이 동포루 아랫마을이 지금의 동피랑마을, 서포루 아랫마을이 지금의 서피랑마을이다.
서피랑마을 아래를 지나는 도로에 '서피랑 이야기'라는 안내판이 있다. 이 안내판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서면 벽화들이 나타나고, 눈앞에 긴 계단이 막아선다. 99계단이다. 계단 맨 아래에 '여기는 서피랑, 99계단입니다'라는 글씨가 친절하게 써져 있다.
하늘색 바탕색을 칠한 계단을 오르면 중간 중간 사진을 찍을만한 포인트들이 있고, 다양한 색깔의 계단이 길게 이어진다. 왼쪽으로는 오래된 집과 벽이 이어지는데, 이곳에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계단과 벽에 그려진 그림들에는 유달리 나비가 많다. 박경리 선생님의 상징이다. 서피랑 마을은 박경리의 생가가 있는 곳이고, 곳곳에 박경리 선생님의 글이 쓰여 있다(박경리 생가는 99계단 위 언덕 너머 서포루 북쪽 세병관 가는 골목길에 있다).
계단을 끝까지 오르면 벽면에 두툼한 푸른 나무와 장미 꽃다발 벽화가 있다. 프로포즈 벽화다. 장미 꽃다발 그림이 있으니 따로 꽃을 준비할 필요 없다. 남성은 그저 무릎 꿇고 포즈만 취하면 된다. 주말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벤트 하고 기념사진을 찍는 연인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가끔 그런 분들이 부러워서 운동을 한다는 핑계를 대며 빙 둘러서 지나가곤 했다.
계단 중간에 오른쪽으로 피아노계단 가는 길이 있다. 가파른 언덕 측면에 난 작은 길을 산책로 삼아 걸아가면 명물 피아노계단이 나온다. 음악가 윤이상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계단이다. 200년 된 후박나무 옆 피아노 건반이 그려진 계단인데, 실제로 계단마다 음정이 있어 밟을 때마다 소리를 낸다. (사실 관리가 조금 허술해서인지, 안 눌리는 계단이 있다.) 가끔 가다 보면 학창시절 간단한 동요 같은 걸 정성스럽게 연주하는 분들을 볼 수 있다.
조금 더 발품을 팔아 길 따라 오르면 서포루다. 갑자기 시야가 트이고 통영 시내와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동쪽 동피랑마을 위 동포루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양쪽 다 통영 강구안 바다를 내려다보는 맛이 시원하다. 다만 서포루는 성벽이 남아있어 그 벽이 주는 옛스러운 분위기가 있다.
동피랑마을이 먼저 벽화마을로 만들어지고, 동피랑마을이 전국적인 명성을 탄 이후 서피랑마을도 벽화마을로 변모하였지만, 막상 분위기는 동피랑이 더 젊은 느낌이고 서피랑마을은 좀 더 뭔가 원숙한 느낌의 마을이다. 아무래도 박경리 생가 같은 곳과 써있는 글귀들이 주는 화두들, 혹은 동피랑보다는 덜 알려져 사람들의 발길이 그나마 적다는 점, 남겨져 있는 성벽이 주는 고즈넉한 분위기, 박경리 학교 어르신들이 써놓으신 정말 '살아온만큼 써진다'라는 말이 이해가 되게 만드는 글들이 참 많다.
다시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동피랑이 더 좋아, 서피랑이 더 좋아?'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서피랑이 더 좋다. 조금 더 첨언을 하자면, "생각과 사색의 시간이 필요하다면 서피랑을, 벽화 자체의 아름다움과 공간의 활기를 즐기고 싶다면 동피랑이 더 좋아." 이게 가장 정답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