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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Bye 2024 - #1 밴드 동아리

작년의 기억 중 분명 가장 맹렬한 것은 밴드 활동이다

by 요우 Mar 03. 2025
2024년이 끝나고, 2025년이 시작된 지 벌써 3개월이 지나갔다. 생각보다는 조금 덜 추웠던 겨울이 옆으로 지나가고, 조금은 애매한 봄의 느낌이 생각보다 가깝다. 2024년 회고는 최초의 글을 작성한 지 시간이 꽤나 흘러갔지만, 연초에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뒤늦게나마 남겨두려 서랍에서 꺼내 다시 살펴본다.

원래는 밴드, 인간관계, 연애와 결혼, 업무/일 등 여러 개의 소주제로 작성하고 있던 2024 회고에 대한 더욱 큰 글이었지만, 작성자의 역량 부족으로 한 주제씩 떼내어 별도로 작성한다.
2024년 12월 20일 정기공연 "Do Not Eat" 팀

2024년을 돌아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회사 밴드 동아리 활동이다. 2024년 1월, 새해가 시작되었을 때 나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상황이 급격하게 변했다. 잠시 혼란했던 시기를 지나 보니 나의 인간관계와 일적인 환경에 큰 변화가 생겼다. 결과적으로는 열과 성을 쏟던 대상에 대한 상실을 겪은 시기다. 가 집중하던 대상이 사라지니, 새롭게 열과 성을 쏟으면서 집중할 것이 필요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거의 이름만 올리고 있던 회사 밴드 동아리 "The Band Alive"였다. 


2023년까지는 한 개의 팀에서만 활동하면서, 한 달에 한번 정도 모여 합주를 진행했다. 그리고 가끔 동아리 멤버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정기 공연에 올라가 연습했던 결과물을 보여주는 정도로 가볍게 활동했다.


2024년 50% 개발자, 50% 아마추어 뮤지션처럼 살았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스쿨 밴드 활동에서 느꼈던 그 감정이다. 물론 그때와는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지만, 분명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익숙한 . 그냥 밴드 활동 자체가 내게 어떤 정신적 만족감을 줬던 것 같다. 어버렸던 취미 활동을 찾게 된 즐거움이든, 새로운 인간관계 확장의 즐거움이든, 뭔가 대단한 도파민이 분명 있었다. 하반기에는 좀 수그러들었지만, 그럼에도 분명 2024년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활동이다.

잡담:

팀 하나에만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이미 다른 팀에서는 매일 합주 끝나고 뒤풀이를 근처 호프집에서 같이 진행하며 멤버들 간의 친목을 다졌다고 한다. 내가 2023년까지 몸 담았던 유일한 팀은 대부분 유부남 형님들이라 다들 칼귀가하여 해당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

나는 이 사실을 처음으로 다른 팀에 들어갔을 때 알았다. 어떤 모임이던 결성 초반이 가장 불타오르는 법인데 그 시기를 놓친 것. 이 사실을 기타리스트 형과 내가 굉장히 아쉬워했다. 동아리가 2022년 여름에 생겼고, 나도 거의 생기자마자 가입했으니, 대충 1년 반 정도의 큰 아쉬움.

뒤늦게나마 좀 설쳐대며 다른 멤버와 조금씩 친분을 만들어갔다. 하지만 분명 같은 짓을 두 번은 못할 것 같다. 이래저래 놓친 것이 많아 아쉬움이 많은 초반이었고, 이때의 아쉬움은 4월 대부도 워크숍을 총대매고 추진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2024년 4월. 도파민 최고 상태에서 떠났던 "대부도 워크숍(을 가장한 MT)"

2024년 한 해 동안 7개의 밴드 팀에서 7번의 공연 무대에 올랐다. 분기별로 진행 모든 동아리 정기 공연 무대에 올라갔고, 외부 주최의 별도 공연 무대도  올라갔다. 공연했던 곡수로만 따져도 22곡이다. 멀쩡하게 회사를 다니는 평사원이 이 정도 활동을 한다는 것은 거의 평일 저녁을 밴드에 헌납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상반기 합주가 많을 때는 1주일에 3~4번씩 합주실로 퇴근했다. 기본적으로 재택근무가 활성화된 회사다 보니, 어떤 때는 같은 회사 팀원보다 밴드 팀원을 더 자주 보던 주간도 있었다.

2024년 10월. 사옥 1층에서 진행된 사내 행사에서 카혼 주자로 공연하다.

2024년 3월 정기공연 즈음부터는 공연 기록을 남기기 위해 촬영 감독을 자처했다. 촬영 감독을 자처하게 된 배경은 과거부터 느껴왔던 오래된 감정이다. 나는 10대 후반부터 종종 밴드 공연을 해왔다. 분명 열심히 준비했던 무대에 올랐을 대의 벅참도 있지만, 그 무대가 끝났을 때의 공허함, 허무함, 혹은 아쉬움 따위가 있다. 나는 그 감정이 참 싫었다. 그러다 보니 그때의 감정을 다시 떠올리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영상 찍어 남기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의 밴드 동아리에는 이런 고민을 하는 분이 크게 없었던 거 같다. "그럼 내가 해야지 뭐" 렇게 촬영 담당을 자처했다. 혼자서는 한계가 있어서 동아리 내 촬영 관련된 소모임도 만들었다. (숨어있던 고수들이 많았다) 공연 영상을 촬영하려면 이래저래 공연 장소도 휘젓고 다녀야 하고, 공연 관람하는 분들께 방해도 될 수 있어서 영 조심스럽다. 다행히 다들 잘 이해해 주셔서 2024년 12월 즈음에는 개인적으로 만족할 수준의 영상을 남길 수 있었고, 동아리 멤버들도 고마움을 얘기해 주서, 개인적으로 2024년 가장 보람 있었던 일 중에 하나다.


