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Chive Nov 19. 2023

프롤로그  - 내 방에 계신 사장님들

잃어버린 시간    -자크 프레베르

공장 앞에서 

노동자는 문득 발을 멈춘다

화창한 날씨가 옷깃을 당긴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빨갛고 둥그런 태양을

하늘에서 미소 짓는 태양을

친근하게 바라본다

이봐 태양아

참으로 바보짓이 아닐까

이런 날 하루를 몽땅

사장한테 바친다는 건



    새벽 1시, 어제라기도 오늘이라기도 뭐한 시간, 잠이 들지 못하고 뒤척이고 있다. 원인은 손에 들린 스마트폰. 처음 시작은 코로나였다. '어차피 이 시국(코로나)에 나가지는 못하니까 이런 재미라도...'라는 생각으로 처음으로 유튜브 프리미엄을 결재하고, 넷플릭스와 온갖 OTT의 달인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1년이었다. 마약은 안해봤지만, 마약만큼이나 디지털 중독은 무서웠다.


    언제부턴가 나의 삶을 내가 컨트롤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하는 일은 오지도 않는 카톡과, 나와는 상관없는 새로운 소식이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나마 관련이 있다면 그 날의 날씨 정도. 직장에서는 하루 종일 엑셀표의 숫자들과 싸운다. 정신없는 하루가 끝이 나고 집에 들어가면 약쟁이처럼 습관적으로 노트북을 켠다. 어제도 보고 그제도 본 유튜브에서 또다른 자극을 찾는다. 별게 없어도 나올때까지 찾는다. 그래야 혼자 있는 집이 허전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있다보니 이렇게 1시가 된다. 어느 순간 직장에서 미스가 많아지고, 내 주변에 늘 만나던 친구들은 코로나 시기가 끝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몸은 늘 피곤했고, 그렇게 나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망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급작스럽게 디지털기기 사용량이 엄청나게 늘어버린 2020년이 지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2023년도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하고 있다. 잠이 줄고, 살은 오르고, 방은 점점 지저분해지고 있었다. 배우던 기타는 저기 어디 구석에 박혀서 먼지를 쐬고 있었다. 회사에서 쓰는 시간도 많은 편인 내 삶에 또다른 사장님, 디지털과의 협상을 시작해야 할 순간이란 걸 깨달았다. 직장인의 삶에 사장은 한명이면 족하다 못해 차고 넘치므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