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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Nov 03. 2024

Outro. 서른에 잔치는 없지만

한 마리 별의 주머니 속에
한 해의 모든 숨결과 꽃이 들어 있고
한 알 보석의 심장에
광산의 모든 경이와 풍요가 들어 있고
한 알의 진주 속에 바다의 모든 그늘과 빛이 들어 있네.
그리고 그것들보다 더 높은 곳에 존재하는
보석보다 빛나는 진실,
진주보다 순결한 믿음,
우주에서 가장 명백한 진실과 가장 결백한 믿음,
나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한 소녀의 입맞춤 속에 있네.
                                                                                -로버트 브라우닝, <가장 아름다운 것>


    빅토리아 시대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사랑시를 꽤 많이 썼다. 그가 현대에 와서 회자되는 것은 아름다운 시도 시지만, 자신의 시에 "less is more"라는 말을 처음 썼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비움과 단순함을 표방하는 미니멀리즘의 상징적인 문구로 사용되는 이 문장은 '단순한 것이 더 아름답다'라고 번역이 될 때도 있는데, 이 시에도 브라우닝의 생각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지고한 것들이 단지 입맞춤 하나로 귀결된다.


    프랑스 작가 아네스 드 레스트라드가 쓴 <낱말 공장 나라>라는 아주 짧은 동화책이 있다. 이 나라에서는 말을 하려면 가게에서 낱말을 사서 삼겨야 한다. 자주 쓰는 좋은 낱말은 당연히 비싸고 필요없는 낱말들은 값이 싸다. 부자집 아이가 한 소녀에게 고백을 한다. 나는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어른이 되면 우리는 결혼할 거라고. 가진 낱말이 많아 완벽한 문장으로 말한다. 그런데 부잣집 아이 말고도 소녀를 좋아하는 다른 가난한 집 아이도 있었다. 아이가 가진 낱말은 단 세 개 뿐이다. 그것도 공중에 떠다니는 단어를 곤충 채집망으로 겨우겨우 붙잡은 것이었다. 아이는 소녀에게 가서 자기가 가진 전부를 말한다 "체리, 먼지, 의자." 문장도 채 되지 못한 불완전한 낱말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녀는 말이 아니라 마음을 보았으므로, 소녀는 아이에게 다가가 입을 맞춘다.


    입맞춤으로 귀결되는 모든 사랑의 과정에 필요한 것은 많은 말도, 완전한 문장도 아니라는 것. 어쩌면 사랑뿐만이 아니라 '삶'또한 '완전함'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 우리는 사실 생각보다 너무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사고, 너무 많은 감정과 정신을 낭비한다. 그놈에 '남들만큼'만 살고 싶다는 말은 이제 신물이 날 정도다. 이미 충분한데도 더 잘 하려는 욕심이 그득그득하다. 그 결과는 어떤가? 점점 화려하고 자극적인 삶은 얻었으나, 삶은 복잡하기 그지없어졌다. 내 진심이, 내 정신이, 내 영혼이 어떻다고 알아내는 능력은 퇴화되었다.


    식민지가 세계 곳곳에 있어서 '대영제국은 해 질 날이 없다'고 말하던, 한마디로 영국이 제일 가진 것이 많고 부유하던 시절에 브라우닝 같은 시인이 나온 것. 이제서야 티끌만큼이긴 하지만 가진 것이 생기게 된 내가 이번에 처음으로 다른 책이나 영화 리뷰가 아니라 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 어쩌면 우연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글은 어떤 의미로 내가 가진 생각과 감정을 글로 표현하고, 정제하여 정말 내가 당시에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찾아내고, 끝내는 글 속에 그것을 담아냄으로 그 마음을 비워내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번 글들을 하나씩 만들면서 들었다.


    적을수록 더 좋다는 말. 불완전해도 그것이 최선의 삶이라는 것. 진부하지만 진부할수록 진리인듯하다. 탐욕을 조금씩 덜어내고 비워낸다면 분명해지고 투명하게 보일 것이다. 체리, 먼지, 의자만으로 사랑을 얻은 소년처럼, 어쩌면 서른은 20대 때처럼 '많은 낱말'를 얻으려 고민할 것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낱말'이 뭔지 고민하기 시작해야하는 시기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잔치가 없어서 서럽다던 서른의 나는 어쩌면 많은 단어를 욕심내던 나였다면, 서른의 반을 지나고 있는 지금은 이런 고민을 한다. '잔치? 그게 꼭 필요해? 만약 한다고 치면, 거기 뭘 내놓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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