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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밴쿠버 딸기아빠 Jan 20. 2019

최저시급 일자리를 우습게 보지 말라

Granville Bridge에서 바라본 어스름의 밴쿠버 다운타운


캐나다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특정한 자격이나 기술이 없이 이민 온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없다. 거의 없다. 할 수 있는 건 소위 Survival Job(혹은 Entry Job)이라고 부르는 최저시급의 일자리뿐이다. 그중에서 가장 흔한 일자리는 retail 쪽, 즉 마트나 기타 소매 상점에서 일하는 것이다.


캐나다에 와서 사귄 첫 번째 비한국인 친구는 포르투갈계의 브라질인이었다. 브라질인이라고 하지만 유럽계 이민자의 후손이라서 아주 잘 생긴 중년의 백인이었다. 액센트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영어도 거의 완벽했고, 브라질에서 직업은 무려 '치과의사'였다. 치과의사 자격으로 기술이민을 왔는데, 치과의사 자격을 인정받지 못해 몇 년째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다. 이 친구를 만난 곳은 Walmart, 바로 캐나다에서 나의 첫 번째 직장이었다. (나는 North Vancouver의 Walmart에서 약 7개월간 Produce Stocker로 일했다)


뜬금없이 이 친구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자격이나 기술을 갖고 이민을 왔더라도 그것을 인정받기가 매우 힘들며, 그나마 그런 자격이나 기술조차 없다면 최저시급의 entry job 외에는 자리가 없다는 사실에 대한 실례를 제시하기 위해서다. 


치과의사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walmart에서 묵묵히 허드렛일을 하던 이 친구가 나와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었다면, Walmart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다른 job들에 apply를 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walmart를 떠나지는 못했다. 다른 job들에 합격한 일도 수 차례 있었지만, 최종 면접을 통과하고 pay협상을 하다 보면 결국 walmart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같은 pay 받으면서 다른 직장으로 옮겨 다시 적응할 바에야, 그냥 익숙한 walmart에서 일하는 게 낫기 때문에 떠나지를 못한 것이었다. 특정한 자격이나 기술이 없다면(있더라도 공인받지 못하면), 캐나다에서 최저시급의 survival job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이 친구가 몸소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Survival Job들의 pay는 법정 최저 시급과 큰 차이가 없다. 법정 최저시급을 받으면 full-time으로 일한다 하더라도 부부가 맞벌이를 하지 않는다면 가정 경제가 돌아갈 정도의 수입을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민자가 별 다른 자격이나 기술 없이 와서 비즈니스나 학업이 아니라 취업을 방향으로 잡았다면, 이런 Survival Job이 출발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이 Survival Job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이전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이 있다. 이 글에서 언급했던 이유들 때문에 당장 학업이나 비즈니스를 시작할 것이 아니라면 Entry Job, 혹은 Survival Job이라도 잡아서 일을 하라고 강력히 권장한다. 안 읽어보신 분들은 이 글부터 먼저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다.


이민학 개론 13.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



왜 Survival Job이라도 일단은 해야 하나? 위에 링크한 글의 내용과 중복될 수는 있겠으나, 내가 생각하는 이유를 정리해 보면 대략 아래와 같다.



1. 캐나다의 사회와 직장 문화에 대해 경험할 수 있다.


이민을 와서 캐나다 땅에서 살고 있더라도 그것만으로 캐나다 사회에 편입되고 지역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민을 오더라도 아는 캐네디언이 한 명도 없는 경우가 있는 경우보다 많을 것이며, 학업이나 직장 생활 등의 사회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작은 한인 사회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이방인처럼 살아가게 되기 십상이다. 반면에 Survival Job에 불과하더라도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 캐나다의 직장 문화와 인간관계에 대해 직접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적응'이 다른 게 아니다. 몸으로 부딪히고 사람과 부대끼며 캐나다를 겪어야 캐나다에 적응이 되는 것이다.  캐나다 영토 내에서 그냥 숨 쉬고 밥 먹으면서 살아간다고 해서 저절로 적응이 될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2. Reference가 생기고, Resume에 써넣을 수 있는 캐나다 내에서의 경력이 생긴다.


취업에 있어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 중의 하나가 reference이다. Survival Job이라도 직장생활을 하고 나면 그다음 직장에 Resume를 낼 때 채워 넣을 수 있는 reference가 생긴다.(물론 survival job에 지원할 때도 역시 reference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대충 써도 된다.)  뿐만 아니라 보잘것없는 survival job에서의 경력이라 하더라도 캐나다 내에서 직장생활을 한 경력이 생긴다. Resume에 한 줄이라도 더 써넣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장래에 목표로 하고 있는 직군에 따라 Survival Job의 경력이 도움이 될 수도 있고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으나, 절대 손해 볼 일은 없다. 



3. 돈 까먹는 속도를 줄여서 더 오래 버틸 수 있게 된다.


Survival Job으로 버는 돈으로는 못 먹고 산다. '어차피 먹고살 만큼도 못 버는데 뭐하러 거기서 시간 낭비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은 한 가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이민 초기에 굉장히 중요한 것 한 가지는 '돈 까먹는 속도를 줄이는 것'이다. 


이민 오면서 20만 불을 가지고 왔고, 1년 생활비로 5만 불이 든다고 가정해 보자. 1년에 5만 불씩 쓰면 4년이면 가져온 돈이 모두 바닥나게 된다.(실제는 이보다 더 빨리 바닥날 것이다. 자동차 구입 등의 목돈으로 지출되는 돈이 있을 것이고, 집안 일로 한국 한 두 번 다녀오면 그때마다 수천 불씩 목돈이 사라진다.) 이민 와서 4년만 놀면 거지가 되는 것이다.


반면에, Survival Job이라도 잡아서 일을 하면 1년에 대략 2만~2만 5천 불 정도는 벌 수 있다. 2만 5천 불 정도를 번다고 가정하면 1년 생활비의 부족분은 2만 5천 불이 되고, 가지고 온 20만 불이 바닥나는 데는 4년이 아닌 8년이 걸리게 된다. 버틸 수 있는 기간이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이다.


버티는 기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 기간만큼 캐나다 사회에 대한 적응도가 높아지는 것이며, 커리어나 비즈니스에 대해 고민하고 준비할 수 있는 기간도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4. 여차하면 Survival Job으로도 먹고살 수는 있다.


Survival Job으로 먹고 살기는 참 고달프다. Full Time으로 일하면 대략 2만 5천 불 정도 벌 텐데, 이 정도면 렌트와 생활비 내면서 혼자서는 그럭저럭 먹고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녀가 있는 가족이라면 부부가 함께 Survival Job을 뛰어야 그럭저럭 먹고살 수 있다. 물론 여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승진도 바라볼 수 있고 급여도 올라갈 것이므로 부부합산으로 6~10만 불 정도의 수입을 바라볼 수 있다. 아이들 키우면서 여유롭지는 않더라도 그럭저럭 최소한의 인간다운 품위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는 있는 금액이다.



Walmart에 취업하고 일하는 과정에 관한 개인적인 경험은 '40대에 저지르는 캐나다 이민' 매거진을 통해 별도의 글로 풀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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