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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Nov 26. 2023

자연인도 완벽히 디지털과 헤어질 수 없다.

할아버지와 PC의 첫 만남으로 보는 우리의 디지털 현주소

   우리 할아버지하면 생각나는 단어를 말해보라고 하면 몇가지가 있다. 켈트족 신앙에 나오는 자연을 숭배하는 '드루이드'라든지, MBN 예능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자연인들이라든지, 혹은 리그 오브 레전드에 나오는 캐릭터 중 하나인 정글의 아버지 '아이번'이라든지, 친환경을 넘어서 나무와 산 그 자체가 되어버린 어떤 노인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그게 우리 할아버지다. 


난 이 캐릭터를 볼 때마다 왜 이렇게 우리 할아버지가 생각나나 모르겠다.


   할아버지의 특기는 죽은 나무 살리기, 접붙이기, 꺾꽂이 등 온갖 나무에 관련된 농경기술, 그리고 목공예가 있다. 농사에서 한가닥 한다는 이 동네 할아버님들 사이에서도 인정을 받고, 하루는 옆에 있는 서울대 평창캠퍼스 교수님도 보고 신기하다고 구경을 왔다 가시는 것을 보니, 확실히 할아버지는 내가 모를뿐 그 분야에서 한가닥 하시는 분이신 것은 확실한듯하다. 물론, 그만큼 아직도 나무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어린 손주가 보기에도 대단하셨고, 지금도 여전하시다. 이제 여든이 넘어가시는 연세지만 자연이 함께하는 삶이 퍽 좋으신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혼자서 살겠다 하시는 고집에 결국 우리 부모님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귀농을 하게된 원인이 되기도 하셨다.


   그런 자연인 우리 할아버지에게도 큰 변화를 줄 도구가 찾아왔다. 바로 PC와 와이파이다. 아마 수국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늘 종이책이나 종묘사에서 나오는 자료를 보셨는데, 이제는 그런 책들도 다 작물 키우는 법에 대해 영상 링크나 전자책 QR이 나오는 시대다보니 많이 답답하셨던 모양이다. 그 마약같은 도구가 할아버지 댁에 들어온 뒤 할아버지는 너튜브의 친구가 되셨고, 우리집 너튜브의 프리미엄 계정은 같이 쓰기 때문에 알고리즘이 나한테 알려준다. 할아버지의 요즘 관심사가 무엇인지, 요즘은 어떤 작물/나무에 꽂히셨는지. 


   이게 지금 우리가 사는 현주소다. 팔순이 넘어가는 자연인도 디지털을 사용 '해야만'한다. 나는 그래서 간혹 어르신들 중에 인터넷 중독에 대해 '세대'가 달라서 너네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분들을 보게되는데, 나는 이 말씀에 강하게 반대한다. 이건 세대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시대'가 바뀐 것이다. 실제로 지하철에도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지하철에서 내리시는 그 순간까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장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 제목과는 달리 우리는 사실 디지털로부터 완전하게 헤어질 수 없으며, 헤어져서도 안된다. 이게 내가 이 1년 남짓한 디지털 디톡스를 여러번 실패하고 1차적으로 얻어낸 내 첫 결론이다.


무엇이 할아버지와 나를 갈랐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다행히 매우 균형잡힌 디지털 생활을 하고 계신다. 도대체 우리 할아버지는 어떻게 인터넷 중독까지 가지 않으시고, 나는 어쩌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지 못하는 사람이 됐을까? 가장 직관적으로 할 수 있는 대답은 여러가지가 있다. 아무래도 할아버지는 인터넷이 익숙하지 않은 세대고, 나는 어려서부터 온갖 컴퓨터 게임으로 다져진 세대라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이유일 것이고, 어쨌든 할아버지는 댁에 있는 PC만 사용하는 반면, 휴대용 기기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나는 많이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아니면, 할아버지의 연세를 생각했을 때, 오랜시간 모니터를 보시는 것 자체가 이미 체력적으로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여러 이유로 할아버지는 장시간 컴퓨터를 안 하신다기 보다는 '못' 하시는 것이 아닌가 막연히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게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한 달이 채 지나지도 않았다. 어느 날 문득 할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스치듯 "야... 그... 너튜브 그거 한번 보기 시작하니까 시간이 너무 빨리 가더라, 그냥 잠깐 사이에 2~3시간은 후딱 가는게..." 라고 하시던 것을 보고, 그 유혹에 빠지는 것은 어르신들이라고 나랑 별반 다를게 없다는 것을 알았다. 며칠동안 컴퓨터와 연애하듯 저녁식사 후 자연스럽게 컴퓨터 책상에 앉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결국 할아버지도 나와 같은 길을 가시겠구나 싶었다. 나의 두번째 착각이었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한 한달동안 꼬박 붙어계시더니, 그 다음부터는 마치 싫증난 장난감을 갖고 놀지 않는 어린아이들처럼 알아서 컴퓨터 의자 밖으로 나오셨다.


