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꿈꾸기
단순히 결혼 적령기에 내 곁에 있어서가 아닌, 서로여야만 하는 결혼을 하고 싶었다. 평생 서로를 귀여워해줄 수 있는 사람과 살고 싶었다. 더 주고 싶은 마음끼리 함께 산다면 어떨까를 꿈꾸며 우리의 앞날들을 준비한다.
혼자 산 기간이 꽤 길었다. 20살에 대학교 진학을 위해 상경한 뒤부터 10년이 넘도록 혼자 살았다. 그간 혼자서 잘 먹고, 잘 놀았던 터라 아쉬운 게 전혀 없었다. 경제적으로도 풍족하지는 않아도 나름대로 모을 만큼 모아가며 잘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제는 누구와 같이 살고 싶었구나, 결혼할 때가 되었구나 하고.
혼자가 지겨워진 것은 아니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은 불현듯 찾아왔다. 나 하나만 챙겨도 되던 삶에서 함께 사는 삶으로 바뀌는 것이 더는 부담스럽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더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이라면, 함께 산다고 해도 나는 나대로 잘 서 있을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의 아내, 아이의 엄마가 되더라도 내 인생의 주체가 나에게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게 해줄 사람이 또 내 곁에 있었다. 그래서 두렵지 않았다.
그와 꽤 오랫동안 만났다. 그는 나보다 8살이 더 많다. 6년의 시간이 그를 만나는 동안 흘렀고, 30대 초반이었던 그와 20대 중반이었던 나는 어느덧 앞자리가 바뀌어 가고 있었다. 우리에게 그간 결혼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와 만난 지 1년 반쯤 되었을 때, 그의 어머니께서 쓰러지셨다. 그 후로 어머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어머님께서 병상에 계신 시간이 늘어날수록 그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는 더 짙어졌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위로가 그에게 도움이 될지 고민하는 시간만 몇 년이 흘렀다. 그저 그의 곁에 있어 줄 뿐이었다.
그와 가족들에게는 힘든 나날들이 계속 이어졌고, 그는 자신의 상황 때문에 나를 붙잡아두는 것은 나에게도 못할짓이라며 나를 밀어내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흔들리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어쩌면 그에게 나의 존재가 더 짐이 되는 건 아닐까 싶었다. 또 내가 그와의 미래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오래도록 고민했다. 고민이 길어질수록 왜인지 더 또렷해졌다. 그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의 목소리가 두렵지 않아졌다. 나를 단단하게 지지해주는 그의 존재가, 조용히 나의 모든 걸음을 응원해주는 그의 목소리가, 다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그의 손길이 있기에 나의 모자란 부분들이 채워지고 있었다. 그런 그를 놓치면 오래도록 후회할 것 같았다.
고요하게 곁에 있어주는 사랑은 믿음의 다른 이름입니다. 곁에서 조용히 바라보는 일, 믿어주는 일, 큰소리 않고 기다리는 일. 이런 사랑이 가실 줄 모르는 사랑이고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랑이고 사라지지 않는 사랑입니다. 각자의 불완전함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사랑이며 각자의 난처함과 남루함을 있는 그대로 껴안는 정직한 사랑입니다.
_정은귀, 『나를 기쁘게 하는 색깔』 중에서
나의 엄마에게도 오래 앓아온 병이 있었고, 그랬기에 우리 가족들은 그의 상황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둘이나 된다는 건 반가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당시의 나는 그와 함께하겠다는 마음이 너무 강한 나머지, 가족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나의 고집만을 내세웠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를 천천히 보여주면서 설득하면 유순하게 넘어갈 수 있었던 일을, 단순히 반대했다는 이유만으로 가족들에게 반항하듯 연락을 끊기도 했던 나였다. 그 시간 동안 나도, 그도, 가족들도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많이 힘들어했다. 또 그만큼 그와 나는 더 단단해졌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상처가 아문 뒤에야 그와 가족들 앞에 설 수 있었고, 결국 모두가 축복해주는 인연이 되었다.
결혼의 의미가 그래서 내겐 더 남달랐다. 단순히 같이 산다는 개념을 넘어서, 함께 인생의 여러 일들을 헤쳐가는 끈끈한 사이가 된다는 것, 또 나의 마음 한쪽을 떼어서 주어도 아프지 않은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이었다. 서로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던 두 사람이 이제는 같은 길로 나아간다는 것이 결혼의 참뜻이라는 것을, 우리는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믿을 수 있었다. 어떤 모습의 당신이라도 품고 나의 사람으로 맞아들이는 우리가 될 거라는 것을.
그는 표현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표현을 바라던 나는 종종 섭섭해할 때가 많았고, 그는 말보다 행동으로 더 잘 보여주고 있지 않느냐고 멋쩍게 웃곤 했다. 어째서인지 결혼하기로 하고 난 뒤부터 그의 마음이 더 커진 것 같아 그에게 물었다. 연애만 할 때와 지금의 차이가 무어냐고. 그는 인생을 같이 걸어갈 사람이라는 믿음이 확고해진 것이 이전과 달라진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더 잘 해주고 싶은 것이라고. 정말로 그는 이전보다 더 모자람 없이 내게 더 주려고 했다. 그런 그가 고마워서 나도 그에게 더 주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주고 싶은 마음끼리 산다는 건 어떤 행복일지 매일 더 궁금해졌다.
우리가 바라보는 행복은 그런 마음으로 가정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이 말하는 조건들에 휘둘리지 말자고, 어차피 우리의 길은 우리만이 걸어가는 것이라고 그와 자주 다짐한다. 같은 미래를 향해 가는 길에 서로를 자주 어루만져주자고도. 서로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껴안을 당신이 내게 있어주어 감사하다고 자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