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방콕에서는 소소한 일상으로 하루를 채우고 있다. 깨진 아이폰 액정을 고치고, 약국과 편의점에서 로션이나 바디샤워 같은 걸 사고, 환전을 하고, 머리 모양을 바꾸고, 저녁이 되면 아는 매니저가 운영하는 호스텔에 들러 수다를 떤다. 그러다 졸리면 들어와서 잔다. 한국에서 격무에 시달리다 이런 하루를 맞이하는 거였다면 무척이나 감격스러웠을 텐데 그건 또 아니라 약간 머쓱한 기분도 든다. 그래도 좋다.
좋은 게 많지만 그 중 가장 좋은 건, 언제 끝날지 가늠하기 쉽지 않은 여행을 다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은 있지만, '53일 뒤에 돌아간다...'는 문장은 쉽게 와 닿지 않으니까. 그저 하루를 채우는데 집중하는 여행을 하는 것이 얼마나 오래간만인지. 그때의 느낌을 다시 느끼는 것이 좋다. 이 느낌이 그때는 소중한 지 몰랐지만 이번에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5년 만에 찾았으니 서울로 돌아가면 또 5년이 걸릴 수도 있으니까 그만큼 소중해진다. 이렇게 막연한 여행을 하는 건, 매일 밀리는 일을 처리하는 게 아닌 그때그때 블록을 집중해서 세워 하루라는 작품을 만드는 기분이다. 이번 작품에는 여백을 많이 그려야겠다. 지친 서울의 일상에서 떠올릴 추억으로 삼을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