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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nny Oct 21. 2024

23화.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마지막)

이 글을 마치며.

 

런던 북스토어에 갔는데, 모든 책마다 서점 주인/알바생이 남긴 서평이 담겨있었다. 이런 주관적인 시선이 너무 좋다. 다독을 통해 더 멋진 글로 돌아오는 yenny가 되겠습니다



 나를 아껴주는 친한 언니가 말했다. 내가 너무 세상 사람들을 순수하게 다 좋은 사람들로 바라본다고. 나는 나름대로 보이스피싱 사건 이후로 의심이 많이 생겼다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타고난 성격은 못 버리나 보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좋은 것 같고, 타고날 때부터 선한 마음을 가졌다는 '성선설'을 믿나 보다. 그래도 전 남편을 만나고 이러한 관념이 많이 깨졌다.^^ 전 남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덕분에 '남자를 쉽게 믿지 말자'라는 교훈도 얻었다. 그래도 잠재적인 불안은 있다. 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또 그 사람을 순수하게 믿을까 봐.


 한동안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던 5월부터 시작해서 정말 죽을 만큼 오랜 시간 힘들었다. 그 과정 속에서 남편을 믿었던 배신감이 더 커지기도 해서 내 마음의 증오의 불덩어리는 더 커져만 갔다. 그래서 그 증오의 부피 차지로 세상에 대한 불신은 커져만 갔고 소소하게 감사할 일이 줄어들었다. 자기 파괴적인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니 얼마나 에너지가 낭비되었겠는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불안함 때문에 사주를 보기도 했고, 그 사주에 희망적인 말을 듣고 싶었으나 남편에 대해 더 실망스러운 말을 해서 마음이 오히려 더 아려오기도 했다. 이렇게 삶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막연함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 같다. 그 막연함을 잘 견뎌내야 하는 것 같다. 삶의 모호함에 대해서는 아무도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내 삶에 대한 남은 항해 길은 내가 주도권을 잡고 잘 조종해나가야 한다. 통제권이 나에게 주어져 있을 때 비로소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 실패할 수 있다는 불안함, 내가 맞지 않을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끊임없이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 같다.


 요즘 감사일기를 쓰면서 그래도 내 삶이 많이 변했다. 무심했던 내 온몸의 촉수를 살려 시선을 하나 둘 감사한 곳을 찾는데 씀으로써 내 삶에  '주인 의식'이 생긴 것 같다. 나는 항상 남의 기분을 맞춰주느라 살았던 것 같다. 밖에 나가서는 무조건 yes였고,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에 걸린 마냥 슬퍼도 늘 웃으며 다녔다. 오죽했으면 사진 찍으시는 분이 나보고 '웃상'이라고 먼저 말씀하셨겠냐. (울상보다는 웃상이 낫다.) 그렇지만 그렇게 내 의견이나 느낌에 주인의식 없이 남에게 맞추어 살수록 남이 칭찬해 주고 좋아해 줘야 비로소 내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런데 최근에 감사일기를 쓰면서 오늘 문득 '나의 집에 나만의 공간에서 이렇게 예쁜 가구를 놓고 산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행복의 초점을 남의 반응에 두지 않고 내가 느끼는 것에 두려고 하니, 행복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리고 오늘 퇴근하고 오랜만에 피부 마사지를 받고 왔다. 예전 같았으면 '시급이 4만 원이시니 나보다 훨씬 많이버시네. 나는 실컷 공부해서 시급 만 삼천 원을 겨우 버는데, 공부한 의미가 있나.' 또는 '매일 많은 사람들을 대하느라 진짜 힘드시겠다. 힘 나시고 즐거우시게 어떤말을 전해드리면 될까?' 이런 생각들을 했을 것인데 오늘은 '내가 이렇게 열심히 돈을 벌고 모아서 마사지도 받을 수 있고 너무 행복하잖아?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단 게 믿기지가 않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감사함을 세포 곳곳에서 찾으니 행복의 삼투압이 내 삶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삶에 5년 안에 이 루고 싶은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나니 (그 목표는 이루지 못할 수도 있는 가능성이 1프로라도 있을 수있으니 부끄러워 말하지 못하겠다.) 삶에 활력이 생겼다. 늘 정착지 없이 떠도는 돛단배처럼 하루를 그냥 떠다니듯이 살았던 나에게 이제 "방향 설정"이란 게 생겼다. 내가 항해할 길이 생기니 물살을 박차고 나갈 의지가 샘솟았다.


 이 책을 새롭게 시작하면서 내가 힘든 일을 겪으면서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독자님께 힘을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오히려 내가 독자님께 힘을 받으며 내 인생의 위기를 디딛고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브런치”라는 글을 좋아하는 공간에서 공동체 형성을 통해 유대감과 연대감이 맺어진다는 게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이혼의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운동을 매일같이 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내면서 내 삶의 돌파구를 찾은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내 삶의 마중물은 사람들의 사랑이었다. 따뜻한 주위의 응원과 브런치 독자님들의 애정이 있었기에 이까지 걸어온 것 같다.


 사람을 쉽게 믿고 싶진 않지만, 여전히 세상엔 좋은 사람이 많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아도 악한 사람보다 선한 사람이 그래도 상대적으로 더 많기에세상은 아직까지는 살만한 것 같다.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휴머니즘에 빠지고 싶지는 않지만, 사람을 보는 눈도 여전히 키우고 경계를 할 필요가 있는 나지만 여전히 아기처럼 사람들의 사랑이 너무 그립고 좋기만 하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나아지듯이 내가 받은 사랑을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꼭 손에 쥐어주고 싶다. 민들레처럼 작은 감사의 씨앗을 퍼뜨려 글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얼어있는 가슴을 지펴드리고 싶다.


 모두가 진심으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 책을 마친다. 그리고 모두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 인생, 삶을 편안하고 후회없이 살아냈으면 좋겠다.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다독을 해서 스스로를 다독다독 거리며 돌아오겠습니다.)(언어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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