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조각을 떼어내고 조각을 통해 형태를 만들었다면, 가장 어려운 단계인 다듬기를 거쳐야 한다. 대개 앞의 두 단계 정도는 무난히 해낸다. 하지만 힘들고 어려운 다듬기 단계에서 사람들은 꼭 ‘의문’을 가진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조각을 하다 보면 ‘훌륭한 조각가가 되지도 못하고, 돈도 되지 않는 이걸 내가 왜 하지?’ 하는 회의가 드는 것이다.
그래서 잠시 조각일을 멈추거나 한동안 아예 작업을 하지 않는 냉담기를 갖기도 한다. 이 기간을 거치면서 다시 조각일을 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조각가’는 결정된다.
따지고 보면 인생의 모든 일이 거의 비슷한 시기를 거친다. 일종의 매너리즘인데, 자신이 관여하고 있는 일을 5~7년 정도 해서 거의 알 법한 시기 하지만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시기에 매너리즘이 생긴다. 일이 만만해지니 재미가 없고 그래서 몰입할 수 없는 상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수십수백 권의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훌쩍 성장한 자신을 발견한다. 많이 읽으면 많이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아는 체’를 하게 되는데, 이 ‘아는 체’하는 재미에 빠지다 보면 자만하게 되어 책 읽기를 등한시하게 된다.
한편 같은 시간을 들여 많은 책을 읽었지만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역시 책 읽기를 멀리한다. 이 경우는 책을 잘못 읽은 경우인데, 100명 중 5명 정도는 이렇듯 아무리 읽어도 책 읽는 재미를 느끼지 못해 회의를 느끼고 멈추고 말아서 안타깝지만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책 읽기가 지겨워질 때 즈음을 만나면 이런 시기는 누구에게나 온다는 것을 이해하고 당황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럴 때는 새로운 마음으로 오히려 더 읽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불광 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풀어보면 ‘미쳐야 미친다!’라는 뜻인데, 성공한 사람들의 좌우명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 무슨 일을 하든 절대 낙담하지 않는다.
둘, 무슨 일이든 시작했으면 끝까지 해낸다.
셋, 도중에 결코 단념하지 않는다.
이 세 가지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바로 ‘마부작침(磨斧爲針)’의 자세 즉, ‘커다란 쇳덩어리인 도끼를 갈고 갈아서 얇디얇은 침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끝을 보는 자세와 열정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미 책을 즐겨 읽는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얼마나 더 완성하느냐의 문제에 다다른 셈이다. 이 때는 책을 읽는 방법을 약간 달리 하면 충분히 극복할 뿐만 아니라 독서력을 한층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읽다가 느꼈거든 의심하고 메모하라
책을 읽다가 문장 혹은 단어 속에서 무엇인가 깨달은 것이 있으면 잊지 말고 책에다 직접 혹은 따로 준비해 둔 노트에 메모를 하자. 이러한 방법을 질서疾書라 하는데 송나라 때 학자 장재가 <정몽>을 쓸 때 집안 곳곳에 붓과 벼루를 놓아두고 생각이 떠오르면 잊지 않기 위해 밤중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등불을 켜고 메모한 데서 연유된 말이다.
느낀 바를 잊지 않기 위해 빨리 써둔다는 것은 아무런 의심 없이 책을 읽어 온전히 습득하는 단계를 넘었다는 것을 뜻한다. 아울러 그간 읽어온 독서력과 살면서 체득한 경험에 비추어 책은 바를 의심하고 스스로 깨닫고자 하는 다음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뜻한다.
질서는 단순히 저자의 주장을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 얻음으로써 읽은 바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튼튼히 세우는 데 목적이 있다. 책을 읽을 때 무작정 읽기보다는 ‘저자는 왜 이러한 표현을 썼을까, 왜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일까’에 대한 의심을 갖고 접근하면서 독서력은 배가가 된다.
질서를 실천한 대표적인 독서가가 있는데, 바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다. 다산은 기록을 특히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흔들리는 배위에서도 쉴 새 없이 붓을 들어 메모하고 또 시를 지었다고 한다. 특히 경전 공부를 할 때 의심했던 부분에 대한 답을 얻게 되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메모했다. 그는 구절 혹은 글자마다 의심을 품고 읽음으로써 깨달은 내용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질서를 통해 자신의 학문 체계를 수립했다 한다.
