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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Dec 10. 2023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나니

디지털 기기와의 거리두기

   디지털 중독에서 가장 빠르게 벗어나는 길은 뭘까?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디지털 기기를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지금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자연인도 완벽히 디지털과 헤어질 수 없다' 참고) 이번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정말 여러가지 시도를 했고 여러가지 실패를 했다. 근데 그 중에 가장 효과가 있었고 유의미한 실패들을 돌이켜보면, 모순적이지만 해답은 '물리적으로 진짜 쓰레기통에 디지털 기기를 버리는 것에 가까운 방법'들이었음을 깨달았다.


일단 공간부터 나눠보자

 중독에 대해 내가 아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가 아닐까 싶다. 오디세이아는 트로이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돌아가는 10년의 여정을 담은 귀향 모험담이다. 그가 겪은 위험 중 가장 유명한 위험은 반은 여인, 반은 새인 세이렌들이었는데, 세이렌의 마법 노래는 뱃사람을 꾀어 인근 섬의 암벽에 부딪치게 했다.

   뱃사람들이 무사히 세이렌들을 지나쳐 가려면 노래를 안 듣는 수밖에 없없다. 오디세우스는 선원들에게 그들의 두 귀를 밀납으로 막고, 자신은 범선의 돛대에 묶되 자기가 풀어달라거나 도망치려고 하면 더 꽉 묶도록 했다.

   이 유명한 그리스 신화에서 나온 이야기를 볼 때, 물리적 장애물을 만들고, 나와 나의 중독 대상 사이에 거리를 두는 방법은 단순하고, 1차원적이지만, 유구한 역사를 가진 해결책었던 듯 싶다. 역사적으로 증명된 약이라고 해야할까?

    돌이켜보면, 어렸을 적에 우리 부모님들이 쓰던 방법 중에 비슷한 것들도 있다. 어느 날 학교를 다녀왔더니 컴퓨터, tv 코드가 사라져 있던 경험, 그걸 또 온 집구석을 뒤져서 기어코 찾아낸 경험, 누구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아... 물론 그런 경험이 없는 착한 유년시절을 보낸 분들도 물론 있으시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 경우, 이 숨바꼭질을 즐기는 지경까지 갔고, 그 끝은 정말로 컴퓨터가 집에서 사라지는 결과로 끝났다. 그 뒤 아버지의 사무실에 내 컴퓨터가 떡하니 놓여져 있는 것을 보고, 정말... 그때 그 기분은 지금도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다.

    그게 대략 중학생 때였으니까,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요즘,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일단 눈 앞에 전자기기를 드래곤볼처럼 나누는 식으로 여기저기에 전자기기들을 숨기기 시작했다. 사용이 끝난 맥북은 늘 옷장 안에 가거나, 핸드폰은 찬장 맨 위, 아이패드는 사무실에까지 유배를 당한 적이 있다. 아마 지금 살고 있는 주거가 원룸이 아니라 방이 좀 더 있었다면, 방 하나에 다 집어넣고 문을 잠그는 방법도 고려를 했을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이 방법이 실패한 이유는 (물론, 내 의지부족이 첫번째 이유겠지만) 일단, 방금 말한 원룸에 있다. 좁아도 너무 좁은 원룸은 치울 곳이 한정적이고 조금만 움직여도 디지털 기기를 갖고 올 수 있다. 하다못해 어디 칸막이라도 칠 공간이 있었다면 조금 결과가 좋지 않았을까 싶다. 오디세우스를 묶을 밧줄이 너무 약하고 헐겁게 묶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이 시도에서 성공한 사례는 그래서 아이패드밖에 없다. 사무실에서 지금 사는 곳은 회사 관사라 걸어서 5분도 안되는 거리에 있는데도, 그 5분이라는 장애물이 주는 효과는 엄청났다.   

나중에 이 원룸보다 더 넓은 곳으로 간다면... 이런 가벽 하나 세워놓을지도


시간제한과 결승선  

   디지털 기기와 물리적 거리를 두는 다른 방법은 시간제한과 결승선(목표기간)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일 단위, 주 단위, 월 단위, 크게는 연 단위 등으로 기준을 잡아 일정 기간으로 접근을 제한함으로써 시간적 기회를 줄이고 사용에 한계를 둘 수 있다. 예를 들어 휴일에만 쓸 거야, 주말에만 쓸 거야, 수/목은 잠시 디지털 기기 휴일을 만들거야, 9시 이후에는 절대 안 쓸 거야 등등 여러가지 방식이 있다.

   또한 시간 자체보다는 중요한 사건이나 목표 달성을 기준으로 하는 방법도 있다. 생일 때까지, 이번 시험 끝날 때까지, 이번 졸업 논문만 마치고, 이번 승진까지만 등등이 있다.

    이 방법의 장단점이 제일 잘 나타나는 것은 내가 공무원 시험을 볼 때였던 것 같다. 2년이나 시험에서 미끄러진 나는, 나한테 딱 한가지 규칙을 정했다. 시험이 끝나는 그 날까지, 내가 핸드폰과 컴퓨터를 쓸 수 있는 시간은 토요일~일요일 오전까지 대략 1.5일 정도로 잡는다. 그 다짐대로 나는 2018년에 합격을 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입사 첫 해에 규칙을 새로 새웠다. 딱 한줄이 생겼다. '퇴근 후 10시까지는 써도 된다' 난 오늘의 일을 끝냈으니까, 개판만 되지 않을 정도면 되지 않을까?

