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Chive Jan 07. 2024

잃어버린 친구들을 찾아서

더 늦기 전에

    앞선 이야기에서는 내가 디지털 기기에 빠져버린 원인 중 가장 심적으로 힘들었던 부분이었던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와 나의 디지털로의 도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제는 거꾸로 디지털로부터의 도피를 어느정도 체득했다. 운동, 집안일, 취미생활 등 디지털을 제외한 모든 활동은 내 삶에 플러스가 되었다. 세상이 조용하고 자유로워졌다. 이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시간이었다.


홀로서니 보이는 것들

     많은 것들이 변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이고 완벽한 모습으로 가는 길은 아직 멀고도 멀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봐도 어느정도 정리되어있는 방과 좋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 정상인의 범주로 돌아온 나의 몸 상태, 도시 한 가운데 있으면서도 도시의 광기에 휩쓸리지 않는 여유, 균형잡힌 생활, 앞에서 한번 말했듯 혼자여도 괜찮은 것이 아닌, 혼자여서 괜찮은 삶 그런 것들이 어느 정도는 이뤄진듯했다.


    그렇게 길고 슬펐던 '혼자'의 날들이 지나고, 이제는 꽤나 마음이 평안해지기 시작한 어느 오후였다. 문득, 궁금해지면서 곱씹었다. 난 어떤 사람들을 만났더라?


    이 연재를 쭉 따라오고 계신 분들은 이미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내가 사용하는 스마트폰, 그리고 그 안에 있는 SNS 서비스에서 나눈 연락들이 내 인간관계를 구성하는 전부였다. 그들의 생사와 안부는 sns가 그 사람의 빛나는 순간만을 보여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정도면 저들이 안녕하다 믿으며 살았다. 엄밀하게 따지면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소름이 쫙 돋았다.


    사실 시대가 부추긴 면이 없지않아 있긴 하다고 속으로 변명을 해봤다. 코로나 시대를 우리는 아직도 기억한다. 교황이 페이스북을 통해 평일 미사를 생중계했고, 무대를 잃은 가수들과 예술가들은 언택트로 유튜브, 네이버 티비 등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미치지 않고 살아 남아달라고 응원했다. 다만 먼 발치에서. 그래 그것 때문에 그럴 거야. 마음 한 구석에서 그렇게 얘기를 했지만 뒤통수가 가려웠다. 정말? 그럼 너의 2023년 후반부는 어떻게 설명할래? 누가 사람 만나지 말라고 뜯어 말리디?


책보다 더 도움이 되는 '사람'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아, 참고로 말하면 흔히들 말하는 인싸가 되고자 함이 아니었다. 지극히 내향형 인간인 나는 그럴 그릇이 못된다. 고로 처음에는 익숙한 학교 동창들부터 시작했다. 내가 인터넷 세상으로 잠적하고 3년이라는 시간동안, 누군가는 남편과 아내가 되고, 부모가 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나보다도 더 깊은 인터넷 세상으로 들어가서 여전히 나오지 못한 사람도 있었고, 누군가는 이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염증을 느끼고 해외로 나갔다. 허나 저마다의 삶 하나하나에게 안녕하냐고,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들 또한 내가 불러모은 자리 자체가 너무나도 생소했는지 너가 너 같지 않다고, 진짜 우지민 불러오라고 하는 사람도 꽤나 됐다.


    또한, 20대 때는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다들 나이가 들면서 자기만의 색이 더 짙어진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남의 삶을 짧은 시간에 압축하여 간접적으로 경험하는데 있다고들 한다. 그런 면에서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한 권의 책보다 도움이 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앞에서도 잠깐 말했듯 SNS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빛나는 순간과 대조되는, 그들이 절대 거기서 보여주지 않는 그들의 그늘들도 실제로 만나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느꼈다. 아, 때로는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흘려 보냈어야 했던 것들도 있구나.


    생각보다, 정말로 생각보다 오래된 인연들에게는 의외로 뭐랄까, 영양가가 없는 모임이 많았다. 사람 만날 때 너는 득실로만 생각하느냐고 말하면 할 말이 없지만, 정말로 그렇다. 그들이 반갑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들은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고 가족들만큼 소중한 사람들이다. 다만, 함께 '했던' 사람들인지라 만나면 여전히 과거의 얘기를 하면서 '현재'의 얘기를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대화는 거기에 머무르고, 나오지를 못한다. 어찌보면 당연하긴 하다. 옛 친구들은 그때 그 얘기를 하려고 모이는 자리니까. 현재 내가 어떤지를 얘기하면, 이미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차이가 나버린 친구들은 갑자기 죄인이 된 듯 입을 다물어 버리고 분위기는 차게 식을테니까.


