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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Oct 20. 2024

17. 이어짐이란 (어떤 아버지와 어떤 아들)

    몇 주 전 우리 집 부엌에서 있었던 일이다. 밤늦게 갑자기 목이 말라 잠에서 깨어 물을 마시고 있을 때 뒤에서 이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부, 나 물 좀 줄래요?" 어둑한 밤이어서였을지, 자다 일어나셔서 그런 것인지 나와 아버지를 헷갈리신듯하다.


"진짜 닮긴 닮았어."

"뭐... 아버지 아들이니까 그렇겠죠. 그나저나 어디가 그렇게 닮았는데요?"

"얼굴, 몸매, 그리고 목소리. 넌 못 느끼니?"


    어떤 책에서는 자식을 가리켜 부모 곁에 잠시 머무는 "귀한 손님"이라고 말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애지중지하며 키워야 하지만 때가 되면 품에서 떠나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못한 탓일까, 아직은 저 말이 그렇게까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우리 집의 훈육방침과도 맞지 않는 어구가 아닌가 싶다. 나에게는 오히려 요즘 이 말이 더 와닿는다. "자식은 부모의 흔적 혹은 남기고 갈 증거"이다. 부모는 기본적으로 자식이라는 손님이 나오기도 전에 자신의 본질을 DNA라는 것으로 응축해서 자식에게 건네준다. 당연한 얘기지만, 요즘 들어 이 말이 가슴속에 박힌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외모와 목소리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몇 가지 기질과 재주를 물려받았다. 작가를 할 정도는 아니지만 평균 이상은 하는 언어감각, 따뜻함, 섬세함, 그리고 그 나이에서는 좀처럼 보기가 힘든, 가끔은 어린 소년시절에도 저러지 않으셨을까 싶은 소년미가 깃든 장난기까지.


    내 나이 서른하고 다섯, 대부분의 아들들이 그렇듯 머리가 굵어지면서 아버지와 조금씩 멀어지고 서먹서먹해지는 10-20대를 지나 이제는 어느 정도 그때의 아버지를 이해하고, 아버지가 조금은 안쓰러워 보이는 시기가 되었다. 심지어 부모-자식 간의 대화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상하관계가 점점 수평적인 관계로, 훈육이 아닌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토론에 가까운 양상이 될 때면 그 분위기가 낯설기는 하지만, 싫지는 않다. 그렇게 아버지와 나의 저울은 수평이 맞춰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조금은 나와 아버지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그럴 때마다 어쩔 수 없는 저분의 아들이구나 싶은 생각이 부쩍 늘어만 간다.


   오늘은 아버지에게, 그리고 가족에게 확실하게 내년은 서울 생활을 마치고 강원도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처음 꿈꿨던, 흔히 말하는 평범한 부모가 기뻐할 평범할 정도의 적당한 세속의 성공과 안정을 드리고 싶었지만, 그건 좀 힘들 것 같다고. 이 서울에 왔지만, 결국 나의 종착지는 그저 그런 도시에 사는 평범한 공무원 A의 자리였다고. 이제 이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두서없지만 확실하게 속마음을 드러냈다. 마치 내가 전에 사기업을 그만뒀을 때처럼,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내 딴에는 꽤나 큰 고백이었는데 의외로 아버지는 순순히 내 선택을 존중한다면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 경기도에서 공무원을 그만뒀을 때, 그 뒤에 취직한 회사도 때려치울 때, 그리고 부천에 와서 학원 처음 시작할 때 큰아버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고 한다. 하지만 당신은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 선택을 하셨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했으니까 일에 찌들지 않고 가족들과 보낼 시간이 많았으며, 그게 지금의 우리(나와 동생)가 잘 클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고 하셨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 선택들에 후회는 없었을 것 같다고 하셨다. 본인이 지킨 가치가 옳았다는 확신이 깊게 베인 목소리였다.


    고로,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일 테니 마음이 가는 대로 하라 하셨다.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  공무원에 임직 하시다가 그만두신 것, 그리고 회사를 그만 두신 것 등 아버지의 청춘을 처음 들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큰아버지를 비롯해서 그 인자하신 고모도 그렇게 한소리를 했다는 것은 처음 들었던지라 조금은 놀랐다. 하긴, 내 어릴 적 기억 속 우리 집은 비가 새는 조그마한 단독주택이었고, 그걸 보며 가끔은 우리 집이 가난하긴 하구나 싶었던 적이 꽤나 있었긴 했다. 지금보다 '남자의 역할=가장'이라는 공식이 지금보다 더 확고했을 시절에 아버지가 받았을 시선들은 지금 내가 주변에서 받는 시선보다 더 무거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걸 뚫고, 돈과 물질에 미쳐서 사는 척박한 삶보다는 조금 모자라더라도 사람다운 삶을 살겠다는 결심과 인생철학은 결국 시간이 지나 나에게 연결되었다. 이어진다는 말이, 특히나 유교의 영향을 받아 대를 잇는다는 말을 우리는 쓰지만, 사실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라 결국 그냥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오늘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또 다른 어구를 찾았다. "아들의 삶은 아버지의 삶에 대한 처벌이다." 미국의 시인 윌리스 스티븐스가 한 말이다. 통렬하다, 가슴 어딘가가 아릿해진다. 이 송곳 같은 말을 나와 그를 닮은 아이가(그날이 오긴 올까 싶다만...) 혹은 조카들이 세상에 나오고 자랄 때까지 호주머니에 잘 보관할까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될 때마다 나는 아파하면서 이 말을 꼭 쥐게 될 것 같다. 그게 서로가 이어져 있단 것이며 의무가 따르는 두려운 축복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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