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바다는 이만하면 됐어
거제에 사는 동안 바다는 실컷 즐기겠노라 작정하고 날이 더워진 5월 말부터 주말마다 거제의 해수욕장과 바닷가를 찾아다녔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가서 한없이 바다를 쳐다보기도 하고,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해수욕장에서 돌고래 튜브를 타고 아이처럼 놀기도 하고, 몽돌해수욕장에 가서 시원한 바닷물에 발만 담가도 차갑다며 일몰을 함께 보기도 했다. 거제의 해수욕장들 중에서 안 가본 곳이 없을 만큼 이 바다, 저 바다를 죄다 찾아다녔다. 평생 볼 바다를 다 보려고 하는 것처럼.
도시에만 살다 와서 도처에 바다가 있는 게 마냥 신기했던 터라 더 많이 찾아다닌 것도 있었다. 여행하듯 사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한껏 느끼면서. 오션뷰 호텔은 앞으로 시시해지게 하자며 바다가 보이는 집에 살게 되더니, 주말에도 바다를 그렇게 돌아다녔더랬다. 발바닥에 모래를 묻혀오는 날들이 꽤 많아졌고, 집에는 튜브와 보트가 생겼다. 평생 사 본 적이 없던 품목들이었다.
왜인지 저번 주말은 너무 덥기도 하고, 기력이 딸려서 그런지 집에서 쉬고 싶어서 남편에게 물었다. "원래 이렇게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던가..?" 하고. 남편은 말했다. "나도 집에 있고 싶은데, 뭔가 거제에 살면서 이 성수기인 여름에 바다에 나가지 않으면 손해인 것 같아" 라고. 사실은 정말 귀찮긴 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동감이었다.) 무언가를 하면 본전을 뽑아야 하는 남편과 나는, 올해가 이곳에서 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 여름인 것처럼 거제의 여름조차 본전을 뽑으려 했던 것이다.
그렇게 다니다 보니 사실은 둘 다 나가는 게 귀찮아지기도 했는데, 바다가 이제 조금 지겹기도 했는데, 서로 시원하게 말을 못하고 있던 것이 새삼 웃겼다. 고작 얼마나 살았다고 바다에서 노는 게 지쳤다고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 둘 다에게 있었던 것일까. 이번 주말은 집에서 쉬자고 말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운 거라고 이 더운 날씨에도 김밥을 사서 바다에서 먹고 왔던 것인지! 집에만 있으면 왜인지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 같아서 어디라도 돌아다니려 했던 우리 부부는 이제야 속 시원하게 서로에게 말할 수 있었다. "여름 바다는 이제 이만하면 된 것 같아" 라고.
무얼 해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둘의 성향이 여기에서도 드러나다니. 원 없이 바다를 보고 나니 여름의 바다는 이제 이만하면 됐다 싶을 정도가 되었다. 더위에 괜히 지치지 말고 조금 더 선선해진 바다를 또 찾아가자고, 거제를 이만큼 돌았으니 이제는 주변의 다른 지역들을 다녀보자고 했다. 이제야 제주가 고향인 친구에게 "제주 바다는 아무리 봐도 지겹지 않겠다!" 하고 말했을 때 친구가 할 말 많은 표정을 지었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매일 보면 바다도 무뎌지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본능적으로 갈구하는 욕망이 있는 것이 틀림 없다. 도시에 살 때는 바다가 그렇게 좋아 보이더니, 막상 바다 곁에서 살다 보니 그 바다조차 무뎌지기도 하니까. 이제는 어두워진 밤바다를 보면서 도시의 밤이 슬슬 생각나기도 한다. 부지런히 이곳 거제를 누리겠다는 다짐을 알차게 실행한 결과로 조금 지친 우리는 이제 잠시 도시로도 다니면서 바다를 그리워 할 틈을 만들려고 한다. 너무 곁에 있다 보면 소중한 줄도 모르고 지나갈 테니까.
조금만 쉬다 올게, 바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