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배우자 기도
어릴 때부터 줄곧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싶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겠다는 기도를 많이 한 건 아니었지만, 내게 딱 하나만 꼽아보라면 ‘존경’이 가장 큰 조건이었다. 나 하나만 잘 챙기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던 내가, 누군가와 평생을 같이 산다는 상상을 했을 때 상대에 대한 그 존경심 없이는 힘들 거라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말하는 존경이란 무작정 숭배하듯 그의 말이 다 옳다고 하는 존경이 아니라, 그가 하는 일이라면 믿을 수 있다는 마음이 들 수 있냐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그도 나에게 당신이 하는 일이라면 뭐든 지지하겠다는 믿음이 함께 하는 그런 관계. 처음에는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들쑥날쑥한 리듬을 가진 내가 그를 통해 조금이나마 차분해질 수 있겠다고도 생각했다. 기분의 고저가 심한 편이어서 예민한 나와 살아가는 건 나조차도 버거울 때가 많으니, 그런 나를 다독여서 같이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고.
애석하게도 내가 마음을 나누고 싶었던 사람 중에서는 그런 평온한 리듬을 가진 사람은 드물었다. 아니, 다시 말하자면 그 평온함을 누릴 만큼 마음의 여유를 내어주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사람의 모서리를 건드리곤 했다. 당시에는 그 사람을 욕하기 바빴지만, 어쩌면 그런 모습을 만들어낸 건 나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시간이 흐른 뒤에야 하기 시작했다. 내가 하던 배우자 기도는 다시 말하자면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인 동시에, ‘함께 성장해갈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던히도 궁금해하는 나에게는 같이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와의 걸음을 맞출 수 없을 테니까.
나부터 바로 걸을 줄 알아야 다른 이도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바로 선 내가 되면 올바른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도. 혼자서도 잘 살아가는 사람이 함께도 잘 살 수 있다는 것도 그때쯤 깨달았다. 결혼은 그렇게 똑바로 걸어가는 두 사람이 함께해야 그 가정도 건강하게 자라난다는 것을. 나의 배우자 기도는 그렇게 내 무의식에서 시작되었던지도 모른다.
혼자 하는 말들은 대부분 불안과 얽혀 있다. 혹은 그 불안을 걷어내기 위한 안간힘들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안정감 있는 생활을 위해서는 내가 나에게 잠식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켜 줄 ‘장치’가 필요하다. 함께 사는 사람은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장치다. 심각하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도 남편이 건네는 실없는 농담에 피식 웃고 마음의 결이 달라진 적이 여러 번이다. 혼자서는 옴짝달싹할 수 없던 수렁을, 타인이 살짝 개입하는 것만으로 순식간에 빠져나올 수 있다.
_정지민, 『우리는 서로를 구할 수 있을까』 중에서
세상에서 말하는 결혼의 조건은 꽤나 까다롭다. 경제적인 것, 집안, 외모 등 세상의 말을 듣다 보면 고려해야 할 것이 더 늘어난다. 내게 그 조건이 중요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어른들이 배우자로 어떤 사람이 좋다고 말하는 게 왜 그런지는 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 조건들이 갖춰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평범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데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배우자는 그런 조건들로 속단하기 어려운, 내면이 탄탄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 있는 곳을 잘 알고 있는 사람. 그런 이와 함께라면 인생에 어떤 난관들이 닥쳐와도 같이 해결해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알고 있다는 건 자신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해왔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사람을 만나려면 우선 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홀로도 잘 서 있는 사람인지, 그와 발을 맞춰 잘 걸어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다. 스스로 통제하고 단련할 줄 알아야 다른 이를 진심으로 마음에 맞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알게 되었을 때가 되어야 나와 맞는 사람도 보이게 될 것이었다.
간단한 일이었다. 내가 나로 바로 선 삶을 살고 있다면,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은 내가 알아서 알아볼 거라는 것.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자석처럼 그런 사람끼리 만나게 된다는 것. 언제 그런 사람이 오나 찾으며 애쓸 시간을 나를 알아가는 데에 쓰는 것이 더 맞다는 것까지도. 그 간단한 진리를 깨달았을 때는 나의 삶이 무척이나 만족스럽다고 생각했던 때였다.
나의 보폭으로 잘 걸어가고 있다면, 그런 내가 만족스럽다면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미래에 함께할 그에게로 걸어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내 자리가 맞는지, 나는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지 가끔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내 곁에 그가 와서 함께 걸어가고 있을 테다. 아주 자연스러운 보폭으로, 함께 맞추어서 걸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