   결국, 나의 현생을 위해서는 다른 공동체가 필요했다. 그래서 찾게된 것이 소모임같은 모임 어플들인데, 이미 여러 커뮤니티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호소하듯, 나 역시도 몇몇 실패 사례들을 겪었다. 그리고 정착한 소모임이 두군데 정도 있다. 운동 모임과 독서 모임 하나씩 하고 있는데, 꽤나 괜찮은 공동체가 하나 생긴거 같다. 1년차 밖에 안되지만, 괜찮은 소모임을 찾기 위한 나의 몇가지 기준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물론 이런 소모임이 무조건 좋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스타일이 다를테니, 그냥 재미로만 보셨으면 좋겠다.


- 나이 제한/성별 제한이 있는 모임은 거르자.(특히 남자 마감이라고 되어있는 모임)

- 아무 테마/목적 없이 그저 사교모임(강하게 비추, 본인 MBTI가 대문자 E일 경우만 추천)도 사고가 많다. 술과 밤이 있는 한 사고의 위험성은 늘 존재하더라.

- 저녁 술자리가 과하게 많은 모임도 어지간하면 피하자. (회비 액수/회비 모으는 횟수로 판단 가능)

- 만들어진 지가 2년 이상인데 모임 구성원 수 150명 이하 선으로 관리가 되고 있다면, 운영진이 그래도 주기적으로 이상한 사람들과 유령회원들을 쳐내고 있다는 것이니 눈여겨보자.

- 공지사항을 좀 자세히 뜯어보자. 글은 그 모임 운영진과 사람들의 거울이다. 읽다보면 딱봐도 회칙이나 공지사항이 깔끔하고 정중한 티가 나는 모임이 있다.   

- 무엇보다 자주 봐야하니 내 거주지에서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해보자. 아무리 좋은 사람들이 있어도, 멀면 모임 자체가 스트레스다.

 

  이런 기준으로 나갔던 모임, 혹은 내가 만든 모임은 일단 내가 모르는 사람이 갖고 있는 모르는 세계들을 보여줬다. 특히나 공무원 사회는 좁기에 나한테는 이게 너무나도 필요했다. 가지각색의 사람들이라는 책을 마주하고 있다. 심지어 여차하면 이 책은 내가 도움을 청하면 내 대신 나의 고민을 해결해주고 일도 해준다. (물론 나 역시 그들의 도움이 되어 준다는 전제가 깔린다.) 이전에는 사람으로 인하여 상처를 받으면 그 상처가 너무 아팠겠지만, 이제는 홀로 설 수 있으니 아프지도 않다.


   홀로 선 뒤의 인간관계의 확대, 누군가는 그 얕은 관계에 치를 떨지도 모르겠지만, 한마디 하겠다. 모든 관계는 그 옅은 관계에서 시작된다. 그 옅은 관계에서 나에게 보물이 될, 깊은 관계를 맺을 사람을 찾는 능력을 키운다. 우리는 그것을 '사람 보는 눈'이라고 칭하고 여기는 그런 것을 연습하기에 꽤나 적절한 놀이터라고.  


더 늦기 전에

    마지막 얘기는 조금 무겁다. 앞서 말한 동창들 모임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한 친구가 있었다. 워낙 풍채가 좋고 키도 185cm가 조금 넘는 녀석이었다. 그림을 좋아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미대에 들어갔다. 그 녀석이 저번주 우리 곁을 떠났다. 왜 그런 친구 모두 한둘쯤은 있을거다. 중고등학교 때까지 절친한 사이였다가, 대학이 서로 갈리면서 연락이 끊긴 친구. 예술가 피가 짙은 친구라 여러 기행을 일삼던 그에게 난 그러다 제 명에 못 죽는다며 농담 반 걱정 반으로 얘기를 했을 때 그 녀석,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며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곤 했었다. 처음 그의 부고를 들었을 때, 슬펐다기 보다는 실감이 안 나서 어이가 없었다. 마지막 모임에서 곧 조그마한 갤러리에서 자기 전시회가 있을 거라던 그 녀석은 산에서 실족사 해버렸다.


    이제서야 무언가를 이룬 우리가 만났는데, 너무 허망했다. 전시회 때 가져가겠다는 꽃다발 대신 흰 국화를 영정 사진 앞에 놓고 있자니 안에서 무언가가 체한듯 울컥했다. 조금만 일찍 내가 밖으로 나왔더라도 조금 덜 슬펐을까, 아니면 그 쌓인 시간의 무게에 짓눌려 더 슬펐을까? 한가지 확실한 건 적어도 이렇게 아쉽고, 뭔가 죄책감이 느껴지고, 더 이상 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나를 할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만약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새로운 인연이든 오래된 인연이든 당장 연락하자. 설령 까이더라도 후회는 안 남도록.

이전 07화 집 나간 금쪽이들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