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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월 문 Mar 14. 2024

몸치가 되는 요가가 좋은 이유.

EP 8. 척에 관하여

요가만 하면 바보가 됩니다. 몸이 뻣뻣해서 동작은 우스꽝스러워집니다. 얼굴은 어쩔 줄 몰라합니다. 잘 안 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제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겨울, 처음 요가 바보가 됐습니다. 그럼에도 ‘간헐적 요가’를 하고 있습니다. 구청 스포츠센터에서 매일 새벽 요가를 매달 결제하고 있고, 일주일에 2-3번 정도 갑니다. 이놈의 아침잠.


누구나 바보가 되긴 싫어하지만 요가 시간에 바보가 되는 건 꽤 뜻밖의 순간을 선물합니다. ‘척하지’ 않아도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잘 못해서 잘하는 척을 할 수가 없습니다. 평점 매기기 좋아하는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종종 척을 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직업상 모르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아는 척’도 많이 합니다. 어머니가 전화 오면 힘들어도 ‘괜찮은 척’도 합니다. 


그런데 왠지 요가를 할 때만은 숱한 척들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첫 요가를 접했을 때, 배에 숨이 들어가는 소리에 집중하고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데 귀를 기울인 경험이 기억에 남습니다. 온전히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첫 경험이 모든 걸 말하진 않습니다. 지금은 5분, 10분 딴생각을 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도 어느 순간 뻣뻣해진 몸을 되돌리려 하다 보면, 금방 다시 몸과 마음에 시간을 쏟게 됩니다.


이렇게 척할 수 없는 시간이어서 요가를 긍정하지만, 반대로 요가를 하고 난 하루엔 '척'을 더 잘할 수 있기도 합니다. 여유가 생겨서입니다. 일어나자마자 휴대폰 알림과 실시간 전해지는 속보, 이슈들을 처리하고 나면 정신이 넉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가를 하고 난 아침엔 다릅니다. 풀린 몸의 부피만큼 정신적 공간이 훨씬 확보됩니다.


어쩌면 요가를 꾸준히 하는 이유는 어떻게든 '척'을 해야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척'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인간의 생존과 진화에 필요한 요소로 척은 진화해 왔습니다. <진화론>을 쓴 다윈이 도저히 수수께끼를 풀 수 없어서 혐오했다던 공작새의 화려한 깃털도 결국 '척'의 유용성으로 풀이됐죠. '천적에 눈에 이렇게 잘 띄는 깃털을 갖고도 나는 지금까지 생존했어' 공작새의 유혹은 인간 사회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요가에 관해 쓰면서 '척'까지 나아갈지는 몰랐는데, 쓰다 보니 결국 결말은 '아는 척'이 됐습니다. 요가를 다시 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이전 08화 전적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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