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밴쿠버 딸기아빠 Jan 02. 2019

이민에 성공하려면 통장 잔고가 주는 속도를 늦춰라

캐나다 지폐들


내가 Electrical Apprentice로 취업하여 Full Time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크고 작은 변화들이 생겼다. 그 중에서 가장 유의미한 변화를 한 가지를 꼽으라면 바로,


"통장의 잔고가 더 이상 줄지 않는다"


라는 것이었다.


'딸기아빠가 취업해서 밴쿠버에서 4인 가족이 먹고 살 만큼 버나봐'라고 오해할 수 있는 데, 절대 그건 아니다. 아직까지는 월 300만원 정도의 박봉을 받고 있을 뿐이며, 갓 취업했을 때는 고작 200만원 정도 벌었다. 그런데 어떻게 통장 잔고가 줄지 않을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뒤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로 하고 일단 넘어가자. 


누구에게나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이민자에게 있어 '통장 잔고가 줄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이것은 바로 이민 온 나라에 최소한 경제적인 측면에서라도 '안착'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경제적 안착'이 가져다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실로 어마어마한데, 나 역시 직접 느껴보기 전까지는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마음 속에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던 '막연한 불안감'이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를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이 채우게 된다. 물론 돈 버느라 몸은 좀 고달파지지만 말이다.


직접 느껴본 이런 변화를 통해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속도를 늦추'는 일이 성공적인 이민을 위해서 가장 우선적으로 착수해야 할 중요한 과제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사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다. 또한 미처 모르고 있었다고 할 수도 없는 부분이다. 다만, 직접 느껴보니 그 중요성이 막연하게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크고 중요함을 절절하게 실감하게 된 것이다.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속도를 줄이는 일은 왜 중요한가? 너무나도 명약관화한 답이 되겠지만, 잔고가 줄어드는 속도가 늦춰진다는 것은 가지고 온 돈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기간이 늘어나면 그에 비례하여 현지 적응도도 높아지며,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이 가지게 된다. 적응도가 높아지고 도전의 횟수가 많아지면 비례하여 '성공'할 확률도 높아지는 것이다. 과녁을 향해 세 번의 활시위를 당길 때보다 다섯 번을 당길 때 명중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통장 잔고가 주는 속도를 늦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 역시 하품 나오게 뻔하다. 덜 쓰고 더 벌면 된다. 누구나 알고 있는 답이긴 하겠지만, 이민자의 현실을 대입하여 조금 구체화해 보기로 하자.



1) 절약


이민 초기에는 수입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입이 없으면 씀씀이를 줄여야만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몸에 밴 소비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한국에서 몸에 달고 온 관성화된 소비습관을 떨쳐내야 한다. 그러려면 막연히 절약해야겠다는 생각만 하지말고 철저하게 소비패턴을 분석하고 리모델링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이민 초기의 두 세달에 걸친 지출내역을 엑셀시트로 정리한 후에 어떤 항목으로 얼마 정도의 지출이 되고 있는지를 분석해 보는 것이 좋다. 한 달만 하면 샘플의 표본성이 떨어지게 되니 최소 두 세달치는 정리해 보는 것이 좋으며, 할 수만 있다면 1년치를 정리해 보면 더 정확한 연간 소비패턴을 분석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지출내역이 카테고리 별로 정리가 되고, 카테고리별로 어느 정도를 절약하면 될 지에 대해서도 감이 잡힐 것이다.


실생활에서 습관화 할 수 있는 소비패턴을 몸에 익히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아래와 같은 소비패턴을 습화 하려고 노력했다.


- 외식 대신 요리 :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 보면 온갖 요리에 대한 레시피가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게중에는 '이게 이렇게 쉬운 거였어?'싶은 것들도 많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두어 시간 정도의 수고를 들여서 직접 새로운 요리에 도전해 본다면, 가족들도 즐거워하고 돈도 절약되는 일석 이조의 효과가 있다. (맛집 포스팅을 줄줄이 하면서 이런 글 쓰려니 약간 낯이 가렵지만, 외식은 주 1~2회만 하고, 주로 저렴한 맛집 위주라고 굳이 변명을 하고 싶다.)


- 사고 싶은 것이 있다면면 꼭 필요한지 세 번 생각한 후에 산다 : 우리가 소비하는 상품들 중에 구입가치만큼의 효용을 얻지 못하고 폐기되는 것이 무척 많다. 살 때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샀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불필요한 지출이었던 것이다. 어떤 물건이 되었든, 구입하기 전에 세 번 정도만 꼭 필요한 물건이지 생각해보고 산다면 이런 불필요한 지출이 크게 줄여질 것이다.


- 중고 거래 : 한국도 '중고나라'와 같은 카페를 통한 중고물품 거래가 제법 활발하지만, 캐나다는 craiglist나 kijiji, 밴조선장터와 같은 사이트들을 통한 중고거래가 더더욱 활발한 느낌이다. 물론 새 것이 좋기야 하겠지만, 운 좋으면 새 것같은 중고를 훨씬 저렴하게 구입할 수도 있고, 좀 사용감이 있더라도 사용하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는 물건들은 새 것의 반에 반 가격에도 구입할 수 있으니 절약에 큰 도움이 된다. (나의 경우에는 아이들의 자전거를 각각 $40, $20에 구입했고, 작년에 스키를 배우면서 스키부츠를 $70, 플레이트는 $60에 구입했다.)  


