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그처럼 제대로 달리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무릎이 통증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인생에 있어서 문제의 태반이 그렇듯이 이 통증은 아무런 징조도 없이 돌연히 찾아왔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한 말입니다. 러닝 크루에 들어가서 달리기를 시작한 지 3개월째입니다. 달리기가 취미인 하루키도 잘하지 않는다는 계절인 겨울의 초입에 시작했습니다. 만물이 겨울잠에서 깬다는 경칩(3월 5일)까지도 매주 한 번씩은 뛰어왔습니다. 지금부터 '3개월 달리기'속의 깨달음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달리기는 사실 ‘졸업’ 했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반 대표 계주 선수를 빼먹은 적이 없었습니다. 가장 잘 달려서 자랑스러운 4번 주자. 중고등학교에서도 달리기 1등은 놓쳐본 적이 없었습니다. 100m는 11초대, 50m는 6초대로 보통 들어왔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진 못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그래서 고교 졸업 후에도 꾸준히 운동은 했지만 달리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든 잘 달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루키의 말처럼 ‘인생의 문제’는 아무런 징조 없이 찾아왔습니다. 제겐 잘 말하지 않는 속병이 있습니다. 30대가 되자 예전만큼 몸이 쌩쌩하지 않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다들 그러시지 않나요. 혹시 그렇지 않다면, 사람 하나 살린다는 마음으로 댓글을 달아주세요. 병원에 가봐야겠습니다. 농구나 테니스로 ‘뛰고 있다’고 위안을 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체력 좋다’ 자신 있게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는 달라졌습니다. 체력이 좋다고 종종 말합니다. 향상된 능력은 신체 기능뿐만이 아닙니다. 마음이라고 할까요. 정신도 변화했습니다. 한 번 뛰면 7km를 약 40분 동안 뜁니다. 처음 달리기를 할 때는 ‘반신반의’했습니다. 예전만큼 뛴다면 거뜬하겠지만, '혹시나'도 발목 잡았죠. 아무 생각 없이 뛰자 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더군요. 일단 뛰면 아무런 생각이 없어집니다.
우리는 ‘노력’에 대한 엄청난 미신을 가지고 있다. 노력해야지만 성공하고 인정받는다고 배워왔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평생 ‘애만 쓰다 죽는 인간’이 되었다. (중략) 그러나 성경의 통찰은 ‘노력’이 먼저가 아니라 ‘믿음’이 먼저라는 것이다. 믿고 믿음대로 담대하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신수정 작가는 그의 저서 <일의 격>에서 믿음과 노력의 관계를 역전하라고 말합니다. 결과가 잘 나와야 믿지 말고, 믿어야 결과가 잘 나온다는 뜻입니다.
달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력보단 믿음입니다. 숨이 차는 순간 갖은 생각이 듭니다. ‘오늘 컨디션이 안 좋네’ ‘무릎도 발바닥도 아프네’ ‘조금 쉬다 갈까’ 완주하지 말라는 불신의 속삭임이 끊임없이 들려옵니다. 이 순간을 참고 나면 쾌감을 뜻하는 ‘러너스 하이’가 옵니다. 다양한 운동 속에서 깨달은 건 인간 생체 메커니즘은 인생과 닮은 부분이 많습니다. 고통을 극복하면 행복이 찾아옵니다.
달리기는 회사에선, 살아가면서 쉽게 체감할 수 없는 ‘믿으면 된다’를 구체화한 운동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