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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Dec 24. 2023

비워진 자리를 좋은 것으로 채우기

   디지털을 이렇게 끊어내고 비우다보면, 시간이 남는다. 나처럼 과도하게 디지털에 쏟는 시간이 많았던 사람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뭐든 처음이 힘들다고, 그 시간이 세상 지루하고, 앞에서 말했듯 외로울 수도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 시간은 더 좋은 것으로 채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보통 그 시간을 남기면 결국 다시 디지털 기기로 회귀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일어나서 스마트폰 대신 시작한 것

    하루의 시작은 중요하다. 원래 내 아침은 이랬다.  알람은 스마트폰에 해놓기 때문에 이걸 손에 쥔 상태로 애초에 아침이 시작된다. 일반 가정집에서 tv 아침뉴스 틀어놓고 출근준비를 하듯이 나는 유튜브를 튼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미 하루가 집중력이 흐트러진 채로 시작을 한다. 출근 준비 시간도 늘어난다. 생각해보면 학교 다닐 때 내 등교준비 시간은 길어봐야 40~50분이었던거 같은데, 이제는 출근 준비하는데 기본 1시간은 잡고 있는 나를 보면서 조금 흠칫했다. 달라진 것은 역시 딱 하나, 디지털 기기의 사용 여부였다. 그때만 해도 모든 것이 간단했다. 일어나서 쓰잘데기 없는 메일 체크와 카톡메시지 체크를 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어떤 영상물을 보는 시간이 없었다.



    그걸 떠올리며 한번 출근 준비 자체에만 집중을 해봤다. 아침을 먹으면서 아무것도 안 보고 먹는게 얼마만인가 싶었다. 심심하고 허전했다. 금단현상처럼 손이 떨리지는 않았지만, 그 적막함을 참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렇게 어찌저찌 준비를 하고 보니 역시나 시간이 남았다. 그것도 거의 30분 정도가. 이건 생각보다 긴데? 그렇다고 출근을 일찍하기는 좀 그런데...


    그 시간에 대한 고민끝에 나온 해결책은 To-Do list 작성이었다. 단순하다, 오늘 할 일이랑 내일 할 일 생각할 시간이 길다면 일주일 동안 해야 할 일들을 한번 곱씹어 보면서 생각나는대로 적는 것이다. 방식은 본인이 편한 방식으로 해놓으면 된다. 나 같은 경우는 평일에 단순하게 퇴근 To-Do list였는데 오늘을 기준으로 그대로 작성하면 이렇다.    

12/24 일요일
- 의자 갖다 버리기 (수리 불가, 아예 다리가 부서져서 어쩔 수 없음, 폐기물 스티커는 준비됐음. 안녕, 그동안 고생 많았다.)
- 새 의자 주문(괜히 싼 거 사지말자. 돈 좀 들여도 내 허리가 우선이고, 괜히 싼 거 사면 이번거처럼 4년만에 부서진다 어차피.)
- 가족모임: 부천으로 오후 3시까지, 베란다에 놓은 연말 선물 잊지 말기!
- 브런치 연재 - '비워진 자리 좋은 것으로 채우기' 업데이트
12/25 월요일
- 부천에서 점심까지는 먹어야 함. 2시 정도 출발해야 길 안 막힐듯.
- 4시 전에 집에 도착하면 할 일들    *러닝 소모임 송년회 준비
- 세탁기 돌려야 함.
12/26 화요일
- 은별 누나가 부탁한 자료 정리해서 보내주기
- 현섭이랑 저녁 약속 있음
12/27 수요일
- 운동 가는 날 (유산소 1시간)
12/28 목요일
- 휴가 1일차
- 본가로 출발, 새벽 5시 기상
- 할 거 없지? 기타나 연습해... 기타 레슨 못 가고 집에 가는 거니까
12/29 금요일
- 휴가 2일차
- 읽어야 할 책 시간 남으니까 이때 마무리
12/30 토요일
- 책 읽기 - '문과 남자의 과학공부'
- 러닝 모임 송년회 19:00
12/31 일요일  
- 브런치 연재일, 6주차 업데이트
- 연말/연초 맞이 대청소
1/1 월요일
- 2024년은 당직과 함께 ㅜ.ㅜ

   

   이 정도 쓰는데 길어야 보통 20분정도다. 그리고 그 날에 해당하는 당일 아침이 되면 약간의 디테일을 집어넣는다. (극 P성향인 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다.) 아침에 이렇게만 써놓고 출근을 해놓으면 퇴근한 뒤에 저 내용이 머리속에 들어오면서 생활이 바뀌게 된다. 머리에만 넣고 있는 것과 써놓는 것은 굉장한 차이가 있다. 잊어버릴거 같으면 잘 보이는 곳에 리스트를 붙여놓자. 물론 요즘 핸드폰 기본앱도 너무 잘 되어있어서 굳이 이걸 손으로 써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수도 있을것이다. 근데, 경험해본 바, 이렇게 손으로 쓰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더 오래 기억에 남고 더 정리가 잘 된다. 그래서 요즘은 정말 중요한 것만 핸드폰 스케줄러에도 놓고 알람기능을 걸어두고 있다.

