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 언제쯤 강해질까요?
가는 인연을 붙잡지 말고, 오는 인연을 맞이하는 게 인생이겠지.
오늘 운동장을 우연히 보았는데 벌써 나무가 울긋불긋 물이 들고 있었다. 친구가 운동장의 가을 단풍나무를 보고 나에게 감동의 편지를 보낸 지가 벌써 1년이 되었다니, 세월의 빨리 감기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가속화되는 것 같다. 가을 단풍나무를 보는데 마음이 시큰~한다. 1년 전에 작은 학교의 쏟아지는 업무 폭탄으로 집에서 퇴근하고 나면 내내 우느라 시간을 보냈는데, 지금의 1년에 비하면 작년 1년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다. 지금 1년도 노년에 바라봤을 때 작은 점 하나일 뿐임을 희망한다.
나는 유독 사람과의 정이 많아서 누군가와 헤어질 때 참 힘들어하는 것 같다. 신규교사로서 2학년 아이들을 처음 만나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헤어짐의 인사를 할 때도 떠나가는 아이들의 눈물을 합한 것만큼 펑펑 아이들 앞에서 울어댔다. 그때 한 선생님이 이야기하셨다.
“처음이라서 그래요. 나중에 시간 지나면 매 해 눈물 안 날걸요?”
그러고도 나는 10년째 종업식 때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 바르고 훌륭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도 우리 꼭 연락하며 지내자.”라며 말을 채 두 마디 이상을 잇지 못하고 아직도 먹먹한 마음에 눈물을펑펑 흘려대는 울보 선생님이다.
얼마 전에 8년 전 4학년이었던 제자가 고3이 되어 연락이 왔다. 정말 장난꾸러기였는데 순수하고 바른 아이라 기억에 남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아이가 나한테 이렇게 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 잘 지내세요? 안부 연락 한 번 드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연락드려요. 한 번씩 00 초등학교를 지날 때면 아직도 장난기 많았던 저를 잘 이해해 주시고 여리시던 선생님 모습이 생각나요. 지금까지 12년 동안 학교 생활을 하면서 선생님이랑 함께했던 4학년 때가 가장 좋았고 학교 가는 하루하루가 설레고 재미있었어요. 선생님이 아직도 제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이유는 아마 선생님이 써 주신 편지 때문인 것 같아요. 초등학교 이후로 공부하면서 힘들거나 우울하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선생님이 써주신 편지를 보면서 힘을 많이 얻었어요. 나도 누군가에게 비타민 같은 존재고, 웃음과 밝음이 많은 사람이구나 느끼면서 정말 많은 힘을 얻었어요. 그래서 꼭 감사 인사 드리고 싶었어요. 수능 잘 마치고 성인 되면 4학년 때 반 친구들일아 다 같이 한 번 보고 싶어요. 키도 많이 크고 장난꾸러기 탈출한 저도 보여드리고 싶고요.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감동의 메시지를 볼 때마다 내가 아이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나는 참 여린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구나 싶다. 영원한 이별은 없으므로,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꼭 연락을 주고받으며 늘 그들의 인생이 올곧기를 응원하고 싶다.
이렇게 이별에 취약한 내가, 살면서 유일한 영원한 이별은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일 것이다. 처음 겪은 영원한 이별은 외할머니와의 이별이었다. 삶과의 이별이란 정말 살을 파고들 듯이 아팠다. 더 이상 불러도 허공에서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흩어졌기 때문이다.
그다음 영원한 이별들은 내가 사랑했던 남자친구와, 그리고 남편, 아버님과의 이별이다. 매번 사랑과의 이별도 세상이 끝날 것처럼 슬펐지만 때가 지나면 상처가아물고 새 살이 돋아나듯, 새로운 사람으로 이 아픔도 무뎌지고 쓰라림도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것이다. 다만 아직 상처를 덮기에 탄력적 회복성이 낮아져 그 아픔의주기가 자주 돌아오기는 한다.