질서를 통한 독서는 저자의 주장을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확고히 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다산은 독서를 하는데 의심하고 기록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기록을 통해 사고의 발전이 있고 학문이 성장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럼 질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의심하며 읽어야 한다. 책을 읽다가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처음 독서를 할 때야 저자의 생각을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모두 담았다고 하지만, ‘탁의 단계’에 접어들면 글을 읽다가 의문이 생기면 그냥 지나칠 것이 아니라 그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저자의 말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자는 뜻이다. ‘정말 이 주장이 맞을까?’라는 의심을 갖는 것은 절대로 저자에 대한 불경(不敬)이 아니다. 그동안 많은 책을 읽어왔기 때문에 충분히 그 의문에 답을 줄 수 있는 다른 책을 찾을 수 있다.
두 번째는 그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묻고 답하는 토론을 하는 것도 좋다. 이렇게 다른 책을 뒤져서 읽고 토론을 한다고 해서 의문에 대한 정답을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의문에 대한 고민은 혼자서 한 권의 책을 무작정 읽어 이해할 때 보다 관련한 다양한 글을 읽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연구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어 독서의 깊이는 한층 깊고 넓어진다.
세 번째, 기록하며 읽어라.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 ‘아~’ 하는 깨달음이 생기는 때가 있다. 그간 가져왔던 궁금증이나 의심 등이 해소되는 순간인데, 이때를 놓치지 말고 그 깨달음을 기록하라.
생각은 담배연기처럼 바로 흩어지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깨달음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져 버리고 만다. ‘기억을 지배하는 것은 기록’이란 말이 있다. 기록은 굳이 잘 다듬어진 문장일 필요가 없다. 내 생각이나 느낌을 간단하게 잘 담아놓으면 이것이 실마리가 되어 언제든 간단한 기록만 봐도 내가 깨달았던 순간을 모두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나 깨달음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기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책 읽기의 흐름이 끊길 수도 있고, 책을 쓰거나, 글을 쓰는 전문가들의 생산적 책 읽기가 아닌 이상 이렇게 기록한 후 나중에 무엇을 할까 하는 회의도 생겨서다.
하지만 독서를 하다 보면 내가 주로 읽는 관심분야가 분명히 생기고 그 분야의 책을 제법 많이 읽다가 보면 단 한 마디라도 하고 싶은 말이나 생각이 떠오른다. 이때 자신의 의견을 기록하자.
‘탁의 독서 단계’에서 책을 읽을 때 추가되는 습관이라고 봐도 좋다. 책을 읽을 때 펜 한 자루를 옆에 두고 책이나 노트 등에 따로 메모를 하자. 단어든 문장이든 맞춤법에 상관하지 말고 떠오르는 바를 적자. 그러면 머지않아 꾸준히 떠오르는 생각 덕분에 읽으면서 메모하는 재미있는 상황을 만난다.
이 과정을 거치는 장점은 독자인 내가 저자에 투영되어 생각으로 대화하면서 나의 인생을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한편 ‘내 생각’이 무엇인지 점검할 수 있게 된다. 책을 읽는 행위는 간단하다. 하지만 읽으면서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따라 책을 읽은 소득은 천차만별이 된다.
나를 흔드는 글을 만나면 무조건 베껴써라
책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기억하고 싶은 문장 등을 메모장이나 독서노트 등에 따로 적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서’다.
책을 읽다가 직접 베껴 쓴 내용은 대부분 ‘내가 평소 말하고 싶었던 내용을 명쾌하게 적어놓은 문장이거나, 나에게 소름이 돋을 만큼 깨달음을 준 문장’ 들일 것이다. 그런 문장들은 외면하기 힘들다. 그래서 노트나 특별한 공간에 따로 적어두는 것이다.
이렇게 베껴 쓰는 것을 초서(抄書)라 하는데, 초서鈔書는 책을 읽다가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글이나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글을 만나면 노트에 따로 옮겨 적는 것으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 즐겨하던 독서법이다.
‘책 읽는 바보’로 더 잘 알려진 조선시대의 다독가 이덕무는 초서의 효과에 대해 “글이란 눈으로 보고 입으로 읽는 것이 결국 손으로 한 번 써 보는 것만 못하다. 대개 손이 움직이면 마음이 반드시 따르는 것이므로 비록 스무 번을 읽어 왼다 하더라도 한 차례 힘들여 써보는 것만 못하다.”라고 말할 만큼 초서는 훌륭한 독서법 중 하나다.
베껴쓰기를 통해 좋은 문장을 골라 제대로 읽기 훈련을 함으로써 독해력을 기르고 문장 표현력을 향상할 수 있다. 초서가 일부 베껴 쓰는 것이라면, 책 한 권을 모두 베껴 쓰는 것을 ‘필사(筆寫)’라고 한다. 필사는 소설가나 작가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꼭 거쳐야 할 관문이기도 하다.