   그리고 이 리스트의 또다른 장점은 이게 To-Do 리스트기는 한데 쓰다보면 감정이 섞여서 일기처럼 될 때가 있다.  그렇다보니 일기를 굳이 쓸 필요가 없어졌다. 저 리스트를 보면서 아래에 한 3줄 정도 그런 나만의 이야기를 담다보면 그게 일기가 된다.


잠은 좀 자냐?

    이 연재를 통해 뭔가 디지털 시간을 줄여 내 시간을 극한으로 활용하여 나를 계발하는 스토리를 기대하신 분들이 있다면, 죄송하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저 좀 더 건강하고 기쁘게 살고 싶을 뿐이다. 나는 그리고 거기에 가장 중요한 것들 중에 하나가 `잠'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만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잠'을 무시하고, 때때로 게으름의 상징으로 보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학생 때 우리가 많이 듣던 빈정거림 중 하나가 '네 성적에 잠이 오냐?'였을 거다. 뿐만 아니라 나보다 윗세대는 '사당오락'이라는 근거 없는 말들까지 들었을 거다. 그 결과 이제는 한국에 70만을 넘어 80만의 불면증 환자가 생겼다.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이 세계적으로 봤을 때 짧은 편이라는 것은 이제는 모두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이제는 다들 카페인 없이는 살 수가 없는지, 골목 하나마다 카페가 하나씩 서있다. 술 권하는 사회를 넘어 커피 권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슬픈 일이다. 언제부턴가 7시간 잤다고 하면 주변에서 그래도 많이 주무셨네요 소리를 듣고 산다. 물론, 그렇게 살 수 있는 체력 좋고 열정 있으신 분들은 존경하고 그 생각을 존중한다. 하지만 난 여전히 이 7시간도 모자라서 피곤하다. 잠에 대한 내 생각은 셰익스피어의 생각과 같다.

우리는 꿈과 같은 존재이므로 우리의 자잘한 인생은 잠으로 둘러싸여 있다.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이런 생각을 가진 그였기 때문일까, 셰익스피어는 <맥베스>에서도 멕베스가 덩컨을 살해한 후에 그 대가로 그에게서 잠을 빼앗는다.

죄없는 잠을 살해했소, 걱정이라는 흐트러진 번뇌의 실타래를 곱게 풀어서 짜주는 잠, 그날 그날의 생의 적멸, 괴로운 노동의 땀을 씻고, 마음의 상처를 낫게 하는 영약, 대자연이 베푸는 제2의 생명이요, 생의 향연에 최대의 자양을 주는 그 잠을 말이오. -셰익스피어, <멕베스>    

    이토록 잠은 인간에게 중요할 것인데, 죄도 짓지 않은 우리는 자발적으로 잠을 줄이고 있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아까 처음에 이 연재가 시간을 만들어서 무언가 내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스토리가 아니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더이상 잠을 줄여서 뭘 하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이제는 어지간하면 7시간 반~8시간이라는 내 수면시간을 깨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 여전히 후회는 없으며, 오히려 제일 잘한 일이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Just Do It!

   이렇게 해도 불구하고, 시간이 남을 수도 있다.(보통은 안 남을거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제안은, 구경만 하지말고 일단 뭐라도 시작해보자는 것이다. 나같은 경우 유튜브로 많이 보던 것이 영화/책/드라마 리뷰, 운동 채널, 음악 채널, 여행 채널 등이 있다. 우리는 이 많은 콘탠츠를 소비하면서 정작 내가 직접 체험을 했던 것들은 얼마나 되었던가? 운동 유튜브를 보면 보고 끄지 말고 그 운동을 한번이라도 해보자. 멋진 연주를 들었다면 실제로 그 악기를 사서 직접 배워보자. 좋은 영화 리뷰를 봤다면, 영화관에서 그 영화를 직접 만나거나 촬영지에 놀러가보자. 일단 뭐라도 해보라는 권유를 드리고 싶다.


   물론, 처음에는 하다보면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드는 활동도 분명히 있을 것이고,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괜히 샀다 싶은 책, 괜히 봤다 싶은 영화, 괜히 갔다 싶은 여행지들도 분명 생길 것이다. 근데, 그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한 '괜히' 시리즈들이 결국, '취향'을 만드는 자양분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인생 100살까지 산다고 하는데, 그래도 이만한 투자 정도는 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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