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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할영 Aug 06. 2024

남편과 함께 출근하면 좋은 점

구치소 인턴 일기

남편과 아침에 함께 출근해서 함께 퇴근한지 2달이 되었다. 그와 연애하던 7년의 시간 동안 그가 일하는 곳에 함께 근무하게 되리라곤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나는 책 곁에 일하던 서점 직원이었고, 그는 교도관이었으니까. 서울에서의 생활을 접고 그가 근무하게 된 통영에 함께 오기로 결정하게 되면서도 일을 하더라도 지자체 기관 정도에서나 일하게 될 줄 알았지, 같은 곳에 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남편이 근무하는 곳에서 채용과는 연계가 되어있지 않지만, 계약직 행정 인턴이라는 채용 공고를 발견하고서는 아, 드디어 나도 남편이 말하는 이 직업의 세계를 어깨 너머로나마 볼 수 있는 기회가 오겠구나 싶어 지원하게 된 게 지금에 이르렀다.

부부가 같은 근무지에 일을 하게 되면 좋은 점 하나는 이동비의 절감과 퇴근 후 동선 계획이 수월하다는 것이다. 출근을 할 때도 아침에 같이 나오고, 퇴근할 때도 같이 차를 타고 퇴근하니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출퇴근 하기도 좋고 유류비 측면에서 정말 효율적이다. 퇴근 후에 마트에 장을 보러 가거나 외식을 가거나 바다로 놀러 가기에도 바로 같이 떠나면 되니 이것 또한 좋다. 누군가 한 명이 회식이나 약속이 있을 경우에는 한 명이 기다리고 있어야 하지만, 그래도 한 명은 대리기사를 해 줄 수 있으니 나머지 한 명이 술 약속이 있더라도 안전성의 측면에서도 좋은 점이 있다.


두 번째로 좋은 점은, 같이 아는 동료들이 있으니 서로 대화를 하기에도 편하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 점을 단점으로 꼽을 수 있겠지만, 평소 말하기를 좋아하는 우리에게는 공통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경우 말이 더 잘 통해서 이 점도 꽤 재미있는 지점이었다. 남편이 누구를 말해도 내가 알아들을 수 있고, 내가 회사에서 있던 이야기를 해도 남편이 모두 공감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전에는 남편이 내게 말하는 그의 직장에서의 일들을 내가 이해하는 데에 시스템적인 면에서나 조직의 분위기를 제대로 알지 못해 힘이 들었는데, 이제는 그의 말을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다는 점이 우리 부부의 관계에 아주 좋은 측면이 되었다.

부부로서보다 개인적으로 좋은 점도 있다. 잘 몰랐던 법률의 세계를 아주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는 점이다. 생각보다 구치소와 교도소에서 수용자들을 관리하기 위해, 그들의 수감 중 벌어지는 일들을 관리하기 위해 행해지는 일들이 많다. 나는 그 중 그들의 수용 중 소송 서류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데, 소송과 관련된 것들을 보다 보니 법과 관련된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어 남편의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생활 속 법률적인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도 이곳에서 일하게 된 건 잘한 일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간 살아오면서 법률적으로 공부해야 했던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이곳에서 민사부터 형사 소송 중 오가는 서류들을 보게 되면서 법률 소송의 단계들을 매번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어느 공소장에서 시작해 판결로 끝나는 어느 사건들이 우리가 뉴스로 접하는 세상의 일들이 된다고 생각하니 새삼스럽기도 했다. 이렇게 보다 보니 누군가가 피의자와 피해자가 되는 건 정말 한순간이며, 어떤 사건이 발생하는 것 역시 언제고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만감이 교차할 때가 많다. 음주 운전부터 마약, 사기, 폭행, 살인, 성범죄 등 말만 들으면 굉장히 무서워 보이지만 이런 일들은 우리 생활 속에서 생각보다 자주,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일들이다. 사건으로 기소되지 않은 것들도 무수히 많을 테니 범죄들은 얼마나 많을까.

남편과 함께 출근하면서, 같은 직업을 경험하면서 교도관인 그가 말해왔던 '범죄는 도처에 있다'는 말을 다시 생각해본다. 이제야 그가 말했던 것들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아니, 복합적으로 생각해보게 된 것 같다. 무엇이 한 사람을 범죄자로, 피의자로 만들게 되는 것인지,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범죄자다운' 모습을 가진 게 맞는지, 더 나아가 범죄란 어떻게 벌어지는 것인지까지. 내가 그의 직장에 출근해보지 않았다면 생각해보지 못했을, 알지 못했을 것들을 함께 알아가고 이야기하는 일. 짧은 6개월 동안 그의 직업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이 시간이 꽤 오래도록 우리에게 작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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