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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Jan 14. 2024

그래서, 무엇을 얻었느냐?

   '선배, 그렇게 살면 재밌어요? 아니 그냥 궁금해서.' 이제 알고 지낸 지 4년 남짓 지난, 내 기준에서는 회사에서 가장 친한 후배가 물어왔다. 나는 이 친구의 신규시절을 알고, 심지어 기수로 한 기수차이였기에, 관사마저 같이 쓰며 같이 '살아'봤던 후배는 이 친구가 유일하다. 나의 OTT와 PC사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친구이기도 했다. 이 친구가 했던 말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선배님(이때만 해도 그렇게까지 우리가 친하지는 않았다.), 선배님은 진짜 컴퓨터랑 와이파이만 있으면 통영이 아니라 저기 어디 무인도에 갖다 놔도 살 수 있을거 같아요.'였다. 그런 사람이 요즘은 카톡도 띄엄띄엄보니 걱정이 조금 됐던가보다.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을 때라던데 지금이냐고 물으며 이런 질문을 했다. 문득 나도 새삼스레 질문을 했다. '재밌냐고?'


물론 잃은 것도 있어요

   솔직하게 얘기하자. 디지털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재미'는 없어진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삶에 자극이 없어진다. 가끔 주체할 수 없는 공허함을 어찌할 줄 몰라서 한강에서 미친 사람처럼 악하고 소리 질러보고 싶을 때가 있다. 아니 돌이켜보면 한두번이 아니었던거 같다. 사실 이게 괴로워서 우리는 디지털 세계로 가는 것이라고 앞 연재에서 설명한 적도 있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한가지, '재미'는 없어진다.


    또 없어진 것은, '편리함'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일정을 짤 때 쓰는 캘린더 앱이다. 요즘은 스마트폰 기본 앱도 매우 편리하게 되어있어서 오히려 스케줄러와 다이어리를 보는 것이 더 힘든 시대가 되었다. 나도 사실 스케줄러와 다이어리를 휴대하고 다니지는 않는다. 집에 얌전히 모셔두는 편이다. 그렇다보니 같은 일을 두번한다. 이제는 모든 스케줄을 다이어리에 쓴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핸드폰 스케줄러에 담고 중요한 일은 알람을 맞춘다. 단순해보이지만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상한 편집증이 생겨서 핸드폰 스케줄러랑 수기로 적은 스케줄이랑 같지 않으면 매우매우 짜증이 난다.  


    그뿐인가, 디지털 디톡스를 한다고 끊어버린 밀리의 서재, 예스24 등 각종 구독을 끊은 불편함은 그대로 내 발품으로 값을 치뤄야 했다. 나는 책을 사는데 있어서 만큼은 절대로 '일단 지르고 생각해'를 하지 않는다. 책을 각 잡고 보기 시작하기 전, 그야말로 책 읽기 초보 시절에 광고만 보고 사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뼈가 저리게 경험해본 결과물이다. 물론 성공한 책도 많았지만, 타율이 썩 내 맘에 들진 않았다. 그 이후 어지간하면 책을 반 이상 보고 사는 편이다. 이게 은근 힘들다.


    마지막으로 잃은 것은 '트렌드'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얘기하는 주제에 쉬이 끼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영화는 영화관으로 보러 가니까 괜찮다. 근데 요즘 뜨는 드라마, 요즘 뜨는 예능, 요즘 뜨는 유튜브 채널. 누구보다 그런 화제를 좋아하던 내가 어느 순간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되는 마법같은 경험이었다. 10주, 그러니까 대충 한 2달 반만에 나타난 결과물이었다.   


    근데, 당시에는 정말 불편하고, 뭔가 내가 시대를 거스르는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불안하기까지 했던 것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결국 치뤄야 했던 대금같은 것들이었단 생각이 든다. 게임 용어로 얘기를 하자면 '줄건 줘' 마인드. 부족한 것, 못한 것들에 아쉬워하기에는 삶이 많이 짧다. 그게 '안'한 것이 아니고 사실 '못'하는 것이지 않은가.


잃은 자리에 채워 넣은 '얻은 것'

   재미가 없어진 자리에는 '즐거움'이, 편리함이 없어진 자리에는 '편안함'이, 트렌드가 없어진 자리에는 '취향'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앞에 얘기했던 후배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랬다. '재미 없지... 근데, 재미는 없는데 즐거워.' 그게 무슨 소리냐는 후배의 질문에 '뭐, 그런게 있어, 임마. 너도 나이 들어봐ㅎㅎ 나도 사실 말로는 표현을 못하겠어. 나중에 말로 설명할 수 있게 되면 해줄게' 지금도 이 연재를 하면서 사실 재미와 즐거움의 차이를 말하라 하면 사실 딱히 뭐라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둘은 거의 같은 의미긴 하니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나온 결론이 하나 있다면 이거다.