어떤 이별이든 안 아픈 이별이 어디 있으랴. 영원할 것 같던 사랑도 영원하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부터 가슴을 후벼 판다. 그렇지만 이별에 강인한 사람이 되는 것도 살아가는데 어른으로서의 준비물이라 생각한다. 매 번의 이별의 모양이 참 다양하고 아픔의 크기도 다르지만, 인연을 끊는다는 것 자체가 아직은 서툴고 믿기지가 않는다. 쇠사슬을 가위로 연신 잘라대야만 하는 기분이다. 맺고 끊음을 잘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끊는 것이 여전히 아프기만 하지만,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좋은 인연은 끝까지 맺어가고 내 인연이 아니라면 과감하고 냉정하게 보낼 줄도 아는 용맹한 잔다르크 정신을 가지고 싶다.
계절은 누군가를 기다려주지 않고 묵묵히 자기 자리를돌고 돌아 또 찾아온다. 내년의 이 계절엔 내가 조금 더돌에서 부단히 두드려져서 쇠로 만든 연장인 “정”이 되어있길 바란다.
어제 만난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네가 당당하지 못할게 뭐가 있어? 너는 이렇게 예쁘고 직업도 좋고 똑똑한데. 네가 왜 자존감이 낮아져야 해?”
“내가 살아보니 말하는 대로 나는 다 이루어지더라. 어떻게 삶이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외로움을 너무 느끼지 말고 긍정적으로 계속 회로를 돌려봐. 그럼 정말 네가 바라는 대로 다 이루어질 거야.”
“당분간은 누군가를 만나려 하지 말고, 너 자신이 주인공이 돼서 ‘내가 낸데’ 라며 뻗대듯이 좀 살아봐.”
“나는 지금 당장 파혼해도 하나도 안 아플 것 같은데? 당당한 나 자신인데 내가 왜 아파야 해? 살다가 안 맞으면 파혼할 수도 있지. 사실혼보다 혼인신고 한 게 훨씬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낫다.”
결혼을 앞둔 극 T인 친구에게 오랜만에 상담을 했더니 정말 뼈 때리고 정신이 번쩍 드는 말들을 많이 해주었다. 감정적으로 너무 공감이 빠져있어 조금 아프기도 했지만 내가 아파한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님을 안다. 이래서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보며 우물 안에서 빠져나와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나 보다.
그래. 당당하게 사는 연습을 하자. 지구가 하루에 한 바퀴 돌 듯 나도 그 지구를 건강히 돌아가자. 하루의 한 바퀴도, 1년의 한 바퀴도 중심축을 잘 잡고 지구 위가 빙판 위라 생각하고 삶의 피겨스케이팅을 다양한 기술을 연마하며 즐기며 회전해야겠다.
“나는 이별의 아픔에 둔해질 것이다. 10년 뒤의 나는 정말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해 있을 것이다.”
아직은 조금 버겁지만 긍정의 회로를 수동으로 바꾸어 열심히 오늘도 돌려본다. 긍정의 힘을 믿는다. 내 안의 또 다른 아이를 우리 반 아이들 달래듯 어루만진다.
초등학생들의 이별법은 참 쉽다. 카톡으로 사귀자고 하고, 일주일만에 헤어졌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한 반에서키득키득 장난치며 보낸다. 우리 반에 4개월을 사귄 남녀 커플이 있는데 얼마전에 헤어졌단다. 그 중 여자아이는 다른 남자아이와 또 썸을 타고 있는데, 상대방 전 남친인 우리 반 아이는 그것을 또 해맑게 웃으며 이야기한다. 초등학생의 사랑법은 쿨한 것일까. 아프지 않아하는 이별법이 부럽기도 하다. 어른들의 사랑과 다른세계의 깊이같다. 어른이라는 것은 많은 부분에서 아파하며 감당하고 견뎌야 할 무게가 크다는 것이겠지.
질문: 독자님들은 어떻게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