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아이가 생겼다
거제에서 살게 된 지 이제 6개월, 이쯤이면 이곳에서의 생활도 익숙해졌을 테고 슬슬 아이를 가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이전부터 해 왔다. 그 전에도 일부러 조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둘만의 시간을 조금 더 보내고 싶었기에 너무 빨리 가지는 것보다 올해 하반기 중을 목표로 가족 계획을 세웠었다. 우린 애초부터 아이를 가질 생각이 아니라면 굳이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둘이었기에 가족 계획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둘 다 아이를 무척 좋아하는 편이었고, 결혼 전부터 아이가 생긴다면 도서관과 체육관이 주변에 있는 곳에 살자고 얘기하면서 거주 계획도 세웠다. 그건 책을 가까이에 하면서 운동도 좋아하는 아이라면 심신이 건강할 거라는 둘의 교육관 덕분이었다.
그렇게 언젠가는 가지자고 말하고 우리만의 시간을 보내던 중, 오랫동안 아프셨던 어머님을 지난 달에 보내드리게 되었다. 어머님이 가신 슬픔을 추스리기도 전에, 아프신 어머님을 그간 옆에서 돌보셨던 아버님의 몸에도 문제가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 성할 리가 없었다. 5년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어머님의 옆에서 어머님의 체위변경부터 식사, 배변, 목욕까지 케어하시던 아버님이셨으니까. 자식들이 함께 어머님을 보살폈지만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니 전담으로 할 수가 없었다. 항상 건강을 자부하시던 아버님이었기에, 아버님은 괜찮으시리라 믿어왔건만 결국 아버님의 몸에도 암세포가 자라나고 말았다.
남편은 무너져내리는 듯했다. 어머님을 보낸 슬픔도,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에 대한 아쉬움도 털어내기도 전에 아버님의 고통을 마주해야 했으니. 그런 남편을 보는 것도, 계속 당신은 괜찮으시다고 걱정 마시라는 아버님을 보는 것도 많이 슬펐다. 하지만 슬퍼하기만 하기에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기에 이 시간들을 그냥 흘려 보낼 순 없었다. 나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남편에게 말했다. 아이 계획이 있었으니 하루 빨리 아버님께 손주 소식을 안겨드리자고. 그렇게 더 오래 살겠다는 의지를 품게 해 드리자고. 남편은 지금 자신의 혼란스러운 상태로 아이를 가지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이내 받아들였다.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많지 않을 수 있다는 현실을.
그렇게 처음으로 계획했던 달에, 우리에게 아이가 찾아왔다. 생각 못 한 건 아니지만, 이번 달은 지나가려나보다 하고 있던 차에 내게 몸의 반응이 왔다. 남편이 아버님의 치료를 앞두고 아버님께로 가 있던 때여서 혼자 있었는데, 열이 계속 오르고 계속 구토가 나왔다. 배가 너무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배가 부푸는 듯했고, 열은 떨어지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테스트 해 보니 두 줄이었다. 도저히 혼자서는 견디기 어려워 생전 처음으로 119를 불렀다. 그러나 119를 불러도 임신 확인이 된 내게는 산부인과 진료가 가능한 병원만 허락되었는데,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응급실 중에서 산부인과 진료가 가능한 곳이 없다고 했다. 결국 부산이나 창원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말에 정말 죄송하지만 내일 아침까지 버텨보고 산부인과로 가겠다며 구급차를 돌려보내야 했다. 내일이면 남편이 오니까 조금만 더 참아보기로 했다.
전날 열이 올랐던 터라 걱정이 되어서 아직 병원에 가도 초음파로도 확인이 안 될 걸 알면서도 산부인과에 갔다. 혹시나 잘못되면 어쩌나 싶어 갔던 병원에서는 피검사 수치 상 임신이 맞다고 했다. 보통 8주 정도까지 안정기로 보고, 그 전에는 말을 하지 않는 경우들도 많다고 하던데 우리는 양가에 모두 말씀드렸다. 아기가 나를 더 잘 붙들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버님은 무척 기뻐하시면서 더 치료를 잘 받겠다고 말씀하셨고, 이내 긴 싸움을 시작하셨다. 우리 부모님께서도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좋아하시면서도, 사위가 많이 혼란스러울 때인데 힘들겠지만 정신을 잘 부여잡으라고 말씀 해 주셨다. 나는 남편에게 힘들어도 내 앞에서는, 아이 앞에서는 한껏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말했다. 이 아이는 분명 어머님이 보내주신 아이일 거라고. 그러니 우리는 지금 찾아온 이 아이를 잘 품어야 한다고.
남편은 여러 감정이 오가는 탓에 힘들어 보이기도 했지만, 내게는 이전보다 더 잘 해주려고 노력 중이다. 표현이 서툰 그이기에 가끔 토라질 때도 있지만, 그건 그의 진짜 마음이 아닌 것임을 알고 있다. 책임감이 강한 그에게는 어머님도, 아버님도, 그리고 우리의 아이도 모두 각자의 무게만큼 얹혀졌을 테니까. 이제 우리에겐 가장 소중하고도 무거운 존재가 생겨났다. 어머님이 내려주신 이 아이가 건강하게 세상을 마주할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힘을 기울이겠다고, 남편과 다짐하는 임신 5주차의 일상이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