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한국사회에선 ‘게으름’의 유사어는 대부분 성공의 반대말입니다. ‘나태’, ‘태만’이 대표적이죠. 평소 게으른 사람이 부를 얻거나 승진을 하면 ‘얻어걸렸다’고 말합니다. 정당하지 않다는 시선이 깔린 것이죠. 심지어는 벼락을 내리기까지 합니다. 벼락 맞을 정도로 확률이 낮다는 뜻이겠죠. 그런데, 게으르면 정말 성공할 수 없을까요?
적어도 테니스에선 이런 신념은 버려야 합니다. 오히려 성실해서 못 칠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초보여서 인과관계가 딱 떨어지는지 확신은 없지만요. 구력 1년 차 때의 일입니다. 빠른 서브에도 기를 쓰고 반응하려고 했습니다. 멋있게 잘하고 싶었습니다. 강한 스트로크엔 재빨리 라켓을 휘둘렀습니다. 그런데, 계속 삐그덕 거리고 하나도 맞지 않더라고요. 라켓 끄트머리에 맞거나 공이 네트에 처박히기 일쑤였습니다.
가장 효과적인 처방전은 게으름이었습니다. 산술적으로 그렇습니다. 테니스 코트에서 보통 상대와의 거리는 20m 내외라고 하죠. 프로 경기로 따지면 시속 100km가 넘는 공이 끊임없이 오간다고 치면, 판단 시간은 약 1.5초. 함께 테니스를 치는 친구들의 공은 이 속도의 절반의 절반도 채 되지 않을 테지만, 그만큼 실력도 반의 반비례합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대입하면 체감 속도는 비슷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은 더 짧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약 1.5초 동안 짧은 시간에 ‘열심히’ 치는 게 가능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휘두르다 역효과가 난 이유입니다. 테니스에선 강한 서브는 ‘라켓을 거울삼아 공을 굴절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의 힘을 역이용해 반사하듯 보내야 된다는 뜻인데요. 반대로 라켓을 크게 휘두르면 공을 잘 맞히지도 못하고, 맞더라도 제대로 '임팩트'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서브를 받을 때만이 아닙니다. 게으름을 피우듯 ‘툭’ 건드리는 게 네트 앞에서도 최상의 결과를 낼 때가 많습니다.
열심히 하는 상대 앞에서 얼마나 여유를 부릴 수 있느냐. 어쩌면 이 말은 테니스에만 적용되는 물음이 아닐지 모릅니다. 여유는 인간관계에서도, 사랑에서도, 일에서도 알게 모르게 많은 것들을 안겨줍니다. 당신에겐 차분히 생각할 시간을 줘 결정의 정확성을 높이고, 상대는 안정과 편안함을 선물받습니다.공부도, 일도, 사랑도 '열심히'하는, 그렇다고 열심히 하는 건 아니지만 막상 열심히 안 한 걸 후회하는 가여운 세대에 태어난 탓일까요. 빠르고 강한 테니스 속에서 이상하게도 게으름을 찾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