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잘 보낸 우리에게
남편과 함께 출퇴근을 하는 요즘은 퇴근길의 일몰을 함께 감상하는 것이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일이다. 처음 같이 이곳에서 출퇴근을 할 때에는 퇴근 시간인 오후 6시 즈음이 되면 깜깜하기도 하고, 빛이라곤 듬성 듬성 있는 가로등 뿐인 이곳이라 도시의 새벽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해가 길어진 요즘에는 우리가 함께 퇴근을 하게 되는 시간에 항상 일몰이 예쁘게 펼쳐지는 시간이라 차 안에서 함께 일몰을 보며 하루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게 된다. 사소한 것 같지만 이 시간이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운전을 하게 된 후부터 퇴근 때에는 내가 운전을 하는 때가 많다. 이전에는 차 밖의 풍경을 운전하는 남편 대신 나 혼자서만 오롯이 누렸다면 이제는 남편에게도 그 풍경을 온전하게 즐길 수 있게 해 줄 수 있어서 좋다. 남편은 해가 지는 때의 따뜻한 그 느낌을 무척 좋아하는데, 바로 어릴 때 만화 '슬램덩크'가 방영할 즈음에 집에 가던 그 때가 생각나서라고 한다. 연애 할 때도 이렇게 일몰이 펼쳐질 때 함께 걸으면 그 시절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이 때의 아늑함과 하루를 잘 살아냈다는 그 뿌듯함이 함께 다가와서 일몰을 좋아한다고 한다. 노랗기도, 빨갛기도 한 하늘과 이곳 바다가 함께 하는 일몰. 오늘 하루의 일과도 잘 마무리한 우리에게 펼쳐진 그 광경이 선물 같아서 더 예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도시를 떠나 이곳 거제/통영에서 살게 되면서 좋은 점은 사람들이 많이 없는 덕분에 인구 밀집으로 인해 한없이 기다렸던 것들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교통체증이나 주차난, 식당의 웨이팅, 떠난 지하철 기다리는 일처럼 사람에 치이는 일들이 없어졌다. 내려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는 서울이 많이 그리웠는데, 또 지내다 보니 서울의 복잡함이 이제는 무서워지기도 해서 이곳의 생활이 점점 익숙해지기도 한다. 여유가 있어졌다고 해서 크게 무언가를 더 하는 건 아니지만, 이 여유로움이 가져다 준 편안함이 제법 마음에 든다. 이렇게 같이 일몰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매일의 행복이 생겨나니까.
서울에선 출퇴근길이 무척 힘들기만 했다. 아침 6시 30분에 나와 8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아침과 제시간에 퇴근해도 꼭 끼어서 가야 하는 지친 퇴근길. 그동안에 사람들 사이에서 치여가면서도 두 다리로 지탱해야 했던 하루의 무게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을수록 은근히 비교하게 되는 것들이 생겨나 가지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아져 복잡해지던 마음들이 이곳에서는 평안하다. 파도 소리를 듣기만 해도, 바다를 바라보기만 해도, 지나가는 꽃내음에 가만 서있기만 해도 행복할 수 있는 삶이라서.
하루하루 평안하게 매일 일몰을 함께 볼 수 있음에 감사하는 날들이 계속 되기를. 사소한 것들에서 행복을 읽어낼 줄 아는 우리로, 앞으로도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