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Electrical Apprentice로 취업하여 Full Time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크고 작은 변화들이 생겼다. 그 중에서 가장 유의미한 변화를 한 가지를 꼽으라면 바로,
"통장의 잔고가 더 이상 줄지 않는다"
라는 것이었다.
'딸기아빠가 취업해서 밴쿠버에서 4인 가족이 먹고 살 만큼 버나봐'라고 오해할 수 있는 데, 절대 그건 아니다. 아직까지는 월 300만원 정도의 박봉을 받고 있을 뿐이며, 갓 취업했을 때는 고작 200만원 정도 벌었다. 그런데 어떻게 통장 잔고가 줄지 않을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뒤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로 하고 일단 넘어가자.
누구에게나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이민자에게 있어 '통장 잔고가 줄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이것은 바로 이민 온 나라에 최소한 경제적인 측면에서라도 '안착'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경제적 안착'이 가져다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실로 어마어마한데, 나 역시 직접 느껴보기 전까지는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마음 속에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던 '막연한 불안감'이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를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이 채우게 된다. 물론 돈 버느라 몸은 좀 고달파지지만 말이다.
직접 느껴본 이런 변화를 통해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속도를 늦추'는 일이 성공적인 이민을 위해서 가장 우선적으로 착수해야 할 중요한 과제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사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다. 또한 미처 모르고 있었다고 할 수도 없는 부분이다. 다만, 직접 느껴보니 그 중요성이 막연하게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크고 중요함을 절절하게 실감하게 된 것이다.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속도를 줄이는 일은 왜 중요한가? 너무나도 명약관화한 답이 되겠지만, 잔고가 줄어드는 속도가 늦춰진다는 것은 가지고 온 돈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기간이 늘어나면 그에 비례하여 현지 적응도도 높아지며,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이 가지게 된다. 적응도가 높아지고 도전의 횟수가 많아지면 비례하여 '성공'할 확률도 높아지는 것이다. 과녁을 향해 세 번의 활시위를 당길 때보다 다섯 번을 당길 때 명중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통장 잔고가 주는 속도를 늦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 역시 하품 나오게 뻔하다. 덜 쓰고 더 벌면 된다. 누구나 알고 있는 답이긴 하겠지만, 이민자의 현실을 대입하여 조금 구체화해 보기로 하자.
1) 절약
이민 초기에는 수입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입이 없으면 씀씀이를 줄여야만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몸에 밴 소비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한국에서 몸에 달고 온 관성화된 소비습관을 떨쳐내야 한다. 그러려면 막연히 절약해야겠다는 생각만 하지말고 철저하게 소비패턴을 분석하고 리모델링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이민 초기의 두 세달에 걸친 지출내역을 엑셀시트로 정리한 후에 어떤 항목으로 얼마 정도의 지출이 되고 있는지를 분석해 보는 것이 좋다. 한 달만 하면 샘플의 표본성이 떨어지게 되니 최소 두 세달치는 정리해 보는 것이 좋으며, 할 수만 있다면 1년치를 정리해 보면 더 정확한 연간 소비패턴을 분석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지출내역이 카테고리 별로 정리가 되고, 카테고리별로 어느 정도를 절약하면 될 지에 대해서도 감이 잡힐 것이다.
실생활에서 습관화 할 수 있는 소비패턴을 몸에 익히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아래와 같은 소비패턴을 습화 하려고 노력했다.
- 외식 대신 요리 :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 보면 온갖 요리에 대한 레시피가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게중에는 '이게 이렇게 쉬운 거였어?'싶은 것들도 많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두어 시간 정도의 수고를 들여서 직접 새로운 요리에 도전해 본다면, 가족들도 즐거워하고 돈도 절약되는 일석 이조의 효과가 있다. (맛집 포스팅을 줄줄이 하면서 이런 글 쓰려니 약간 낯이 가렵지만, 외식은 주 1~2회만 하고, 주로 저렴한 맛집 위주라고 굳이 변명을 하고 싶다.)
- 사고 싶은 것이 있다면면 꼭 필요한지 세 번 생각한 후에 산다 : 우리가 소비하는 상품들 중에 구입가치만큼의 효용을 얻지 못하고 폐기되는 것이 무척 많다. 살 때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샀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불필요한 지출이었던 것이다. 어떤 물건이 되었든, 구입하기 전에 세 번 정도만 꼭 필요한 물건이지 생각해보고 산다면 이런 불필요한 지출이 크게 줄여질 것이다.
- 중고 거래 : 한국도 '중고나라'와 같은 카페를 통한 중고물품 거래가 제법 활발하지만, 캐나다는 craiglist나 kijiji, 밴조선장터와 같은 사이트들을 통한 중고거래가 더더욱 활발한 느낌이다. 물론 새 것이 좋기야 하겠지만, 운 좋으면 새 것같은 중고를 훨씬 저렴하게 구입할 수도 있고, 좀 사용감이 있더라도 사용하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는 물건들은 새 것의 반에 반 가격에도 구입할 수 있으니 절약에 큰 도움이 된다. (나의 경우에는 아이들의 자전거를 각각 $40, $20에 구입했고, 작년에 스키를 배우면서 스키부츠를 $70, 플레이트는 $60에 구입했다.)