    보통 내가 '재미있다'고 표현한 일들은 '그 행위를 할 때 그 만족감이 피크를 찍고 서서히 내려오는 일'들이었고, 내가 '즐겁다'고 표현한 일들은 ' 그 행위를 할 때는 별로 만족감이 크지 않고, 그 행위가 끝나고 나서 만족감이 피크를 찍는 일'들이었던거 같다. 23년도를 강타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로 그래프를 그리자면, 재미있는 일들은 위로 쭈욱 올라갔다가 행위가 끝나면 롤러코스터처럼 급작스럽게 떨어지는 그래프를 그릴 것이고, 즐거운 일들은 도파민이 처음 바닥을 찍다가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올라가는 그래프를 찍을 것이다. 난 이과는 아니지만, 굳이 설명을 하자면 이런 느낌이다. 아무튼 나의 현생 재미는 없는데, 소소하게 즐겁다.

 

    그리고 편리함이 없어진 불편한 삶. 디지털을 줄이면 반드시 불편한 순간들이 온다. 그 편리함이 없어진 자리를 결국 아날로그식으로 채우는 과정, 위로 따지면 직접 스케줄러를 손으로 쓰고, 내가 필요한 책을 찾기 위해 내가 직접 서점으로 발품을 팔아서 찾는 과정이 무조건 생길 것이다. 근데 그 불편함의 순간이 지나가고 나면 오히려 사람이 '편안'해진다. 그 행위에 쏟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위에서는 편의를 위해 스케줄러를 예로 들었지만, 다른 일을 할 때도 아날로그 방식은 불편하지만 꽤나 유용하다. 아무래도 우리가 무언가를 '쓰는' 행위는 스마트폰에 '입력'하는 행위보다 머리에 잔상이 잘 남고 정리도 쉽다. 그리고 무엇보다 쓰다 보면, 내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정확히 구조화하고 이해 하고 있는가?'를 점검할 수 있다. 쓰다가 뭔가 낙서처럼 갈겨 쓰게 되는 구간이 생기는데, 그 혼돈의 구간이 정리가 되면 말도 안되게 좋은 생각이 되기도 하고, 혹은 내가 놓치고 지나갔으면 치명적이었을 부분들이 되기도 한다. 옛 말이 틀린 것이 하나 없다. 모든 해결책은 사실 다 자기 안에 있다. 알면서도 가끔 급하다는 이유로 우리는 우리 안에서 답을 찾는 과정을 가끔 건너뛴다. 쓰는 과정은, 아니 쓰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아날로그적 방법들은 그 시간을 확보해준다. 앞서 말한 책들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다. 전자책 창을 몇 개 띄워놓고 비교하는 것보다는, 실물 책을 서점에서 읽고 비교하는 것이 오히려 책을 고를 때는 더 디테일하게 비교가 가능하다. 가끔은 이렇게 옛 방식이 주는 지혜도 있다. 그리고 그 방식을 체득하면 삶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유행을, 트렌드를 신경쓰지 않게되면 자연히 본인의 색이 짙어지고 우리는 그것을 '취향'이라고 한다. 물론 이 취향도 완전히 트렌드를 못 벗어나긴한다. 가끔 크게 벗어나면 남들은 그것을 취향이 아니라 '고집'이라고 한다. 다만, 나는 너무 '트렌드'에 치우쳐진 삶을 살지 않았나 싶었다.


    이걸 이번에 핸드폰을 바꿀 때 그걸 크게 느꼈다. 얼마전에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20대들의 '갤럭시 남은 거른다.' '갤레기' 밈을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것이다. 무의식적으론 알고 있었다. 어느 순간 갤럭시 시리즈는 아재폰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갤럭시 폰에 대한 20대들의 시선이 우리가 20대일 때 애니콜과 스카이를 보는 시선과 비슷해지고 있다. (근데 이렇게 기사화될 정도로 노골적인지는 몰랐다.) 사실 나 역시도 이놈에 이미지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고, 사실 이전까지 아이폰을 쓰고 있었다. 근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생각보다 그런거를 좀 거둬내고 보니 솔직히 공무원이 무슨 맥북처럼 고성능 피씨랑 스마트폰 연동이 필요할지도 의문이고, 된다 하더라도 내가 그 운용체계를 100프로 사용하고 있나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까지 사실 맥북과 아이폰을 고집했던 것은, 물론 맥북에서만 돌아가는 앱들 때문도 있었지만, 사실 남들과 다르고 싶지않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다.


   거기서 나오고 나니, 생각보다 홀가분했다. 이 '취향'이 '고집'의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잘 관리만 된다면, '취향이 확고'한 것은 오히려 무기이자 자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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