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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history는, 잘 만든 영화story와 같다

by 리치보이 richboy Mar 09. 2025




20세기 말 감옥에 갇힌 어느 무기수는 

한 달에 한 번 허락된 편지 쓰기를 위해 한 달 내내 써야 할 글을 머릿속으로 쓰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편지가 허락된 종이는 달랑 엽서 하나 뿐, 하고픈 말이 아무리 많아도 허락이 안 되고, 수정펜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처럼의 소식을 듣는 가족들이 걱정할까 그는 자신의 근황은 접어 두고 한 달 동안  외워두었던 글을 한편의 서간문으로 써 보냄으로 '나는 몸도 마음도 정신도 건강합니다'라는 소식을 대신했다.   


그런데 그가 써 보낸 한 장의 엽서들은 한 편의 작품이었다. 글자 하나 틀린 게 없고 글 사이에 직접 그린 그림까지 그려서 마치 서화작품 같아서 '이것이 과연 감옥에서 쓴 글인가' 하고 엽서를 읽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오늘 내가 필사한 글 <떨리는 지남철>도 그 서간문 중 하나인데, 한 문장을 떠올리는데 하루가 걸린 듯 버릴 말이 하나 없고 곱씹게 한다. 


어제 하루 종일 내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킨 이 글 <떨리는 지남철>을 쓴 사람은 '신영복 선생'이다. 


나중에 작가 김정운 교수가 쓴 <남자의 물건 >라는 책에서 그의 인터뷰 글이 실렸는데, '어떻게 글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글을 쓸 수가 있는가?’라는 작가의 질문에 신영복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한 달 내내 모두 다 수정해서 거의 원고를 암기한 수준에서 쓰는 거니까. 

그때는 또 20대, 30대 초반이니까 머리도 좋아서 다 암기하고. 그래서 이번 달에는 이 문제에 대해 쓰자, 다음 달에는 이런 문제에 대해 쓰자 하고 한 달 내내 생각을 쭉 정리해요. 그런데 이걸 어디다 기록하지 않으면 그냥 강물같이 흘러갈 것 같아서, 전혀 집필이 허용되는 상황이 아니니까, 뭐 그래서 가족들에게 보내는 서간에 다 쓴 거지요.”



그리고 "희망 없는 무기수가 20년을 한결 같이 아름다운 서화작품 같은 편지를 쓸 수 있었는가?" 하는 질문에는 이와 같이 대답했다. 



"충분히 그런 질문이 가능한데요. 2,3년 후에 출소하는 단기수들 하고 무기수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어요. 단기수들에게 징역이란 빨리 끝나면 좋을 시간이죠. 아무 의미를 담지 않고 오로지 출소만 생각해요. 반면 무기수는 출소 날짜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뭔가 살아갈 의미가 있어야 해요. 

결과적으로 인생이란 게 그런 게 아닌가 해요. 

삶 자체가 과정이 아름다워야 하고, 뭔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깨달음도 있어야 하고.... 그래서 아마 무기수라는 어쩌면 굉장히 절망적인 상황이 인생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열어주기도 하지 않을까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출소 날짜가 없는 무기수의 하루도 엄연한 인생이다. 그를 살게 하는 건 어쩌면 매일 조금씩 죽어가는 의미 없는 반복된 하루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난 '의미' 덕분이 아닐까. 그 점에서 죽는 날짜를 모르는 내가 보내는 오늘 역시 무기수의 하루와 다를 바가 없단 생각도 들었다. 나아가 비록 감옥 안에서도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건 내가 어떤 생각으로 살고 행동하느냐에 달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역사history는 잘 만든 영화story와 같다.


우리가 평가하는 잘 만들어진 영화는 '드라마틱한 스토리'와 '결정적 순간마다 만나는 배우의 연기'가 숨어 있다. 하지만 그 영화의 편집과정을 들여다 보면 수많은 NG와 재촬영 그리고 배우를 비롯한 수많은 스태프들의 실수와 잘못이 반복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관객은 영화를 보며 '훌륭하다'고 평가하지만, 모든 과정을 연출했던 영화감독은 그 영화를 보면서 뭐라고 평가했을까? 아마도 '촬영기간은 정말이지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배우와 스태프들이 수많은 위기를 잘 넘겨줬다'고 말할 것이다. 


내가 놀라고, 좌절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희망하는 매일이 더해져서 역사가 되는 법이다. 

어제와 오늘은 그런 하루를 견디는 중이고, 틀림없는 역사는 만들어지는 중이다. 

화가 나고, 불안해서 마음이 떨리는 오늘을 보내고 있지만, 나와 친구들은 여전히 방향만은 잊지 않는 '떨리는 지남철'이란 걸 잊지 말기를. -rich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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