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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할영 Dec 28. 2023

엄마, 나는 가끔 엄마를 미워했어

 하재영,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 휴머니스트

하재영,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휴머니스트

열 두살 때였나, 서재의 책장 어딘가에서 엄마의 대학교 시절 일기를 발견했을 때를 잊을 수 없다. 엄마가 내 엄마만이 아니라, 엄마 자신이었던 시절.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닌 때의 엄마를 읽어내던 그 어느 날은 내가 기억하는 한, 나를 바꾼 가장 큰 사건이었다.


엄마는 한없이 '우리 엄마'이기만 할 거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가 주인공이 되어 쓴 이야기는 너무도 솔직해서, 내가 알던 엄마의 세계를 무너뜨리고 새로 그려갔다. 애초에 일기를 본다는 것 자체가 미안해서, 엄마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도 못하고 끙끙 앓던 나는 어느 날 용기 내어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엄마 일기를 봤어. 미안해"


그 후 나는 왠지 모를 자신감으로 내 세계를 주장해갔다. 엄마도 나 같은 때가 있었지 않느냐고, 그럼에도 나를 왜 이해하지 못하냐고. 차마 말하지 못한 그 속내 속에는 엄마가 나를 이해할 거라는, 해야만 한다는 고집이 있었다. 지금은 아닌, 그 시절의 엄마를 자꾸만 속으로 불러오면서 때론 엄마를 미워했다. 모두가 말하는 '평범한 어머니상'이 아닌 엄마를 다른 엄마들과 비교하기도 했고, 지금의 당신 그 자체로 살아가는 것에 왠지 모를 배신감. 원래 그런 사람 아니었잖아, 하고.


이 책은 하재영 작가가 어머니 고선희와의 인터뷰를 본인의 페미니즘 해석을 더해 이야기하는 '엄마와 딸'의 회고록이지만, 그녀가 자라온 곳이 대구였다는 점, 맏이인 딸로서 엄마도 처음이었던 딸과의 관계에서의 갈등들, 그런 엄마를 이해하려고도 하지만 상처주고도 싶었던 시간들이 자꾸만 나에게 대입되었고, 그래서 더 내 이야기인 것처럼 읽어냈다.


단숨에 읽었던 이 책은 엄마에게 하지 못했던 질문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더 서로에게 할 수 없던 이야기들을 마주앉아 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그러면서 엄마의 엄마, 나의 사랑스런 외할머니와의 관계도 되짚어보게 된다. 모계로 이어진 관계들은 그토록 끈끈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기에 더 증오하기도 하는, 그러다 결국 이해하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관계라고, 내 자리로 자꾸만 가져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엄마가 이 책을 읽으면 엄마는 또 엄마의 엄마와, 엄마의 할머니를 떠올리겠지.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애썼던 지난 날들,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도 나는 엄마를 가끔 미워한다. 그럼에도 엄마를 자꾸만 신경 쓰게 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지만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었던 나의 엄마. 그리고 나의 할머니. 두 사람과 나는 앞으로 어떤 대화들을 엮어갈까. 그 대화들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더 서로를 이해하게 될까. 그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겠다. 우리는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했으므로. 부디 이 책이 모든 엄마와 딸들에게 널리 읽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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