안도현 시인은 대학 시절 백석 시인의 시를 노트에 베껴 썼다. 그는 <시와 연애하는 법>이라는 칼럼에서 베껴쓰기가 글쓰기를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시의 앞날이 잘 보이지 않을 때, 어쩌다 눈에 번쩍 띄는 시를 한 편 만났을 때, 짝사랑하고 싶은 시인이 생겼을 때 당신은 꼭 베껴 쓰는 일을 주저하지 마라. 그러면 시집이라는 알 속에 갇혀 있던 시가 날개를 달고 당신의 가슴 한쪽으로 날아올 것이다.”
<엄마를 부탁해>를 쓴 신경숙은 대학 시절 방학 때 소설을 읽다가 베껴쓰기를 시작했다.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에서 베껴쓰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냥 눈으로 읽을 때와 한 자 한 자 노트에 옮겨 적을 때, 그 소설들의 느낌은 달랐다. 필사를 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것이다. 나는 이 길로 가리라. 베껴쓰기를 하는 동안의 황홀함은 내가 살면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 각인시켜 준 독특한 체험이었다.”
전직 배우였다가 지금은 작가이자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는 명로진은 자신의 책 <베껴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에서 “글을 잘 쓰려면 정답은 베껴 쓰기다. 나보다 글을 더 잘 쓰는 사람의 글을 베껴 쓰면 된다. 왕도는 없다. 오늘 당장 소설가 김훈의 책을 모두 사서, 책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매일 세 쪽씩 베껴 써 보라. 1년 뒤, 당신은 김훈처럼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대표 소설가인 조정래 선생은 필사를 할 때는 구두점 하나, 띄어쓰기 어느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고, 바른 정자로 또박또박 곱씹으며 베껴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껴쓰기는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추천하고 싶은 독서법이다.
수백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쓴 김난도 교수는 ‘글은 힘이 세다’는 본문에서 자신의 필사 경험을 고백했는데, ‘일반인의 베껴쓰기’의 모델이 될 것 같아 다소 길지만 원문을 소개하려 한다. 그가 글을 잘 쓰고 싶었던 이유는 대학생 때 좋아하던 여학생에게 편지를 쓰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글을 쓰는 능력을 갖고 싶어서’였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 이후 좋은 글을 써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우선 시를 외웠다. 그 당시 집에서 학교까지 1시간가량 버스를 타야 했는데, 작은 카드에 시를 한 편씩 적어 넣고 버스 안에서 그걸 외웠다. 시인들의 글 솜씨가 내게 녹아들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물론 나는 시인을 꿈꾼 적도 없고, 그 이후 이렇다 할 시 한 편 제대로 쓴 적도 없다. 하지만 내 글에는 리듬감이 있어서 읽기 편하다는 칭찬을 간혹 듣는데, 그때 시를 외운 효과가 조금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혼자 생각한다.
나는 또 유명한 작가의 글을 끊임없이 옮겨 적었다. 그때의 버릇이 남아 지금도 문체가 좋은 글을 보면 이면지에 그대로 옮겨 적어본다. 컴퓨터로 치면 안 된다. 문장의 호흡을 길게 외워서 종이에다 펜으로 꾹꾹 눌러 베껴 적으면, 그 작가의 스타일이 내 가슴속에 그렇게 꾹꾹 흔적으로 남을 것만 같아서 그렇게 한다.
내가 가장 흉내 내고 싶었던 스타일을 가진 작가는 황순원이었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하고 나서, 명사와 조사만 조합해 문장을 이뤄가는 영어식, 번역투의 내 문체를 고쳐보려고 그의 소설집을 거의 다 옮겨 적은 적도 있다. 이 방법은 제법 효과가 있었다. 처음에는 단지 흉내 내는 것에 그치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체화되기 시작하고, 알게 모르게 글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요즘 가장 흉내 내고 싶은 작가가 김훈이다. 간결하면서도 명징하고 힘 있는 그의 문장을 닮고 싶다. 마음 같아서는 <칼의 노래> 같은 책을 통째로 다 옮겨 적어보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그렇게 하지는 못해도 그의 문투를 흉내 내려는 시도는 자주 한다. 쉽지 않다. 내공이 보통이 아닌 작가라는 생각을 새삼 한다.”
베껴쓰기를 하다 보면 ‘세 시간 동안 쉼표를 찍을지 말지를 고민하다가 내일 결정하기로 마음먹고 잠이 들었다’는 어느 작가의 고백처럼 문장 속 단어 하나 쉼표 하나가 작가의 고심 끝에 태어난 것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