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감옥생활을 하고 있다. 내가 속한 곳에서 눈과 귀가 보고 들을 수 있는 세계는 지극히 좁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감옥에는 창이 하나 있다. 이 창으로 우리는 어떤 세계와도 만날 수 있다. 바로 ‘책’이라는 이름의 창이다. “
스페인의 어느 작가가 한 말이다. 책 한 권은 한 사람의 삶이고, 한 세상이다. 감옥에 갇힌 죄수들이 책을 읽는 이유는 책으로 사람을 만나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불행한 삶 중에 미래가 없는 삶이야말로 최악의 삶일 것이다. 세상과 단절된 채 오늘 죽을지 내일 풀려날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절망과 좌절의 나날을 보내야 하는 감옥의 죄수들에게 찾아오는 고통의 정도는 어느 정도일까? 겪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다.
책은 때로는 위기 앞에 선 사람을 흔들리지 않게 붙들어 주고, 담담하고 강한 사람으로 일으켜 세워 준다. 책을 읽는 행위만으로 두려움을 이겨낼 용기를 가슴속에 심어주고, 두려움을 두려움으로 느끼지 않는 담대한 마음을 불어넣어주기도 한다. 투옥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책을 읽어 절망과 좌절의 고통을 득오(得悟), 즉 깨달음의 기쁨으로 만든 인물들이 있다.
죽음을 앞둔 사형수의 독서
- 김대중 전(前) 대통령
흔히들 감옥을 학교라 부른다. 나쁜 의미든 좋은 의미든 감옥 생활은 반성과 성찰의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감옥은 말 그대로 학교였다. 아니 그에게는 도서관이었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겠다. 감옥은 그에게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거듭날 수 있는 자신만의 사상을 세울 수 있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통령 중 독서가를 꼽으라면 김대중 대통령을 꼽는다. 문학, 역사, 철학, 종교, 정치, 경제 등 다양한 종류의 책을 ‘많이 읽고 꼼꼼히 읽는’ 스타일인 김대중 대통령은 차 안에서든 이발소에서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읽고 난 다음에는 항상 메모나 발췌록을 남겼다.
김대중 대통령이 독서를 가까이 한 배경에는 ‘학력 콤플렉스’가 있다. 대학을 정상적으로 마치지 못한 열등감을 ‘독서를 통한 실력 배양’이라는 목표로 극복해 나가려 했다. 그는 자신의 학력 콤플렉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고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활동을 하면서 콤플렉스를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향상하려는 의지가 없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자기의 부족한 현재 상황을 직시하고 거기서부터 탈출하려는 의욕으로 연결되는 그런 종류의 콤플렉스는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족함을 알고 이를 해결하고 극복하려는 마음, 책 읽기를 시작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는 학력 콤플렉스를 해소하기 위해 책을 얼마나 읽었을까? 김대중 대통령은 한 인터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삼상 지학(三上之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삼상은 마상(馬上), 침상(沈上), 그리고 측상(廁上)입니다. 즉 말 위와 베개 위와 화장실에서까지 공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어느 곳을 가든지 책을 들고 다녔고, 어디서든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책을 펴 들었습니다. 지금은 습관이 되어서 애쓰지 않아도 그렇게 됩니다.
배우는 데에는 여행길이나 잠자리나 화장실의 구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대학을 못 갔더라도 열심히 공부하면 대학 졸업한 사람보다 실력을 더 갖출 수 있다는 생각이 채찍이 되어 나를 앞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얼마큼 실력도 갖추게 되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감옥 생활의 네 가지 즐거움을 말한 적이 있다. 그 즐거움의 첫째는 독서였고, 두 번째 즐거움은 가족과의 면회, 세 번째 즐거움은 편지를 받는 것, 네 번째 즐거움은 화단을 돌보는 일이었다. 김대중은 대통령이 된 후 한 인터뷰에서 감옥 생활을 오히려 감사하며, 가끔은 그 생활을 동경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점차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변화 없는 매일매일의 감옥 속에서 즐거움까지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감옥에서 무슨 즐거움이냐고 물을 사람들을 위해 나는 감옥에서 얻은 몇 가지 즐거움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나의 경우, 감옥 안에서 네 가지 즐거움을 맛보았습니다. 그 첫째이자 가장 큰 것이 독서의 즐거움이었습니다. 1977년의 진구 교도소 생활 때도 그랬지만, 1981년 청주 교도소에서의 2년간의 생활은 그야말로 독서의 생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철학, 신학, 정치 경제, 역사, 문학 등 다방면의 책을 동서양의 두 분야에 걸쳐서 읽었습니다.
