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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Oct 22. 2024

18. 살과 뼈

   얼마 전에 족발을 배달시켰다가 빈정이 상했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족발을 주문하면 먹음직스럽게 발라낸 살점들이 뼈 위에 수북하게 덮인 채로 포장이 되어 배달이 온다. 그런데 평상시와 달리 살점의 양이 형편없이 부족하고 뼈만 풍성했다. 어쩔 수 없이 곁들이로 따라온 막국수로 배를 채웠다. 의식주,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3가지 요소인 만큼 인간은 먹을 것에 특히나 예민한 존재 아닌가? 뼈로 양을 채운 그 불량 족발집은 그날부로 내 배달집 리스트에서 제외됐다.


   살이 부족한 탓이었을까, 아니면 쓰레기를 치우다 다시 한번 뼈다귀가 내 눈에 밟혀서였을까? 뼈와 살에 대해서 조금 생각을 해봤다. 뼈는 일종의 요약이고, 핵심이다. 뼈를 때리는 조언,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肉斬骨斷) 등등 여러 가지 우리가 생활 속에서 쓰는 말들을 보면 '뼈'라는 말에는 그런 속성이 있다. 글로 보자면 실용서, 자기 계발서류의 글들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뼈의 영역은 세가지 정도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실행 가능하고, 실용적이며, 요약이 되어 간결하다. 책이 알려주는 대로 실행하지 못하더라도 그런 요령과 방법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문젯거리가 해소되는 듯하고,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안도감을 얻을 수 있다. 그냥 평범하게 생존과 생활의 측면으로만 본다면, 뼈는 압도적으로 살보다 중요하다.


   돈 버는 기술, 말 잘하는 요령 등을 알려주는 뼈의 책들이 대세인 시대에 나 같이 에세이를 쓰는 사람들은 난감하다. 심지어 전업작가가 아닌 사람들은 더더욱 고민이 깊다. 소설은 흥미라도 있고 스토리라도 있는데, 에세이는 그야말로 잡다하고, 사적이고, 사변적이다. 에세이 작가는 해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서 뼈를 드러내는 글들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정답으로 고정된 세계에 의문을 제기하고, 해체하고, 생각한다. 정답이 없는 인생의 의미를 찾아 탐험하는 사람들이라 뼈를 드러내는 글들과는 정반대 대척점에 서 있다.


    누군가는 지금을 지탱하는 것이 뼈고 뼈가 없으면, 삶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거라고 말한다. 지금 살을 추구하는 것은 사치고, 뼈를 때리는 말로 내 옆에 서 있는 너도 나약한 소리 말고 다시 일어나서 뼈를 더 강하게 채우라고 말한다. 심지어 작년에 베스트셀러가 된 어떤 자기 계발서에서는 인문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위선적이라고 노골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 책의 부제가 '피보다 진하게 살아라'인데, 책을 내용을 보다 보니 '피보다 진하게 사는 법'보다는 '뼈의 세계에 매몰되어 천천히 죽는 법'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인생은 결국 마지막에 마지막으로 가면 원하지 않아도 한 줄의 묘비명으로 요약된다. 죽어서 화장이 되든 매장이 되든 살이 흩어지고 뼈만 남으면, 그는 어떤 사람이었다고 몇 마디 평판으로 간추려진다. 그는 참 다정한 아버지였지, 그는 좋은 의사였지, 그는 무자비한 독재자였지, 그는 돈밖에 모르던 구두쇠였지, 그는 유쾌하고 위트 있는 사람이었지. 사람들은 각자의 기억으로 그를 추억하고 한 줄 짤막한 평을 남긴다. 그 요약된 한 줄 뼈는 내가 죽은 후의 일이다. 이게 내 생각이다.


    나의 지금을 지탱하는 것은 살과 피다. 그 살과 피의 시간이 삶이다. 살에서 향기가 나고 싱싱하게 피가 도는 시간에만 나는 살아있다. 나는 서둘러 나의 뼈를 추리고 싶지가 않다. 지금은 살과 피의 시간, 이토록 사소하고, 흔하고, 하찮더라도 더 많은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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