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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Sep 10. 2019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

치앙마이 한 달 살기


Subi와의 대화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우리보다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그녀의 이야기는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우간다에서 몇 년 동안 머물면서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활동을 했던 이야기도 들려줬다. 열악한 환경에서 봉사를 원하는 인력은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그리고 대부분 그 나라에서 머물기 위한 부수적인 방법으로 봉사활동을 선택하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자주 바뀌었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수많은 나라에서 반복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그녀도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지만, 어떤 순간을 계기로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아이들과 텔레비전을 보고 쉬면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의 팔과 다리에 여섯 명의 아이들이 매달려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There was too much. Too much touching." 바로 그 순간 '나'라는 하나의 존재에 얼마나 많은 마음들이 매달려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문자 그대로, 아이들은 '매달려' 있었다.


아이들은 잠깐의 눈맞춤이나 대화로도 사랑과 지지를 느끼고 흡수한다.


Subi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한 첫 해의 어떤 순간이 떠올랐다.


수업을 마치고 1층에 내려와 교무실로 돌아가려고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복도를 지나가던 아이들 중 세네 명이 나를 보고 반가워하면서 달려들었다. "선~생~니임~" 동시에 그 아이들은 나를 중심에 두고 양쪽으로 팔짱을 끼고 매달렸다. 그리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행동과 눈빛에서 진심이 벅차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내 속에서 뭔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머릿속에선 Subi가 말한 것처럼 "Too much, Too much touching" 경보가 울리고 있었다.


선생과 학생, 어른과 아이의 관계에서 대부분의 경우 전자는 후자에게 베풀고 제공하는 입장이 된다. 아이들은 상투적인 표현 그대로 마른 스펀지와 같아서 무엇이든 흡수해버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을 상대하는 것은 그만큼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때로는 그 에너지가 학문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순전히 감성적인 것일 수도 있다. 잠깐의 눈맞춤이나 대화로도 사랑과 지지를 느끼고 흡수한다.


문제는 이런 관계가 1대 1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교 선생님의 경우 대부분 하루에 120명 이상의 학생들을 만난다. 한 반에 서른 명 내외의 학생들을 네 반 이상씩 매일 만나다 보면 언제부터인가 학생들이 개인으로 인식되지 않는 순간이 찾아온다. 서른 명을 만나는 것이 아니고 한두 명을 만나는 기분으로, 다양한 개인보다는 뭉뚱그려진 느낌으로 특정 반을 기억하고 대하게 된다.


그렇게 흐릿하고 뭉뚱그린 대상을 마주하고 수업을 하다가 복도에서 마주친 아이들은 하나하나가 또렷한 개인이었다. Subi가 그랬듯이 나에게 매달린 아이들의 마음이 너무나 잘 보여서, 나도 나의 한계를 깨달은 순간이었다.


나를 오롯이 돌봐줄 수 있는 시간


그 뒤로 나는 나의 에너지를 채우는 시간을 꼭 챙기게 되었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무엇으로 정의되는 공간을 떠나 한적한 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내가 좋아하는 곳을 찾아가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먹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울고 웃는, 나를 오롯이 돌봐줄 수 있는 시간. 그런 시간들이 쌓여 사회적인 공간에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머물기로 결심하고도, 특별히 무엇을 하겠다고 계획한 것은 없었다. 정해진 시간에 쫓기면서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보다는 아무런 계획 없이 그냥 있는 것이 좋아서. 편안한 곳에서 충분히 자고 푸른 자연과 매력적인 하늘에 감탄하고 가끔 궁금했던 책을 찾아 읽고 글을 쓴다. 맛있었던 음식은 몇 번이고 다시 찾아가서 먹고 아이스크림 트럭이 오는 소리가 들리면 뛰어내려 간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나를 충전하는 중이다.



오후 2시 즈음 숙소 앞에는 매일 이렇게 생긴 아이스크림 트럭이 지나간다. 멀리서부터 짤랑거리는 종소리가 들리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뛰어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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