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롱할영 Oct 15. 2024

나의 시간이 책이 되기까지

책을 쓰려고 한다

책을 하나 더 쓰게 되었다. 시집이 아닌 에세이로.


신춘문예에 등단한지 10년이 되었지만, 아직 나는 시집 1권만 출간한 채 이리저리 맴돌고 있었다. 회사에 다니던 때에는 '쓰는 나'란 문예지에서 원고 청탁이 올 때나 발휘되곤 했으니까. 오랫동안 고민을 해왔다. 그런 나를 두고 회사는 회사 일대로 하면서 사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한번 '쓰는 나'에 매진해서 살아볼 것인지. 그 고민 끝에 지금 남편을 따라 거제로 오게 되었고, 이전보다는 훨씬 여유롭게 '쓰는 나'로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아직 출근을 하고 있긴 하니까 매진할 수는 없지만.


이전에도 여러 칼럼과 에세이를 써 보긴 했지만, 브런치를 활용하면서 규칙적인 글을 연재할 수 있어서 원고를 모으는 데에 아주 제격이었다. 그렇게 모아진 원고들을 가지고 내 글을 진심으로 읽어줄 것 같은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는데, 놀랍게도 출판사 대표님은 내가 보낸 원고에 이전에 썼던 글까지 찾아 보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전에 썼던 혼자 살던 때의 이야기까지 그러모아 책으로 묶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 주셨고, 나 역시 우리 부부의 소소한 일상만을 담아내기보다는 이전의 이야기들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원고를 새로 구상해보기로 했다.

서점에서 에세이 담당자로 일하던 때에는 판매량이나 매출이 일의 우선순위가 되곤 했다. 그래서 마음이 가는 출판사는 따로 마음에 품어두고 닥친 일을 하다가, 여유가 생기면 그제서야 작은 출판사들을 조금이라도 조명해보려 노력했다. 내가 원고를 보내봤던 곳도 그렇게 마음에 품어두었던 출판사 중 하나였는데, 부부 두 분이서 운영하시는 작은 출판사지만 어느 한 사람의 이야기를 깊게 들여다보려 애쓰시는 게 눈에 보이는 곳이어서 아주 애착이 갔다. 다행히 결이 맞을 것 같다 생각했던 곳에서 출간해보자는 말씀을 해 주셨고, 덕분에 이전의 이야기들부터 거슬러 올라가 다시 들여다볼 기회도 생겼다.


6-7년 전의 에세이부터 거슬러 올라갔다. '혼자서도 잘 사는 20대 여성'의 전형이었던 나의 모습이 보였다. 퇴근 후 혼자 차려먹을 밥상을 위해 공들여 장을 보고, 열심히 요리해서 나에게 대접하고, 한강에서 러닝을 하면서 날씨의 변화를 느끼고, 또 나를 위해 열심히 운동하면서 몸을 단련하고. 그러다가 가끔 우울하거나 외로운 때가 찾아오면 그 우울을 글로 풀어내면서 짙은 안개를 펼쳐내기도 했다가, 다시 혼자의 시간 속에서 일어나 걸어가는 사람. 혼자서도 참 잘 살았구나 싶었던 그 때의 나를 읽어가다 보니 느낀 게 있었다. 혼자서도 잘 살아가는 사람이 함께 살아도 잘 살아간다는 것.


이곳에 와서 남편과 결혼 생활을 하며 내가 이 사람과 함께 살지 않았을 때에는 어떻게 살았었나, 하는 생각을 가끔 했다. 그와 사는 매일의 소중한 시간들이 소중하고 행복해서, 나만 챙기고 살던 삶보다 그와 함께 미래를 그리는 것이 더 재밌어서, 나를 늘 예뻐해주는 사람과 같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충만해져서. 이렇게 살다 아주 만약에 혼자가 되면 얼마나 허전할까 가끔 상상하며 옆에 있는 그에게 더 잘 해주자 마음 먹곤 했다. 가끔 남편에게 "나 없으면 어찌 살래!"하고 선심 쓰듯 말하곤 했지만, 실은 내가 그랬다.


그렇게 생각해오다 문득 이전에 쓴 글들을 되돌아보니 나 꽤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내 생각했다. 혼자 사는 삶에서도 미련 없이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나를 잘 챙기며 살았고, 재미있게 살았으니 더 아쉬움이 남지 않은 것 같다고. 지금과는 삶이 많이 다른 그때였지만, 그 시간 속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 그와 거제에서 살아가는 날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내며 더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는 것이라고.


기록이 가진 힘은, 글이 가진 힘은 그래서 강한 것이다. 그때 내가 생각하고 느낀 것들이 고스란히 담긴 글은 나의 역사가 된다. 그로 인해 지금의 내 모습 속에 담긴 언젠가의 그 시간을, 생각을 돌이켜볼 수 있다. 나의 자취를 스스로 좇아가다 보면 진정한 나를, 잊고 있던 나를 발견하게 만든다. 그러니 쓰고 기록하는 일을 멈추어선 안 된다.


새로 쓰기로 한 책은 그래서 '혼자서도 잘 일어날 수 있던 내가, 함께 살아갈 든든한 누군가를 만나 더 힘차고 행복하게 걸어가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나'를 세웠던 이야기들이 모여서 '우리'로 모아지는 이야기가 되는 과정을 어떻게 풀어야 잘 연결이 될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들이 계속된다. 내 시간에 귀 기울여 준 출판사 대표님께, 그리고 지나온 나의 시간들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