필요한 물건을 중고거래를 통해 구입하는 것도 지출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만, 쓰지 않는 물건을 중고로 처분하는 것 역시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쓰지 않는 물건을 정리해서 사진을 찍고 craiglist에 올리는 약간의 수고만 하면 꽤 짭짤한 부수입(?)이 생긴다. 



2) 자산 운용(or 재배치)을 통한 자본소득 창출


취업초기 한 달에 200만원 남짓한 돈을 벌면서도 통장 잔고가 더 이상 줄지 않게 된 것에는 이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컸다. 밴쿠버로 처음 이주했을 때 내 수중에는 당시 시세로 노스밴쿠버의 린 밸리에서 단독주택 한 채 정도를 구입할 수 있는 자산이 있었다. New Comer's Mortgage를 레버리지로 사용하면 노스밴의 더 좋은 지역에서 베이스먼트나 1층 스윗이 딸린 단독주택도 구입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독주택을 구입하는 대신 콘도 2채를 구입했다. 한 채에서는 우리가 살고, 다른 한 채는 임대로 돌려서 임대소득을 창출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일해서 우리 가족이 먹고 살 수 있는 수입을 창출할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걸릴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일정 기간에 대한 생활비와 비상시를 대비한 자금은 남겨두어야 했고, 통장 잔고가 주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 자산소득의 창출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는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방법이 '임대소득 창출'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창출된 임대소득을 통해 통장의 잔고가 줄어드는 속도를 $1500/월 정도 늦출 수 있게 되었다. 


월 $4000 정도의 지출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수입이 없다면 통장잔고는 $4000/월의 속도로 줄어든다. 그런데 $1500/월의 임대수입을 창출할 수 있다면, 이 속도는 $2500으로 줄어든다. 이는 같은 돈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이 1.6배로 늘어남을 의미한다.  만일 통장의 총 잔고가 $100,000이라면, $4000/월의 속도로 줄어들면 25개월을 버틸 수 있지만, 이 속도를 $2500/월로 늦추면 40개월을 버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당장 '먹고 살 만큼' 벌지는 못하더라도, 통장 잔고가 주는 속도를 줄여 놓는 것만도 이렇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번 글의 핵심에서는 좀 비껴가는 여담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것(단독주택 대신 콘도 2채 구입)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만일 당시에 모기지를 최대한 얻어서 살 수 있는 가장 큰 집을 샀고, 그것을 2017년 정도에 팔았더라면, 지금 쯤 3베드룸 콘도를 하나 사고도 수십만 불의 차액을 남겼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도저히 이런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밴쿠버의 집 값이 오를대로 올랐다고 판단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막 밴쿠버에 와서 아무런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모든 자산을 주거에만 투자하는 모험은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40대의 가장이 되면 성공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망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시의 이런 판단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3) 푼 돈 버는 일이라도 가리지 말고 일단 해라


이민 초기에 나는 월마트에서 7개월 정도 최저임금을 받으며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었다. BCIT의 입학 허가는 받았지만, 입학까지는 1년 여의 대기가 필요한 상태였고, 그 기간동안 딱히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파트 타임으로 일을 시작한 것이다. 꼭 돈때문 만은 아니었다. 나의 캐나다 적응도를 높이기 위한 측면도 있었고, 혹시 월마트에서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있었다. (길을 찾지는 못했고, '이건 내 길이 아니다'라는 사실은 찾아냈다.) 7개월 동안 일을 해서 번 돈은 고작해야 8천불 남짓이었다. 우리 가족이 먹고 살 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지만, '통장 잔고가 주는 속도를 줄이는' 데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월마트는 주 4일 정도만 일하는 파트타임이었기에, 다른 부업으로 '가이드 알바'도 시작했다. 일은 매우 부정기적이고, 비수기인 겨울에는 내내 일이 없었지만, 성수기인 여름에는 꽤 짭짤한 부수입원이 되어주었다. 2015년 여름 성수기의 경우에는 2)번에서 언급한 임대수익과 함께 가이드 알바를 통해서 번 돈으로 일시적으로나마 '통장 잔고가 줄지 않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취직한 후에는 가이드 알바는 본격적으로는 못 하고 있지만,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주말에는 일이 들어오면 계속해서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버는 돈은 $400~500/월에 불과하지만, 이 금액이 임대소득과 근로소득과 합해지면 그럭저럭 우리 가족이 한 달 먹고 살만한 금액이 되는 것이다.



'이민 오면 확실한 수입이 생길 때까지 최대한 절약하고 돈 떨어지는 속도를 최대한 늦춰야 한다'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당연한 진리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몸에 걸치고 온 관성화된 소비습관과, '캐나다까지 왔는데 이 정도는 살아줘야지'라는 쓸데없는 허세, 그리고 '그깟 푼돈 벌어봐야 몸만 고달프지 뭐하겠어?'라는 방만한 마음에 젖어 이 명확한 진리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는 '이민의 성공 확률', 즉 '우리 가족의 생존 확률'과 직결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막연하게 생각만 하지 말고, 냉철한 분석을 통해 목표를 수립한 후 실천에 옮기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이전 18화 최저시급 일자리를 우습게 보지 말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