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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Dec 03. 2023

너 자신을 알라

내 디지털 생활 분석하기

너 자신을 알라, 아니 알아야만 한다. 

   '너 자신을 알라 (영어: Know Thyself / 그리스어: γνῶθι σεαυτόν)' 너무나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이다. 보통 일상에서는 "너나 잘하세요." 란 뉘앙스로 많이 쓰는 말이다. 혹은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경고로 쓰는 말이기도 하다. 이 문구는 사실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라기보다는 소크라테스보다 현명한 사람이 없다고 선포한 델포이 신전 현판에 써있던 문구다. 요즘 시대로 보면 절이나 교회 간판에 걸린 (요즘은 LED 전광판에 많이 지나가는) 불경이나 성경의 구절같은 것이다. 물론 소크라테스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속 편한 알키비아데스, 부디 나의 말과 델피에 있는 글귀를 받아들여 자네 자신을 알도록 하게. 적수는 이들이지 자네가 생각하는 자(아테네 정치가)들이 아니니 말일세. 돌봄과 기술(앎)이 아니라면, 다른 그 무엇으로도 그들을 능가할 수 없을 걸세."

"그러니 자신을 알라고 명하는 자는 우리에게 혼을 알라고 시키는 걸세. ··· 자신을 알려면, 혼을 들여다봐야 하고, 무엇보다도 혼의 훌륭함, 즉 지혜가 나타나는 혼의 이 영역을 들여다봐야 하네."

- 김주일, 정준영 역, 《알키비아데스Ⅰ, Ⅱ》 이제이북스(2007).


   결국 소크라테스는 단순히 겸손하라는 말보다 '너 자신의 무지를 알고, 약함을 알고, 너의 혼(정신)을 지켜라' 라는 의미로 이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듯이 이게 어마어마하게 어렵다. 


   건강한 디지털 생활에 대한 에세이에 이런 거창한 이야기를 던진 이유는 건강한 디지털 생활이 소크라테스가 말한 지혜, 혼의 훌륭함을 들여다보는데 굉장히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고, 그 건강한 생활을 위해 가는 첫번째 단계가 냉정하게 나를 들여다보고 평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일지를 써보자, 매우 가감없고 솔직하게

  앞 장에서 다뤘던 할아버지의 디지털 일지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서 기록을 해봤다. 디지털 일지, 아주 단순하게 얘기를 하면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내가 전자기기로 뭘 했나를 적는 일이다. 사실 디지털 일지를 쓰다보면 자괴감이 많이 들 때가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내가 이 일지를 썼던 첫 날 기록은 이렇다.

06:30 ~ 07:30 유튜브 시청, 신문사 사이트 확인 
- 뉴스,날씨 확인 / 쇼츠들 시청
19:00 ~ 22:00 유튜브 시청
- 봤던 것들: 슈카월드 밀린 영상 시청, 드라마 요약 정리 유튜브 시청, 그랩더기타(기타 강의 채널) 
22:00~23:30 로스트아크(게임) 

   이때 머리 한 쪽에서는 어떤 놈이 이런 말을 한다. '뉴스나 날씨, 슈카채널, 그랩더기타(기타 강의 채널)는 빼야 하는거 아니야?' 달콤한 유혹이고, 그럴싸해 보인다. 좋아, 그러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런거를 한번 빼볼까? 뉴스, 헤드라인 뉴스만 보는데 몇 분이나 걸렸을까? 대충 로그를 보니 40분정도였다. 그리고 슈카월드도 그래, 많이 봐줬다. 이것도 빼보자. 클립 2개니까 40분이라 치고 뺐다. 그랩더기타...도 뭘 배우는 거니까 한번 빼볼까? 이거는 코드 잡는 것만 보고 바로 껐으니까, 한 20분 정도를 빼자. 그렇게 해도 5시간 - 100분 = 4시간 20분 정도를 그것도 평일에 유튜브에 썼다. 8시간을 회사에서 썼다는 것을 생각하면, 적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면 주말은 어떨까? 일지의 첫 주말은 이렇게 되어있다. 

08:00~09:00 아침식사와 함께 유퀴즈 시청(아, 내 자취방에는 tv는 없다.)
09:00~13:00 넷플릭스 영화 시청, 게임 관련 유튜브 시청
13:00~22:00 티빙에서 밀린 예능들 시청, lck(롤 프로리그) 시청


    심각한 건 알았는데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 '킬링타임이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 글을 쓰면 정말 맛깔나게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난 나를 너무나도 고평가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솔직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평일에 슈카월드와 기타 채널 동영상 본 것을 시작으로 해서, 계속 머리속에는 'ooo은 나한테 정말 필요한 컨텐츠니까 빼야 해', '솔직히 ooo은 일 때문에 본건데 빼야하는거 아니야?' 부터 시작해서 전혀 상관없는 핑계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나름 주말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이 정도면 그렇게까지 난 그렇게 심한건 아니지 않나?' 근데 그 끝에 나온 답은 결국 '멍청아, 그러면 뭐가 바뀌냐?' 였다. 그렇다. 사실 가장 싫었던 것은 있는 그대로를 쓰는 것임에도 너무나도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나, 그리고 이걸 쓰면서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던 나를 보는 것이었다.


   이런 생활을 하니 살이 붙고, 정신이 혼미해지지 않고 배길까? 그러니까 난 회사 업무시간을 제외하고는 정말 거의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지 않았다. 한창 스타크래프트에 미쳐있던 사춘기 청소년이 여기 아직 살아있었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부모님이라는 고삐가 있고 없고의 차이 정도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33살이 되어서야 새삼 다시 깨달았다. 이 첫걸음이 별거 아닌거 같지만, 사실 제일 큰 한 걸음이라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래? 

   이렇게 일지를 쓰다보니, 한동안은 이 우울감을 어떻게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커졌다. 대충 내가 그렇게 내다버린 시간들을 합하니 일주일에 꼬빡 이틀하고도 20시간, 그러니까 대략 68시간정도를 버린다는 계산이 나왔다. 근데 또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제 또 좋아질 일만 남았다는 희망이 있었다. 이보다 더 바닥이 없으리라는 생각, 오히려 그게 차분하게 나한테 시동을 걸리게 해줬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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