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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슬 Mar 19. 2018

04. 잠시, 방앗간

방콕으로 향하는 구름 위에 있다. 언젠가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서쪽으로 날아갈 때 방콕이 그 사이에 있으면 잠시 내려와 숨을 고르다 간다. 딱히 하는 건 없지만 왠지 그냥 지나치기엔 아쉬운 곳.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들락날락하다 보니 벌써 열다섯 번 가까이 입국 도장을 찍었다. 

처음 자유여행을 한 건 12년 전 도쿄이지만 처음으로 자유로운 여행을 한 건 9년 전 방콕이었다. 카오산 로드. 키가 180센티미터를 훌쩍 넘는 금발 청년들이 머리 위까지 올라오는 배낭을 메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모습이 부러웠다. 나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어디서 왔을까, 어디로 가는 걸까. 가방엔 무엇이 들어있을까. 그들과 같은 모습을 한 나를 상상하기도 했다. 언젠가는 생각에 그치지 않고 그런 배낭을 사서 메기도 했다. 고작 2주일짜리 장기여행 코스프레가 되었지만.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그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이 것이 그들을 동경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내가 보는 장면의 프레임 안에 나도 함께이고 싶었다. 똑같이 커다란 배낭을 메고 그들 사이에 서 있는 모습. 넉살 좋게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낯가리는 성격 이면서도 호스텔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먼저 웃고 인사하려는 이유가 그것인지도 모르겠다. 서울에서는 나만 그런 것 같아서 어색한데 방콕에서는 모두가 그러고 싶어 하니까. 내가 자유로워지는 것을 도와주는 방콕. 이제 비행기는 한 시간 뒤에 착륙한다. 이렇게 인도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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