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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Nov 10. 2024

솔로의 연휴 절망편

오랜만에 고향에서 얼굴이나 보자고 했던 친구들, 하지만 이번 연휴엔 그냥 서울에 남아있기로 한 저는 점심 무렵에야 잠에서 깨어나 친구에게 전화를 겁니다


"어, 어디냐? 벌써 내려갔지? 아니 난 서울. 이번엔 안 내려가려고. 어어 우린 나중에 서울에서 보자. 아이 뭐 일이 바쁜 건 아니고, 뭐 엄마야 서운해 하시지. 근데 뭐 내려가봤자 잔소리 밖에 더 듣겠나 싶기도 하고. 에이, 뭐... 그렇게 됐다"


한숨으로 끝나는 제 말에 제 친구는 더 큰 한숨을 쉽니다?


"야... 그래도 솔로가 좋긴 좋구나. 그래도 야, 안 오고 싶다고 안 올 수 있는 게 어디냐. 아, 나 내려오는데 운전만 6시간 했다. 난 와이프 옆에서 계속 짜증내는데, 쯧, 우리 집 가는 거니까 뭐라 그럴 수도 없고. 부럽다 야 그럼 너 연휴 내내 집에서 혼자 있는 거야? 혼자? 넷플 보면서?"


그렇게 저는 결혼한 사람들이... 특히, 결혼한 남자들이 그렇게 부러워한다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냅니다. 침대에 누워 TV를 보고 또 보고 그러다 잠이 들고, 배가 고파져서 일어나면 냉장고를 열어보고,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새삼 확인하고 나면 혹시나 하고 냉장고 스티커에 적힌 번호들로 전화를 걸어보고, 전화 받는 식당이 없자 포기하고 주섬주섬 라면봉지를 뜯고 아까 라면 끓여먹고 설거지 하지 않은 냄비를 대충대충 헹궈서 다시 라면을 끓이고. 끓인 라면은 탁자 위에 냄비채로, 김치도 통째로, 2L 생수병도 통째로 꿀꺽꿀꺽.


이제 다시 아까처럼 누워서 TV를 보고, 메시지 도착 소리에 전화기를 와락 집어 들었다가 회사 사람이 보낸 단체문자인걸 알고는 괜히 욕도 한마디. 핸드폰을 집어든 김에 뉴스나 몇 개 클릭해보다가 그러다 또 잠들고, 새벽, 화장실에 가느라 깨어난 저는 거울에 비친 퉁퉁 부은 얼굴을 보곤 어이가 없어서 혼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결혼하면 이게 그리워진다고? 이게 그렇게 부럽다고?'


언젠가부터 부모님은 할 말이 넘치고 나는 듣고 싶은 말이 없고, 언젠가부터 부모님은 걱정이 많아지고 나는 짜증이 늘고, 언젠가부터 부모님은 목소리가 작아지고 나는 목청이 커집니다.


그게 싫어서 도망쳐 나오면 자유를 만나게 되죠.

그리워 하게 될 무엇도 없고 보채는 사람 하나 없는 완전한 자유.

결혼한 사람이 꿈꾼다는 그 자유. 그래도 그게 이런 건 아니겠죠?


내내는 아니더라도 1년에 몇 번쯤은 누군가에게 시달리는 것도, 누군가를 애써 챙기며 그래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그런 것들이 또 사랑의 많은 모습 중 하나가 아니겠냐고 퉁퉁 부은 얼굴에게 말을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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