    그렇다, 이 방법은 장점이 확실하다. 목표지점이 있기 때문에 거기까지 가는데는 아주 탁월한 효과가 있다. 인간의 자제력이 무한함을 난 그때 처음 깨달은듯하다. 단점은 아무리 자제력이 무한한 사람일지라도, 내가 중독된 무언가에 접근을 다시 시작하는 순간 이성은 완벽하게 마비가 된다. 디지털을 절제해서 생길 장기적인 보상과 유튜브 쇼츠가 주는 즉각적인 보상에 대한 평가에 대해, 확실하게 전자가 우세함을 알지만 내 손가락은 빨간색 플레이 버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게 문제다. 이 방법은 언제나 '끝'이 존재한다는 것.


디지털 천라지망

    천라지망(天羅地網)이라는 말이 있다. 직역으로는 하늘의 그물, 땅의 그물이라고 해석이 되고 보통 도저히 벗어나기 힘든 경계망이나 재액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무협지에서 이 단어가 나오면 보통 주인공의 위기다. 중국의 cctv 감시 체계 시스템 이름인 '텐왕(天網)'도 여기서 나온 이름이고, 우리가 쓰는 '망라하다'도 여기서 나온 단어다. 즉, 빠지는 것 없이 모든 것을 제어하고 통제한다는 의미를 가진 답답한 느낌의 단어다.

그러나, 지금부터 우리가 만들 그물은 촘촘할수록 좋다

    내가 했던 마지막 방법은, 그리고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방식은 이거다. 앞장에서 만들었던(2장 '너 자신을 알라' 참고) 디지털 사용일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한테 허락하는 유형의 디지털 사용과 허락해서는 안될 디지털 사용 내역이 보인다. 예를 들어, 나는 컴퓨터 게임인 스타크래프트와 리그 오브 레전드(편의상 줄여서 '롤'이라고 하자)의 열렬한 팬이다. 한국리그 뿐만 아니라 중국리그, 유럽리그까지 챙겨볼 정도로 광팬이다. 승진 시험 전날에도 밤 늦게까지 롤 경기를 볼 정도였다.

   이걸 끊는다고 쳐보자. 그러면 피해야 할 것이 유튜브와 온갖 OTT시대 이전이라면, 게임 자체만 끊어내도 충분했다. 지금은 아니다. 관련된 모든 것을 끊어내야 한다. 처음에는 하도 그걸 잊어서 아예 포스트잇에 한번 쭉 적어봤다.

* 보지 말아야 할 것들 정리*

- 각종 리그의 게임 경기
 - 유튜브 동영상
- 온갖 언론사에서 맞춤형으로 던져주는 관련 기사
- 관련 사이트(OP.GG, 인벤 등) 등

한마디로 카테고리를 하나 정했으면,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끊어내는 방식이다. 그 카테고리에 있어서는 절대 어떤 것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모든 것을 묶어내는 천라지망을 만들어 내야만 한다.

    이 방법이 그나마 성공에 가까운 방법이었다. 다만 처음이 굉장히 힘들다. 지금은 많이 알려진 마시멜로 실험에 대해서 우리는 마시멜로를 위해 참고 기다릴 수 있었던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좋은 SAT 점수와 높은 학업 성취도를 보였고, 대체로 인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적응력이 좋은 성인이 되었다는 연구결과만 알고 있다.(이 연구의 해석상/실험 설계상 오류에 대해서는 지금은 밝혀진 것이 있지만, 여기서는 잠시 접어두자. 실제로 여전히 이 실험이 아니더라도, 인내력이 높을수록 경제적 수입이나 인간관계의 원만함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증명한 실험은 많으니까)

    여기에는 덜 알려진 세부적인 관찰 기록이 있다. "아이들은 양손으로 두 눈을 가리거나 쟁반을 못 보게 등을 돌렸으며... 책상을 차기 시작하거나, 땋은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마시멜로를 마치 작은 박제동물인 양 쓰다듬었다." 그 짧은 시간에 아이의 무지막지한 괴로움과 고뇌가 보인다. 나도 저랬다. 내 한계는 딱 3일이었다. 작심삼일, 그러니까 수요일은 나한테 가장 힘들고 괴로운 날이었다. 이 방법의 포인트는 그거다. 그 모든 것을 그냥 대책없이 '버텨'야만한다. 가장 완고한 방식이고, 가장 힘든 방식이다. 자기 자신을 막아선다는 것은 어딘가 비극적이고 안쓰럽기 마련인가보다.


너를 묶어라, 그리하면 자유케 될지니

   세가지 모두 어쨌든 맥락은 같다. 일단 자기 자신을 묶는 작업이고, 비워내는 작업이다. 난 지금도 첫번째 방법과 세번째 방법을 애용하고 있다. 지루하고 답답하다. 심지어 술, 담배 끊는거처럼 손발을 덜덜 떨수도 있다. 그러다 지쳐서 한 3일차쯤에 결국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꺼내는 나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그렇게 하다보면 근육 단련하듯이 조금씩 나아진다. 확실한건 이 지루하고 답답한 시간이 지나고 보니, 중독의 영역에서 만큼은 벗어났다는 확신이 드는 날이 오더라는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자기를 묶는 대신에 세이렌의 노래는 들었다. 적어도 그 노래를 들었을 때는 행복했으리라. 나 역시도 나를 밧줄에 꽁꽁 묶어 버렸지만, 그 상황에 대해 초반에 느끼던 답답함이나 강박은 많이 없어진듯하다. 처음에는 물리적으로 디지털과 떨어트리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내 안에 어떤 법칙 비스무리한 것이 생기고, 그걸 어기지 않는 한 나는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다. 꽁꽁 묶었더니 오히려 자유로워졌다. 일단 속는 셈 치고 한번 나를 묶어보자,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생기고, 나를 비워내보자. 비운 자리에 편안함이 들어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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