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난 나에게 넌?
사랑은 기댈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기대어 줄 곳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 김제동
한번 헤어졌던 감정은 두 번 헤어진다고 달라지거나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왜 그렇게 금방 좋아지고, 또 금세 싫증이 나는 건지 상대방에게 묻고 싶었다. ‘먼저 좋다고 해서 만나더니, 이젠 먼저 싫다는 이유가 대체 뭐냐고?’ 근데, 지금은 알 수 있을 거 같다.
나는 사랑에 기대고 그 사람에게 기대고 결국은 그 기대에 지쳐서 모두들 떠나갔음을... 나는 헤어지는 달인처럼 짧게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고, 그렇게 점점 내 몸은 아파져만 갔다.
에피소드 1.
첫사랑과 헤어질 때
나 보다 먼저 대학에 입학한 그는 교회 오빠였다. 내 이상형과는 거리가 먼 여드름에 눈도 너무 찢어지게 위로 올라가서 싸나워 보였고, 말라비틀어진 몸매에 키도 작고 볼품도 없는 한마디로 별로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내가 좋다며 매주마다 나의 집까지 데려다주었고, 수능을 앞둔 100일 전에 내게 고백을 했다. 그러다 사귀게 되었고 내가 고3이 되자 그는 내게 너무 큰 불안 함을 안겨주었고 그는 나를 멀리했다.
그렇게 힘든 시절을 응원해주던 나를 그는 내버려 두고 지 살길 때문에 방황했다고 했다. 그러다 내가 못 버티고 물어봤고 다시 연락을 하게 되면서 만나 오다가 결국 그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수능이 끝난 지 한 달 후 수능 점수가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그가 나의 ‘삐삐’에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연도로는 2001년도임을 밝힘) 그 당시 학생 신분이라 엄격한 엄마께서 휴대폰은 대학 가면 사준다는 말에 고분고분 말을 들었던 나로서는 공중전화로 그와 통화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 옆에 있던 친구가 통화 내용을 듣고 있었다.
그는 다짜고짜 전화벨이 울린 동시에 물었다.
점수 얼마나 나왔냐? 몇 점이야? 아니, 내 담임도 아니면서 그것도 내 남자 친구라면서 인사도 없이 점수 타령을 하다니 말이 되나 싶었다.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있다가 거기다 친구까지 있어서 어물쩡 거렸다.
그랬더니 한다는 소리가 ‘존심은 쎄 가지고,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 얘기라고 말을 못 하냐! ‘ 여기서 다른 얘기는 하나도 안 들리고 맨 첫 글자인 ‘존’ 자에 꽂혀서 어감이 너무 안 좋게 들려서 기분 나빠하며 전화를 끊었다.
‘ 무슨 말을 해도 자존심도 아니고, 존심이 뭐냐! 욕 같이 들리게’ 그 뒤엔 아마도 다들 아는 뻔한 스토리로 우린 헤어졌다.
그 와의 사랑은 글쎄 첫사랑이라 달콤할 줄 알았지만 너무 선량했고, 오빠랍시고 가르치려는 선생처럼 대해서 싫었다. 그는 결국 가르치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에피소드 2.
삼자대면하자더니,,,
ㄱ.ㅈ.ㅎ 이 세 글자만 봐도 치가 떨리는 그 사람 아니 그놈. 늙었고 나랑 여섯 살이나 차이가 나는데 해 놓은 게 하나도 없는 백수. 근데 자존심은 있어서 친구에게 삼겹살은 뜯어먹을 수 있는 지략이 있던 놈.
그럼 놈을 사랑했다. 아니 사랑하고 말았다. 그래도 나에게 잘해 줬으니까.
내 친구가 내가 좋아하던 그 오빠를 사귀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다.
바야흐로 신규 간호사 시절이었다. 서울로 상경한 지 얼마 안 되어 친구네 동네로 자주 놀러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교회 친구들과 잘 어울렸다. 그러다 좋아하는 오빠가 생겼었다.
