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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nny Oct 17. 2024

20화. 나는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우리 생활 곳곳에 숨겨진 감사함.

 

 최근에 내가 정말 아끼는 친구가 심장 박동이 150 이상으로 뛰어서 병원에 갔다. (정상 심장 박동수는 분당 60~100회 정도라고 한다.) 그다음 날 친구는 심장 패치를 붙이고 나타났다. 하루 종일 심장의 박동을 측정하는 기계라고 했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다행히 그 친구는 일시적으로 심장 박동이 빠르게 뛰었을 뿐 다시 정상적인 맥박수로 돌아왔다.

"내가 눈을 떴을 때 죽어 있을까 봐 너무 두려웠어. 그래서 잠에 드는 게 너무 무섭더라고. 그날이 나의 마지막이 될까 봐. (내 친구의 아내는 임신 중이었다.) 그 이후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가 살아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나도 내 말을 늘 한결같이 포근하게 잘 들어주는 그 친구가 살아있음에 너무 감사했다.


 얼마 전의 또 다른 친구는 자기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인해 신장에 이상이 생겨 집에서 매일매일 투석을 하신다고 그간의 마음고생을 그리며 눈물을 내비쳤다.


 우리가 당연하게 느끼고 있는 모든 신체기관의 움직임이 건강하게 정상적으로 작동을 하며 흘러간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매 순간 당연하고 둔하게 여기던 모든 것들에 감사함을 잊고 그 밖의 현실의 문제 때문에 끙끙 앓고 슬퍼만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최근 10일 동안 감사의 일기를 매일 10개씩 적어보았다.

"아침에 눈을 뜨게 해 주셔서 저의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

"건강한 팔다리로 오늘도 다닐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의 다양한 소리를 오늘도 들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족이 건강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과자 파티를 교실에서 했는데, 반 아이들이 저에게 과자를 먹으라고 수북이 주었어요. 아이들의 사랑을 받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급식에 맛있는 찹쌀 꽈배기가 나왔어요. 맛있는 밥을 먹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날씨가 맑아요. 맑은 햇살을 교실 너머로 쐬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범진'의 '인사'라는 노래를 발견했는데, 노래가 너무 좋았어요. 새로운 노래를 발견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할머니가 꿈에 나왔어요. 보고 싶었던 할머니를 꿈에서라도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뒤로 갈 수록 감사일기는 구체적으로 적으면 좋을 것 같아서 더 구체적이어져 갔다.)


내 감사의 일기장은 '하루라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적어보자'는 목표 하나로 곳곳에 숨어진 감사함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세상에 알고 보니 당연하게 숨 쉬고 뱉는 공기처럼,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감사함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렇게 감사함을 찾고 나니 아프지 않고 "건강"하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건강이 최고의 자산임을 다시 알게 되었다.


우리는 "건강"을 당연시한 채 너무나 많은 세상의 풍파 속에 지치고 치이고 옥죄어 있는 것은 아닌지. 욕망에 사로잡혀 건강을 돌아보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감사 일기는 그래도 내 하루를 버티게 해 주는 뿌리가 되었다. 하루 정도 감사 일기를 쓰지 않는 날에는 책의 구절에서 아름다운 문구를 필사하며 보내기로 했다. (최근에 읽은 책은 "뼈 있는 아무 말 대잔치"였다. - 저자: 신영준 고영성) 내가 잊고 있었던 좋은 문구들을 필사하면서 다시 내 가슴을 지펴주고는 했다.

그 문구도 몇 개 공개하고자 한다.

"늦은 때란 없다. 부족함을 빨리 인정하고 아쉬운 만큼 더 노력하라."

"원대한 목표를 가져라. 작은 실패 속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으니."

"무엇인가를 해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차분히 앉아서 포기해야 할 것부터 적어라."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편안함과 바꿀수 있는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둘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 라인홀트 니부어-"

"자신의 업무 분야에서 '임계점'이 넘도록 노력을 해야한다."

"자신의 고통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그 누구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남 대신 아파해 줄 수도 없고,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다. 나를 죽이지 못 한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 -니체"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행복을 결정한다 - 조지 베일런트-"


세상 사람들이 온 피부로 감사함을 느끼며 따뜻하고 건강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면 좋겠다. 나도 물론 이 감사 일기를 써 내려가며 정말 다시 마음이 밝아지는 그날까지 튼튼하게 기초 공사를 해야겠다. 잠에 들기 전에 하루를 감사함을 되새겨보며, 눈을 떴을 때도 하루의 주어짐에 감사함의 미각을 다시 찾으며 살아야겠다. 우리 인생은 그냥 살라고 주어진 게 아님이 분명하다.


이 글을 쓰고 나서, 샤르댕의 <시장에서 돌아온 여인>이라는 작품이 생각이 났다. 


 샤르댕이 그린 부엌의 그림을 보기 전까지 내가 부엌에서 본 물체들은 신선할게 없는 다 익숙하고 진부한 이미지들이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보고 우리 집 부엌에 있는 물체들과 비슷한 것이 있으면, 괜히 그 물병이 더 특별해 보이고 각각의 물체는 의미를 내포하면서 생명력을 부여받게 된다. 힙한 매장에 있는 물건에 있는 라이터 하나 마저도 감각있고 개성있어 보이는 법이지 않는가. 나의 무심함으로 인해 평범해 보이는 무엇인가가 의미와 아름다움을 되찾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새로운 시선을 투입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겠다. 

"네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 까지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 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 처럼 내 희미해져갔던 일상과 오늘도 건강히 돌아가는 나의 오장 육부에게 특별하고 감사함을 느끼며 감사함을 우주 무한대로 증가시키며 살아야겠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염세주의에 빠지지 않고 감사함을 찾아가는 지혜를 가지며 주관적인 이성으로 무채색으로 변질되어 가던 나의 하루에 생명력을 깃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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