2024년 12월 공연에서 3박 4일 동안 50편 정도의 영상을 편집하는 기염을 토했다.

누군가는 "난 내가 한 공연 절대 다시 안 봐!"라고 얘기한다. 사실 나도 내가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더 흐르고, 언젠가의 나중에 이렇게 남겨둔 이 영상들은 과거의 그 감정을 떠올리는 좋은 추억거리이자 즐거운 안주거리가 된다. 나는 지금도 10년 전, 15년 전 같은 밴드를 했던 친구들을 만나면 가끔 다 같이 예전 공연 영상들을 보곤 한다. 별다른 장비 없이 휴대폰으로 촬영한 과거 영상이니, 화질도 음도 지금과 비교하면 엉망진창이다. 그렇지만 무대에 올랐던 그 감정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화질이나 음은 상관없다. 그때만큼은 다들 과거 그 무대에 올랐던 기억으로 돌아간다.


지금 밴드 동아리 멤버들도 언젠가 나와 같은 경험을 공유하길 바라며, 올해도 기회가 된다면 공연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고, 깎아갈 예정이다.




회사 안에서의 밴드 활동을 꽤나 정성스레 하면서  "이래도 되나?" 싶었던 적이 명 있었다. 상반기 당시 회사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멈춘 상황이었고, 행 중 다행으로 추가 근무가 크게 필요하지 않던 상황이라 퇴근 후 남는 시간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런 생각도 든다. 드럼 치고, 기타 치고, 합주하던 그 시간에 내가 개발 공부를 더 했으면 좀 더 좋은 개발자가 되지 않았을까? 아니면 외국어 하나를 진짜 마스터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그냥 예전부터 다른 조건으로도 자주 생각해 보던 쓸데없는 생각이다. 분명히 나는 이 활동으로 얻은 것들이 많다.

2024년 10월. 동아리 멤버들과 2박 3일로 함께 떠난 "부산락페스티벌 2024"

2024년은 밴드 활동을 통해 좋은 추억도 많이 생겼고, 다양한 팀에서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다 보니 관계도 많이 넓어졌다. 나는 이 회사에 경력직으로 입사했기에 같은 업무 팀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알거나 교류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150명에 육박하는 밴드 동아리에 깊게 묻혀 활동하다 보니, 다양한 팀과 직군에 알게 된 사람들이 많아졌다. 종종 그분들을 통해 일적으로도 도움을 받거나, 새로운 인사이트나 정보를 얻게 되는 경우 있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가장 큰 감사함을 느낀다. 누군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라고 말했다. 나는 성향상 다양한 직업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종종 어울리는 편인데, 정말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치고 나쁜 사람은 없다는 말에 크게 동감한다.


2025년 밴드 더 열심히 해보고 싶은 마음 반, 억제하고 싶은 마음 반이다. 당연히 본업이나 먹고사는 문제에 지장을 주지 않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작년은 이래저래 조건들이 겹쳐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조금 위험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뭘 하든 중용의 자세가 필요한 법인데, 본업에 더 충실하거나 다른 관심사를 가져서 균형을 맞춰보는 것도 좋겠단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이 동아리가 잘 유지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하시는 운영진 분들께 마음으로 감사함을 전한다. 그리고 나와 밀접하게 잘 지내준 몇몇 분들도 마찬가지다.




2024년 밴드 동아리 활동 연대기

2024년 1월 - 정자역 앞 버스킹 팀 합류

2024년 3월 4일 - 동아리 멤버에게 버스킹용 카혼을 중고로 매입

2024년 3월 22일 - 3월 정기공연 ("김윤지와아저씨들" 팀) / 팀 해산

2024년 3월 26일 - YENA 커버 팀 "예나지금이나" 팀 합류 (드럼)

2024년 3월 26일 - 윤하 커버 팀 "단짠단짠" 팀 합류 (드럼)

2024년 4월 20일 - 대부도 워크숍(을 가장한 MT)

2024년 4월 29일 - 비싼 Fender 기타를 구입

2024년 5월 30일 - 정자역 앞 광장 버스킹

2024년 6월 14일 - 6월 정기공연 ("예나지금이나", "원만한합의" 팀) / "예나지금이나" 팀 해산

2024년 6월 16일 - 실리카겔 커버팀 "Do Not Eat" 결성

2024년 6월 22일 - 성남 락 페스티벌 참여 ("원만한합의" 팀)

2024년 7월 - "원만한합의" 팀 탈퇴

2024년 7월 2일 - "시작하는사람들의모임" 시사모 B팀 결성 (기타)

2024년 7월 2일 - RHCP 커버팀 "레드핫크림파스타" 팀 합류 (드럼)

2024년 8월 31일 - IT 회사 연합 공연 "GO FOR IT" 구경

2024년 9월 27일 - 9월 정기공연 ("단짠단짠" 팀)

2024년 9월 30일 - 비싼 암페로 기타 멀티 이펙터를 구입

2024년 10월 4일 - 2박 3일 2024 부산락페스티벌 원정

2024년 10월 30일 - 사내 GREENY DAY 행사 버스킹 참여

2024년 11월 1일 - 급 에버랜드

2024년 11월 22일 - "시작하는사람들의모임" 학예회

2024년 11월 22일 - QWER 커버 팀 합류

2024년 12월 13일 - 12월 13일 정기 공연 ("레드핫크림파스타" 팀)

2024년 12월 20일 - 12월 20일 정기 공연 ("Do Not Eat" 팀)



2025년 1월 7일에 초안을 작성하다.
2025년 3월 2일 카페에서 내용을 덧붙이고, 글을 갈무리하다.
2025년 3월 3일 소파에 누워 최종 탈고하여 발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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