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페터 한트케
# 말이 필요 없는 세상
대학 졸업을 앞둔 방학의 어느 날이었다. 혼자 학원을 다니던 때였으니까.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았다. 저녁을 먹기 위해 냉장고에서 먹을 것을 꺼내고 주방에서 음식을 만든 뒤에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보고 설거지를 하고 문서 작업을 하고 내일 입을 옷을 고르고 씻고 침대에 누웠는데,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하는 행위는 주체가 분명하다. 어떤 생각을 떠올리고 그 생각에 맞는 단어와 문장, 그리고 톤과 타이밍을 고른다. 내가 생각한 것이 정확하게 전달되었는지 확인하려면 상대의 반응에 집중해야 하고, 많은 경우 이어지는 대화에서 상호 작용을 통해 더욱 견고한 의미를 띠게 된다. 하지만 말하는 이를 위한 관심과 집중, 적극적인 상호작용이 필요한 이런 대화를 오늘의 우리는 얼마나 나누고 있을까?
페터 한트케의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은 주인공 블로흐가 해고를 당하면서 시작한다. 아니, 해고를 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해고를 한다는 말은 없지만 현장감독이 힐끗 쳐다보는 눈길, 블로흐는 그 눈길만 보고서 자신을 해고하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공사장을 떠난다.
이후 이어지는 블로흐의 일상은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누구를 왜 만나고 어디로 가는지도 정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표지에 나온 뭉크의 그림 속 어두운 강물을 떠다니는 것처럼 그냥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닌다. 그 와중에 블로흐는 수많은 불통을 경험한다. 말이 필요 없거나 잘 들리지 않는 대화, 착각하거나 서로 딴 말을 하는 관계가 넘쳐나는 가운데 그는 한 여자를 살해하고 말을 못 하는 아이가 실종되었다 시체로 발견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애초에 책에서 그려지는 그의 여정은 블로흐가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눈길만으로 해고된 것에서 시작되었다. 자연스럽게 질문이 뒤따르는데 그는 과연 해고된 것이 맞을까? 해고된 것이 아니라면 블로흐가 눈길 하나만으로도 그렇게 받아들일 만큼 수많은 짐작과 오해가 이미 쌓여서 잘못 받아들인 것이 된다. 해고된 것이 맞다면? 그렇다면 더욱 슬픈 일이다. 한 사람의 존재를 삭제하는 데 말이 필요 없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일하던 곳에서 말 한마디 없이 눈길만으로 해고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두말할 것 없이 기분이 나쁠 것이다. 그런데 블로흐가 공사장을 나와서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공사장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장소에서 이미 말이 필요 없어졌다. 블로흐가 팔을 높이 들기만 했는데도 택시가 그의 앞에 와서 서고, 심지어 빨리 타라고 종용한다. 호텔에 걸어 들어가기만 했는데도 그에게 방을 안내하고, 역시 아무 말하지 않았는데도 다음날 아침에는 짐을 빼버린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점점 더 그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가 대답하려고 하면 그녀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지레짐작했기 때문에 그는 입을 닫아버렸다. (중략) "오늘 일하러 가지 않으세요?"하고 그녀가 물었다. - p.24
말없이 상대방의 생각을 단정 지어 버리는 일들이 반복된다. 그리고 블로흐는 이것을 상당히 불쾌하게 받아들인다. 아니,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상처를 받았고 그것이 오랜 시간 쌓여온 것 같다. 그가 말하는 것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행동하는 그녀를 보면서 쌓여있던 감정들이 폭발해 버린다. 단순히 월요일이 되었음에도 출근하지 않는 그를 보고 그녀가 "오늘 일하러 가지 않으세요?"라고 물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블로흐는 그녀를 죽이고 만다. 짐작하자면, 블로흐는 그녀의 말 한마디 뒤에 더 많은 비난과 멸시의 대사들이 떠다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
블로흐의 해고와 살인이 모두 말 한마디, 말을 포함한 '소통'에 문제가 생겨서 일어난 것이다.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에서는 '말'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의미심장하게 느껴진 것은 말 못 하는 학생의 실종에 대한 이야기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블로흐는 같은 식당에 있던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는다. 누군가 이틀 전 보행 장애를 가진 학생이 실종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옆에 놓인 신문을 보던 블로흐는 실종된 아이가 보행 장애를 가진 것이 아니라 말을 못 하는 학생이라는 발견 한다. 실종된 학생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정정해 주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넘어가 버린다. 실종 사건에서 잘못된 정보는 치명적이다. 하지만 잘못된 정보가 아무렇지도 않게 부유하는 세상은 실종된 아이에게 관심을 갖는 이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질까? 중반부에서 등장한 세무 요원은 '가격으로 가치를 판단한다'라고 딱 잘라 말한다. 가격이 없는 대상은 거래 가치가 없는 것이므로 적어도 직업상으로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덧붙이면서. 그의 말 다음 '벙어리 학생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다.'라는 문장이 이어진다. 경제적 가치가 없고 어디에서 널려 있는 존재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찾지도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블로흐는 길거리에서 여자 상인이 갑자기 일어나 어떤 학생 뒤를 쫓아가는 이상한 장면을 목격한 것이 뒤늦게 기억해낸다. 그러나 바뀌는 것은 없다. 당시에도 그 장면에 의미를 두지 않았고, 실종 학생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떠다니는 것을 정정하지도 않았다. 말도 못 하고 눈길만으로 공사장에서 지워진 블로흐 마저도 다른 존재를 그렇게 대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 골키퍼는 공이 라인 위로 굴러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블로흐가 우연히 만난 일꾼은 "사실 그들 모두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언어장애자들이에요."라고 말한다. 말 못 하는 아이의 시체가 발견되고 난 후다. 블로흐가 해고되었다고 생각하고 공사장을 나온 이후 이어지는 여정에서 제대로 소통을 하고 있다고 보이는 장면이 없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인물들이 말 못 하는 아이와 다를 바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되어도, 그리고 어디선가 시체로 발견되어도 아침 식사 중에 잠시 지나가는 말로 소비되고 끝날 수 있는 그런 존재. 그마저도 잘못된 정보를 품고 있을지 모른다.
책의 주인공 요제프 블로흐가 과거 꽤 잘 나가던 유명한 골키퍼였다는 설정은 그래서 흥미롭다. 골키퍼는 모든 것을 상대방의 몸짓 하나로 파악한다. 페널티킥 상황이라면 더욱 극단적이다. 얼마든지 페이크 동작이 나올 수 있으므로 상대의 동작을 관찰하면서도 어떤 정보도 믿어선 안 된다. 페터 한트케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습관이 되어'있고, 그것이 우스운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습관이 되어 있지만, 그러나 우스운 일이지요." - p.155)
그렇다면 블로흐가 사는 세상을 2019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입하면 어떨까? 아무 말 없이 해고되고 아무 말 없이 살인하는 장면이 이상하게 읽히는 걸 보면 페터 한트케가 그리는 세상보다는 더 밝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대상의 가치를 따지고, 다른 이의 삶을 단정 짓는 장면들이 낯설지만은 않다. 일상의 모든 순간들을 스포츠 경기처럼 살아가는 것은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혀온다. 오늘 우리는 의미 있는 대화를 얼마나 나누었을까? 잠시 공을 내려놓고 대화를 나누자. 상대의 숨겨진 의도를 짐작할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담은 대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