    결국, '나이, 세대'의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할아버지와 나라는 '사람'의 차이라는 것을 알게된 순간, 내 안에 무언가가 무너졌다. 디지털과 적당한 헤어짐을 유지하는 삶. 내가 그렇게 원하던 것을 한달만에 만들어내는 할아버지,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게 그냥 연륜, 세월의 지혜 뭐 그런 말로 설명이 가능한가? 그날부터 나는 우리 할아버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인터넷으로 무엇을 하시는가? 사용 시간대는 어떻게 되시며, 보시는 유튜브 채널은 무엇인가를 하나하나 다 로그를 뒤적이다가 한가지 새삼스러우면서 당연한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결국 문제는 기준과 목표의 유무였다  

     우리가 디지털 세상에 들어가면서 늘 놓치는 것은 '인터넷을 왜 쓰는가? 너튜브를 왜 보는가?' 인듯하다. 다들 아마 너튜브나 검색창을 띄울 때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채널의 영상을 보거나, 찾아야 할 자료를 찾거나, 해야 할 은행업무가 있다거나 등 여러가지 일상적인 것을 우리는 이제 인터넷으로 해결을 한다. 근데, 문제는 그것을 하러 들어간 화면 옆에 뜨는 관련영상이 있고, 관련 검색어가 보이고, 내 눈을 끄는 다른 금융상품 팝업들이 어지럽게 펼쳐지고... 우리는 그 유혹을 뿌리치기가 너무 어렵다. 그렇게 이것저것 클릭을 하다보면, 등대를 잃고 표류하는 배처럼 인터넷 바다에 조난을 당한다. 


    우리 할아버지의 해결책은 여기서부터 일단 시작을 한다. 일단, 할아버지는 습관처럼 컴퓨터를 키지 않으신다. 꼭 찾아야만 할 것만 보고 창을 한번 다 닫으신다. 절대 유튜브 영상이 비슷한 주제로 연결이 되지 않으신다. 이것은 인터넷 검색을 하시거나 신문사에 들어가 기사를 찾으실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옆에 노트가 있으신데, 여기에는 할아버지가 오늘 검색해서 알게된 것들과 어떤 영상이었고, 어떤 자료였는지 등이 적혀있고, 소름돋게도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사용하였는지에 대한 것이 쓰여 있었다. 한마디로 디지털 사용 일지 같은 것이다. 마치 군대에 지금도 있을지 모를 사지방(사이버지식정보방) 일지의 심화판이다.(누가 몇 시에 들어와서 몇 시에 나가는지 관리하는 장부다.) 여쭤보니 하도 옆길로 새기도 하고, 까먹으시는 것이 많아서 그러시다고 한다. 


    그게 며칠이 가더니 어느샌가 카테고리가 생기고(밭, 나무, 목공예, 은행 등) 확장되는 것을 보며, 나에게는 어떤 실마리가 되었다. 그래, 여기가 시작점이구나. 어차피 우리 시대에 디지털을 아예 안쓰는 것은 말도 안되니까, 일단 내가 지금 어느 상황인지 알아보는 것. 거기서 이제 필요 없는 것들을 빼며 나의 기준을 세우다 보면, 맞는 디지털 기기 사용 습관이 나올 것이고, 어느정도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균형있는 디지털 생활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정말 당연하다. 세상사 어떤 문제든 문제가 뭔지 파악하고, 기본부터 시작하라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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