필요한 물건을 중고거래를 통해 구입하는 것도 지출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만, 쓰지 않는 물건을 중고로 처분하는 것 역시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쓰지 않는 물건을 정리해서 사진을 찍고 craiglist에 올리는 약간의 수고만 하면 꽤 짭짤한 부수입(?)이 생긴다.
2) 자산 운용(or 재배치)을 통한 자본소득 창출
취업초기 한 달에 200만원 남짓한 돈을 벌면서도 통장 잔고가 더 이상 줄지 않게 된 것에는 이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컸다. 밴쿠버로 처음 이주했을 때 내 수중에는 당시 시세로 노스밴쿠버의 린 밸리에서 단독주택 한 채 정도를 구입할 수 있는 자산이 있었다. New Comer's Mortgage를 레버리지로 사용하면 노스밴의 더 좋은 지역에서 베이스먼트나 1층 스윗이 딸린 단독주택도 구입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독주택을 구입하는 대신 콘도 2채를 구입했다. 한 채에서는 우리가 살고, 다른 한 채는 임대로 돌려서 임대소득을 창출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일해서 우리 가족이 먹고 살 수 있는 수입을 창출할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걸릴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일정 기간에 대한 생활비와 비상시를 대비한 자금은 남겨두어야 했고, 통장 잔고가 주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 자산소득의 창출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는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방법이 '임대소득 창출'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창출된 임대소득을 통해 통장의 잔고가 줄어드는 속도를 $1500/월 정도 늦출 수 있게 되었다.
월 $4000 정도의 지출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수입이 없다면 통장잔고는 $4000/월의 속도로 줄어든다. 그런데 $1500/월의 임대수입을 창출할 수 있다면, 이 속도는 $2500으로 줄어든다. 이는 같은 돈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이 1.6배로 늘어남을 의미한다. 만일 통장의 총 잔고가 $100,000이라면, $4000/월의 속도로 줄어들면 25개월을 버틸 수 있지만, 이 속도를 $2500/월로 늦추면 40개월을 버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당장 '먹고 살 만큼' 벌지는 못하더라도, 통장 잔고가 주는 속도를 줄여 놓는 것만도 이렇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번 글의 핵심에서는 좀 비껴가는 여담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것(단독주택 대신 콘도 2채 구입)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만일 당시에 모기지를 최대한 얻어서 살 수 있는 가장 큰 집을 샀고, 그것을 2017년 정도에 팔았더라면, 지금 쯤 3베드룸 콘도를 하나 사고도 수십만 불의 차액을 남겼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도저히 이런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밴쿠버의 집 값이 오를대로 올랐다고 판단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막 밴쿠버에 와서 아무런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모든 자산을 주거에만 투자하는 모험은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40대의 가장이 되면 성공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망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시의 이런 판단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3) 푼 돈 버는 일이라도 가리지 말고 일단 해라
이민 초기에 나는 월마트에서 7개월 정도 최저임금을 받으며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었다. BCIT의 입학 허가는 받았지만, 입학까지는 1년 여의 대기가 필요한 상태였고, 그 기간동안 딱히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파트 타임으로 일을 시작한 것이다. 꼭 돈때문 만은 아니었다. 나의 캐나다 적응도를 높이기 위한 측면도 있었고, 혹시 월마트에서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있었다. (길을 찾지는 못했고, '이건 내 길이 아니다'라는 사실은 찾아냈다.) 7개월 동안 일을 해서 번 돈은 고작해야 8천불 남짓이었다. 우리 가족이 먹고 살 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지만, '통장 잔고가 주는 속도를 줄이는' 데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월마트는 주 4일 정도만 일하는 파트타임이었기에, 다른 부업으로 '가이드 알바'도 시작했다. 일은 매우 부정기적이고, 비수기인 겨울에는 내내 일이 없었지만, 성수기인 여름에는 꽤 짭짤한 부수입원이 되어주었다. 2015년 여름 성수기의 경우에는 2)번에서 언급한 임대수익과 함께 가이드 알바를 통해서 번 돈으로 일시적으로나마 '통장 잔고가 줄지 않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취직한 후에는 가이드 알바는 본격적으로는 못 하고 있지만,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주말에는 일이 들어오면 계속해서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버는 돈은 $400~500/월에 불과하지만, 이 금액이 임대소득과 근로소득과 합해지면 그럭저럭 우리 가족이 한 달 먹고 살만한 금액이 되는 것이다.
'이민 오면 확실한 수입이 생길 때까지 최대한 절약하고 돈 떨어지는 속도를 최대한 늦춰야 한다'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당연한 진리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몸에 걸치고 온 관성화된 소비습관과, '캐나다까지 왔는데 이 정도는 살아줘야지'라는 쓸데없는 허세, 그리고 '그깟 푼돈 벌어봐야 몸만 고달프지 뭐하겠어?'라는 방만한 마음에 젖어 이 명확한 진리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는 '이민의 성공 확률', 즉 '우리 가족의 생존 확률'과 직결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막연하게 생각만 하지 말고, 냉철한 분석을 통해 목표를 수립한 후 실천에 옮기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