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파트너가 될 것
나는 단연코 계획형이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제멋대로 살았던 20대 초반까지의 내 모습만을 기억하고 살아서였을까, 아니면 계획한 대로 살아가는 것은 재미 없다고 생각했던 철 없는 때의 생각이 아직도 머리에 박혀있어서였을까. 즉흥적인 성향이 짙었던 건 사실이지만 나는 늘 앞날이 대비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해했다. 그래서 앞으로 할 것들을 찾아보고 정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며 살아왔고, 내가 꿈꾸는 미래에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하고 걱정하는 데에 꽤 많은 에너지를 쏟아왔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즉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결혼을 준비하면서야 비로소 내가 계획형 인간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일정이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으면 답답해 미치는 나를 보고서야, 하기로 한 건 최상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하는 나였음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남편은 원래부터 계획형인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수험 생활을 해서였는지는 몰라도 시간 관리가 철저한 편이었고, 항상 최소의 노력으로 최적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늘 그의 머릿속에는 동선을 그리는 것이 일상이었고, 그 동선에 맞추어 다니도록 스스로를 설계했다. 연애 시절에도 그가 동선과 계획을 그려온 덕분에 피곤할 때도 있었지만, 그의 직업 특성 상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던 터라 그의 계획대로 다니면 시간대비 많은 것들을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나를 만나고 난 뒤부터 계획형이었던 그는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가 계획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있는 대로 다 티내는 나를 감당하기가 어려웠기도 했거니와, 내 말은 뭐든 들어주려는 그의 성격 상 그가 계획한대로 끌고 가기도 어려웠다. 더군다나 결혼 준비에 있어서는 칼을 뽑아든 내가 모든 계획을 끌고 나가려 했기에 그의 추진력은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그럼 그런대로 내가 추진하면 됐는데, 나는 또 그저 나에게 맡기고만 있는 것 같은 그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며 불만이었다. 자신 때문에 내가 힘들어하는 걸 극도로 불편해하던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결혼 준비 기간 동안 늘 힘들어보였다.
그의 말인즉슨, 그가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으면 그보다 내가 항상 한발 더 앞서서 그것들을 계획하고 예약이나 일정을 잡아두고 있더라는 것. 스스로는 계획형 인간이 아니라고 했지만 철저하게 계획형 인간이었던 내가, 우리가 앞으로 함께 살아갈 길을 괜히 먼저 걱정하고, 계획하며, 앞서가고 있더라는 말이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를 못 믿어서는 아니었다. 남에게 일을 맡기는 것보다 스스로 해결하는 편이 더 편한 게 나였고, 예견되지 않은 일이 펼쳐졌을 때 혼란스러울까봐 내 선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모두 대비하려는 것도 나였다. 어쩌면 스스로를 못 믿어서 그랬던 것도 같다. 흘러가는 대로 두었으면 어떻게든 해결 되었을 일들을, 내 통제 안에 두고 내가 대비한 대로 흘러가게 만들려던 욕심이었던지도.
그렇게 계획적인 두 사람이 살아보니 좋은 점은 우리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면서 지금 대비할 수 있는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것. 경제적인 면에서도, 가족 계획에 있어서도, 개인적인 자아 실현에 대해서도 이렇게 되면 저렇게 하자 하면서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경우의 수 중 하나가 우리에게 닥쳐오면 최대한 많이 알아보고 빠르게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는 후회를 하지 말자고 하면서. 혹여 한 명이 지쳐서 계획할 수 없는 상황이 오더라도 나머지 한 명이 그 계획들을 먼저 해 나가면 나머지 한 명이 따라가면 된다.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게 우리의 인생이라지만, 계획형 부부가 함꼐 살면 서로에게 든든함을 느끼며 더 지혜로운 방법들을 모색해나갈 수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서로를 믿는 마음만 조금씩 더 채워나가면 된다. 서로에게 완벽한 파트너가 될 수 있는 계획형 부부, 앞으로도 우리의 길을 잘 걸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