나는 러셀의 <서양철학사>,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플라톤의 <국가론>,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테야르 드 샤르뎅 신부의 저서들, 라인홀드 니버와 하비 톡스의 신학 서적들과 그리스 이래의 문학 서적들을 탐독하고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문학 서적 중에서는 특히 러시아 문학에서 얻은 감명이 컸고, <논어>, <맹자>, <사기> 등 동양 고전과 원효와 율곡에 대한 저서, 그리고 조선 말기의 실학 관계 서적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진주와 청주에서의 4년여의 감옥 생활은 나에게는 다시없는 교육의 과정이었습니다. 정신적 충만과 향상의 기쁨을 얻는 지적 행복의 나날이었습니다. “
독서광이었던 김대중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감옥에서 하루 종일 미친 듯이 책을 읽었다. 그는 한 평짜리 독방에서 언제 죽을지 모를 기약 없이 하루하루 버티듯 살아야 하는 자신의 절망적인 현실에 크게 상심하고 낙담할 법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을 바꿔 어쩔 수 없이 매일 살아가야 수감생활이라면 자신에게 보다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시간으로 만들자 마음먹고 더욱 독서에 정진했다.
그리고 세상과 격리된 수감 생활 동안 수백수천 권을 읽었다. 그는 수감생활뿐 아니라 두 차례의 망명생활과 자택연금 때에도 흔들리지 않고 예의 많은 책을 읽으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고민했다. 그렇게 읽은 책이 일주일에 평균 4권 정도였고, 책을 읽는 데에 그치지 않고 많은 글을 남겼다. 특히 수감생활 동안 봉함엽서에 깨알이 같이 썼던 편지글들은 <옥중서신>이라는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나는 양서를 읽을 때마다 ‘내가 여기(감옥)에 오지 않았더라면 이 진리를 알 수 없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감격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만 본다면, 교도소에 수감된 것을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독서를 하면서 나는, 인간에게는 완벽한 불행은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지금도 빨리 읽어보고 싶은 좋은 책을 만나면 ‘교도소에서는 금방 다 읽을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한편 그가 읽은 책의 종류는 형량에 좌우되었다. 무기징역형을 받고 마냥 죽음을 기다렸을 때 김대중은 성경을 읽었다. 그가 의지할 대상은 하나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형이 결정되면서 그는 성경 읽기를 중단하고 러시아 소설을 시작으로 사회, 철학, 경제, 통일 등 다른 분야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고 한다. 언젠가 출소해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책을 건성으로 읽지 않고 현미경으로 곤충을 관찰하듯 주의 깊게 읽었다. 특히 배울 점이 많은 전문서적을 읽을 때마다 중요한 대목은 눈에 힘을 주고 뜸을 들이며 관찰하듯 읽으면서 상상력을 발휘하여 책의 내용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었다.
김대중의 이른바 ‘독서 관찰법’은 평소 화초를 가꾸거나 곤충이나 동물을 관찰하면서 자연스럽게 체화된 독서습관이다. 동교동 앞뜰에서 자란 수십 가지의 꽃과 화초를 돌보고, 겨울철 응접실에서 동양란과 서양란, 아지리 아를 정성껏 가꾸면서 자연스럽게 관찰력을 키울 수 있었다고 한다.
김대중은 대통령직을 퇴임한 후에도 책을 놓지 않았다. 혈액 투석을 할 때도 비서들에게 책이나 신문을 읽어 달라고 해서 비서들은 그의 독서 중독증을 걱정할 정도였다. 생의 마지막 입원을 위해 세브란스 병원에 가기 직전까지도 그는 집에서 책을 읽었다. 재임 시절 그는 곧잘 “바빠서 책을 읽지 못하면 감옥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 감옥에서 책이나 실컷 읽었으면 할 때가 많아요.”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김대중을 키운 곳은 다름 아닌 한 평짜리 독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