지금 보면 정말 아닌데, 그땐 왜 그랬나 싶지만 암튼, 그도 직업 없고 무직에 편의점 알바나 하는 30대 초반의 별 볼 일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마냥 좋았다. 그때 당시에 피부과를 다닌다는 이유로 자신의 피부 고민을 털어놓으며 내게 피부전문가 선생님이라며 화장품 추천도 해달라고 하고, 금세 친해졌었다.
그렇게 지내오다 어느 날 찬양단 연습을 끝내고 교회 근처에서 삼겹살을 먹었다. 맥주를 약간 마셨는데 취기가 올라와서 기분이 좋은 상태로 친구네 집으로 들어갔다. 전화번호를 교환하자는 그의 말에 너무 좋아서 술을 들이켰나 보다..
근데 친구네 집에서 기억이 잘 안 난다.
나중에 그 친구와 그 오빠가 사귀게 된 경위를 들어보니 그 날 술 취해서 내가 그 오빠한테 전화해서 ‘좋아한다고 고백했단다’ 그래서 내 친구가 미안하다고 밥을 사겠다며 그 오빠 전화번호를 저장했고 그 둘이 따로 만나서 밥 먹고 영화 보다가 사랑에 빠졌단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 건가? 갑자기 그들 사이에 낀 나는 억울하다 못해 죽고 싶었다.
언제부터 그런 건지 따질 겨를도 없이 둘이 벌써 그렇고 그런 사이었다. 그 사건을 그놈(나랑 사귀게 될 놈)은 알고 있었고, 나만 몰랐던 거다.
삼자대면을 하던 나를 안쓰럽게 보던 그, 혼자 객지에서 아등바등 사는 내 모습이 대견스럽다던 그는 점점 내게 곁을 주었고, 나는 친구를 이기고 싶어서 그를 선택했다.
마음에 차진 않았지만 너무 외로워서 기댈 곳이 필요해서 그가 내 곁에 있는 게 든든해서 그렇게 그에게 기대며 살아온 순간들이 있었다. 그가 다른 여자를 가슴에 품기 전까지 말이다.
능력도 없고 가진 것도 없던 그는 결혼을 하고 싶어 했다. 그때는 남자들도 서른 초반에 결혼했으니까 나는 아직 어렸기에 좀 더 있다가 하고 싶었고 그는 집안에서 나와 결혼 언제 하냐고 재촉한다고 했다.
나는 빨리 결혼하기 싫어서 집에 얘기도 안 했는데, 그가 계속 재촉하는 게 맘에 결렸다. 그러다 크리스마스날 같이 덕수궁 쪽을 걷고 있는데 그에게 낯선 이의 전화가 걸려온다.
그는 사색이 된 눈빛으로 나에게 전화를 받아도 되느냐고 물었다. 나는 알았다. 그에게 딴 여자가 생겼다는 걸 이미 직감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근데, 그는 내가 모른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에 만날 생각을 한 걸 보면 말이다.
그는 내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를 받았고, 혹시 다른 곳 갈 곳 없으면 그 여자에게 가도 되느냐고 내게 물었다.
그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 우린 이미 여러 번 헤어졌었고, 끊어내려던 그를 내가 붙잡았기에 그 익숙함에 그를 놓을 수가 없었다.
근데, 그땐 놓아지더라 그가 가는 모습을 보며 허탈하게 웃다가 딱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날은 크리스마스날이었는데 나는 홀로였다. 우린 그렇게 또다시 이별을 맞이했다.
이별을 겪으면 그 고통이 줄어들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경험이 쌓이면 그만큼 레벨업이 된다고 착각했다. 근데, 모든 경험이 다 레벨이 올라가는 건 아니더라 어떤 경험은 그저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것도 있더라 물론 그 경험으로 다른 경험을 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