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결혼식에서도 안 울었는데
내 결혼식에서도 울지 않고 연신 웃었던 내가, 시누의 결혼식에서 울었던 지난 주말. 어떤 오지랖이 발동해서, 어떤 서사에서 눈물이 터졌던 건지 이해하려면 꽤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한복을 입은 탓에 가족사진에서도 시어머니의 자리를 대신해서 시누보다 더 어린 나이의 내가 시누 옆에 서게 되었던, 결혼식에 참석했던 나의 친정 엄마를 보고 함께 눈물이 터져버렸던 시누의 결혼식 이야기.
우리가 결혼한 지 만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시누도 올해 여름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어머님을 보내드렸는데, 시누의 결혼도 바로 뒤이어 있어서 가족사가 유독 많았던 올해가 되었다. 아버님은 덕분에 바빠지셨고, 남편과 시누도 정신 없이 흘러갔던 올해. 시누의 결혼까지 하고 나면 이제 정말 집안 대소사는 얼추 마무리 했다며 속 시원하다는 아버님의 말씀처럼 쏜살같이 집안 친척들을 자주 만났던 작년과 올해는 꽤 바빴던 해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남편보다 4살 아래의 시누는 나보다는 4살 위여서, 편하게 '언니'라고 부르는 내게 집안 어르신들은 '언니' 아니고 '아가씨'나 '시누'라고 하라고 하시지만 우리는 서로 편하게 언니라고 칭한다. 결혼 전부터 남편과 시누의 유달리 좋았던 우애를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시누는 남편을 무척 따랐다고 하고, 남편도 어디를 가도 시누와 같이 다녀서 남편의 친구들도 시누를 잘 알고 있었다. 항상 잘 웃고 사람들에게 맞춰주는 성향의 시누는 어디에서나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장난기도 있어서 사람들과 곧잘 잘 어울리고 친해지는 시누는 자신보다 어린 새언니인 내게도 늘 폐를 끼치지 않으려 배려해주었다. 그런 시누가 결혼을 한다니, 왜인지 나도 시누의 남편이 될 시매부에 관해 오지랖을 부리게 되는 게 아니던가! 남편과 시누의 관계가 워낙 여느 남매보다 좋은 편이어서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시누가 행복한 것이 남편의 마음도 놓이는 길이니까.
우애뿐만 아니라 부모님에 대한 효심도 지극한 남편과 시누는 어머님이 아프신 뒤부터 결혼을 포기했다고 했다. 둘의 상황에서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 건 사치라고 생각했다고. 아픈 어머님과 어머님을 돌보시는 아버님을 살피는 일이 자식으로서의 역할이라 생각했던 두 남매에게, 남편의 결혼이라는 변수가 생기면서 시누도 고민이 깊어졌을 터였다. 그렇게 따르던 오빠가 가정을 꾸리고, 아버님도 은근히 딸까지 시집 보내야 마음이 편하시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셨으니. 거기다 어머님의 병세는 나아질 기미는커녕 더 안 좋아지기만 하셨고, 끝내 돌아가신 후에는 마음이 많이 약해지지 않았을까. 그렇게 시누의 마음도 어느덧 결혼으로 향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하튼 결혼을 생각지도 않던 두 남매가 결국에는 각자의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는 말.
그런 시댁의 서사를 잘 알고 있다 보니, 시누의 결혼식에서 어머님의 빈 자리를 조금이나마 채워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보통 내 나이대에는 잘 입지 않는다던 결혼식에서의 한복을 꺼내 입고, 신부대기실에서부터 시누의 옆을 계속 지키면서 그 모습들을 사진으로 담아주었다. 멀리서 오신 시댁 친척들도 챙기고, 친정 식구들도 참석해주십사 말씀 드려서 함께 했다. (친정 식구들이 오신 건 정말 많은 힘이 되었다.) 어설펐을 지는 몰라도 내가 며느리로서, 올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해 보려고 노력했다.
축의대에 있던 남편과 본식이 시작되고 나서 맨 앞자리에 가서 앉았는데, 왜인지 자꾸 눈물이 고여왔다. 시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다가 문득 항암치료로 살이 급격하게 빠지신 아버님의 작은 뒷모습이, 어머님을 떠나보내고 혼자 계신 그 뒷모습이 눈에 들어와서였다. 어머님이 아프신 뒤로 더 견고하게 가족 간의 사랑을 쌓아온 이 가정의 자식들이 자신의 가정을 이루게 된 모습이 감격스럽기도 하고. 뭐 그리 오지랖을 부리냐며, 시누의 결혼인데 오버하는 것 아니냐고 할 지 모르겠지만 남편과의 연애 기간이 오래되었으니 그의 가족들에게도 마음이 절로 가는 건 어쩔 수 없던 것 같다.
결혼식이 끝나고 사진 촬영을 하기 전에 우리 친정 식구들이 아버님과 우리 부부에게 수고 했다고 인사를 하러 왔는데, 엄마를 마주친 순간 더 눈물이 왈칵했다. 내겐 이렇게 엄마가 있어서 항상 든든한데, 시누는 어머님을 잃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허전할까 하고. 뭐니 뭐니 해도 딸에게는 엄마만큼 의지되는 사람이 없는데 하는 생각을 요즘 들어 더 하게 되어서 그랬던지도 모르겠다. 남편도 안 우는데 별안간 내가 울어버렸던 시누의 결혼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마지막 가족 사진 촬영에서 한복을 입으면 결혼 당사자들 바로 옆 쪽에 서야 한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는데, 상황이 그렇다 보니 내가 시어머니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꽤 부담되는 자리였지만 내가 그 자리를 채워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남편과 결혼한 지 1년 도 되지 않았는데 함께 큰 일을 세 번째 치르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우리가 서로에게 서로가 아니었다면 꽤 많이 답답했을 것 같다는 것.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어서 이 일들을 모두 치를 수 있었다는 것. 남편도 하나씩 일을 치를 때마다 나에게 더 고마움을 표하는 게 같은 마음인 게 분명했다. 이렇게 더 가족으로, 부부로 깊어지는 거겠지. 이제 진짜 우리가 잘 살아가는 일만 남았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