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롱할영 Jul 16. 2024

내 일이 아닐 줄 알았던, 유산 (2)

그래도 와 줘서 고마웠어

(1편과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nyshiny/81 )


마지막 인사이자 이제 더는 우리와 함께 있지 않는 꽁이를 만나러 간 병원에서 마주한 건 텅 빈 화면이었다.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화면이었지만 막상 마주하고 나니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함께 들어오지도 못하고 말소리만을 듣고 있을 남편을 생각하니 울면 안 될 것 같아 애써 눈물을 참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오늘부터 태반 등이 나올 수 있도록 약이 처방 될 거에요. 출혈은 물론 구토, 오한, 발열이 있을 수 있으니 집에서 푹 쉬세요. 또 앞으로 엽산 매일 챙겨드시고, 몸조리 잘 하셔야 합니다."


"너무 고생 많았어요. 아기가 끝까지 싸우다가 간 거니까 너무 마음 쓰여 하지 말고, 바우처로 보약 지어 드시는 산모님들도 많으니까 몸 관리에 꼭 신경 쓰시고요!"


의사와 간호사의 말을 듣고 나니 더 실감났다. 마음 정리를 했던 터라 더는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꽁이를 다시 만났을 때에는 꼭 놓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약국에서 약을 받는데, 약사에게서도 같은 설명과 몸조리 잘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약만 결제 하려다가 엽산과 철분제를 함께 구매했다. 약국을 나서면서 남편과 앞으로 엽산을 비롯한 영양제를 꼭 잘 챙겨먹자고 다짐했다. 어쩌면 꽁이가 우리 더 고생 안 시키려고 인사만 하고 간 걸거라고. 어머님이 6년을 투병 끝에 떠나셨고, 이제는 아버님도 투병을 하고 계시니 더는 아픈 가족을 부양하는 건 자신이 없다고. 그러니 우리가 더 건강해져서 건강한 꽁이를 다시 만나도록 노력하자고 손을 꼭 잡았다.

유산의 큰 과제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알려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우선 단축근무 사용으로 인해 임신을 알리게 됐던 회사에 유산으로 다시 소식을 전해야했다. 남편이 인사 담당자에게 유산 사실을 알렸고, 나에게는 5일, 남편에게는 3일의 유산휴가가 부여된다고 했다. 나도 내가 속한 팀에 소식을 전하며 이번 주가 지나고 뵙게 될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다. 모두 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힘 내시라는 말을 해 주셔서 감사했다. 어머님의 부고 소식 이후 한 달 만에 임신부터 유산까지, 그리고 아내까지 한 곳에서 일하게 된 남편은 어쩌다 이렇게 핫한 인물이 된 건지 모르겠다며 농담도 했다. 그러게, 우리만의 행복을 찾으면서 조용히 살고 싶었는데 특별휴가란 휴가는 다 사용하게 되었네.


그리고 이제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알려야 할 차례였다. 가족들에게는 차마 입이 더 떨어지지 않았다. 특히 항암 치료를 막 시작하신 아버님께는 더더욱. 한숨 자고 일어나서 생각하자며 얼른 밥을 먹고 잠에 들었다. 약을 먹고 한숨 자고 나니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 병원에서 뭐래?"

"아기집이 다 나왔대. 약 받아왔어. 나머지도 다 나와야 한다고"

"많이 힘들었겠다. 전화가 바로 없길래 그런가 싶어서 지금 전화해. 너무 울지 말고, 일단은 푹 쉬어야지"

"응. 주말에 울 만큼 다 울어서 지금은 좀 괜찮아. 그래도 눈물 나면 울려고."

"아빠다. 고생했다, 딸. 다시 건강하게 만나면 되지. 더 울지 마."


더는 눈물이 안 날 줄 알았건만 다시 눈물이 흘렀다. 흐르면 흐르는 대로 울어야지. 남편을 안고 울 만큼 울어야지. 슬프긴 했지만 이전처럼 이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앞으로 만날 아기를 위해 더 건강해져야겠다는 마음이 우선이었다. 엽산과 철분제를 먹었다. 남편과 시장에 들러 미역과 소고기를 사왔다. 따뜻한 국밥도 한 그릇씩 비워냈다. 집에 남아 있던 과일도 부지런히 먹었다.

가장 고마운 건 옆에서 함께 있어 준 남편이었다. 남편이 옆에서 부지런히 챙겨주고, 집안일도 다 해 준 덕분에 푹 쉬고 잘 먹을 수 있었다. 술을 먹으면 안 되는 내게 논알콜 칵테일을 배워와서 메론소다부터 매실 에이드, 그리고 팥빙수까지 손수 만들어 준 그의 마음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나의 남편이라는 사실이 감사했다. 그렇게 먹고 누워서 남편과 멍하니 TV만 보았다. 혹시나 또 생각이 날 까봐 머리를 비우려고.


결혼 한 지 1년 도 안 된 시간 동안 많은 일을 함께 겪어서인지, 남편과의 애틋함은 배가 된 것 같다. 남편에게 감동했던 적이 많았다. 하루는 비가 와서 마땅히 나갈 곳이 없어 밤중에 마트나 다녀오자고 나섰는데, 장을 다 보고 난 뒤에 남편이 집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해서 어딘가 했더니 24시간 운영하는 꽃집이었다. 저번에 꽃을 샀던 곳이라며 데려간 곳은 꽃 한 대에 2,000원으로 구매할 수 있는 곳이었다. 꽃 한 대에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냐며 이런 소소한 행복에 웃는 나를 다시 보고 싶었다고 했다. 남편과 함께 한다면 한 번의 대단한 행복보다 여러 번의 소소한 웃음들을 매일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더해간다.


짧게 끝난 첫 번째 임신은 우리에게 인사 하러 와 줘서 고마웠던 꽁이에게, 예민한 내 옆을 계속 지켜주며 웃음을 잃지 않게 해 준 남편에게, 기도와 응원을 아낌 없이 보내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모두 감사했던 시간이었다. 같은 아픔을 겪은 분들에게도 꼭 이 시간이 더 건강한 아이가 찾아오기 위한 것이리라 기도한다.


꽁이야, 그래도 우리에게 와 줘서 고마웠어. 다시 찾아왔을 때는 꼭 붙잡고 있어주라. 꼭 건강하게 있을 수 있게 해 줄테니.



이전 27화 내 일이 아닐 줄 알았던, 유산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