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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리메 Nov 03. 2023

여행가면 안 싸우는 우리

이렇게 잘 맞을 수 있을까?


너를 위해서 우리는 헤어지는게 맞는거 같아.

내가 더 욕심 내어서는 안될거 같아.


그럼 우리 여행은? 내 생일에 같이 여행가기로 약속했잖아?

이번 생일에는 혼자 보내기 정말 싫단 말이야!!


우리 이별여행이라도 다녀올까? 그리고 나서 우리 ,,,, 헤어질까?

그렇게 너와의 추억으로 이 힘든 시기를 버텨볼께. 그게 우리에게 최선일거 같아.



그와 만난지 3개월이 지나가던 어느 시점에 그는 큰 결심을 하듯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럼에도 그를 만나고 싶었지만 그는 단호했다. 우린 사랑하지 않아서 헤어지는게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헤어져야 한다는 그에게 더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 이유에는 나를 사랑하는 그의 깊은 마음 또한 담겨있었기에 더 요구할 수가 없었다. 내가 힘들어지는 걸 볼 수 없었던 그라서 말이다.


그 얘기를 한 뒤 얼마 안되어 나의 생일겸 여행을 가는 당일날 우린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너와의 여행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이런 상황이 짜증도 나고 억울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행의 묘미가 뭔가 일상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나를 데려다 놓는 귀찮으면서도 짜릿한 경험아닌가? 우린 마지막이란 생각을 접고 그 날들을 즐기기 시작했다. 나중에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 그 추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계절의 여왕 5월을 맞이하며 마지막여행을 떠나다 !!
강릉여행에서 우리둘

하늘이 우리가 만나는 걸 축복하나? 어떻게 둘다 시간이 딱 맞춰져서 오전만 근무하고 오후 반차에 2일 동안 연차까지 붙여서 쉴 수 있는건지? 너무 신기한 상황에 둘다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렇게 출발하던 그 날 내가 그에게 물었다. 나에게 할말 있어?


" 잘 살아 정말 그게 나에겐 제일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야"

그의 말에 퉁명스러운 말투로 나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그냥 잘 떠나란 소리네? 그렇게 후련하니?

"아니 그래야 내가 너를 다시 만날때까지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거 같아 그렇게 하는게 맞기도 하고"

그는 단호한 표정에 단호한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그 모습이 그땐 상처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나를 위한 그의 마음이라는 사실이 슬펐다.


여행 내내 우린 10년 넘게 같이 살아온 사람보다 더 찰떡같이 서로가 원하는 부분들을 맞추며 여러가지 선택에 앞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원하는게 곧 그가 원하는 것이었고, 그가 원하는 것 역시 내가 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린 그렇게도 잘 맞았다. 음식을 고르는 것도 커피를 마실때도 어디를 갈때도 심지어 새벽에 잠들지 못하는 그 시간 조차 서로가 원하는 그 모든 것들이 다 맞았다.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여행지는 강릉이었다.


그와 처음 대화하다가 어떤 이야기를 듣게되었는데 잘 기억나진 않지만 그는 이 삶을 끝내려고 다짐한 후 강릉에 혼자 갔었다고 했다. 바다에 몸을 던져 이 생을 끝내겠다고 근데, 막상 그곳에 가보니 다른 생각이 들더란다. "정말 예쁜 여자와 이 곳에 다시 오고 싶다"는 아련한 생각 말이다. 그 때문에 다시 살고 싶더란다. 그렇게 그는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던 곳에서 다시 살기위해 마음을 돌려 서울로 올라온 그 뒤에 나를 만난것이다. 운명처럼 말이다. 그렇게 그와 함께 그곳에 가게 되었을때 그는 감회가 새롭다며 눈물이 난다고 했다. 자신이 원했던 소원이 이뤄져서 감사하다고


첫날밤 우린 바베큐를 먹자며 삼겹살과 목살을 사고 각종 야채와 다음 날 아침에 먹을 김치찌개 재료까지 장을 봐왔다. 그때 내가 느낀 느낌은 신혼부부가 놀러와서 마트에 같이 장 보러오는 것 같았다. 꼭 결혼한지 얼마 안된 새댁인것 마냥 이것저것 꼼꼼하게 살피고 따지고 그러는 내 모습이 그 사람도 신기한 눈치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모습 이대로 우리가 계속 만났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빌었던 것 같다.


홍천의 명소는 고기 아니가?

이별여행은 우리를 떨어뜨리지 못했다. 더 찰거머리처럼 붙여놓았고 그는 내게 약속했다. 최대한 빨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는 마냥 기다릴 수 없기에 약속을 의미하는 징표로 반지를 받았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했다.


그렇게 그와 몰래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 자주 보고 싶어도 참아야 하는 연속이 계속되다 보니 서로에게 섭섭함이 생기고 어렵게 만나던 우리는 또 다시 이별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지친 나머지 그에게 이렇게는 더는 힘들다고 이별을 고했다. 그렇게 헤어짐을 얘기하던 우리가 또 다시 여름 휴가를 얘기한다. 웃기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린 절대 헤어질 수가 없는가보다. 그렇게 여름 휴가를 그와 함께 떠났다.


우리 이번 여행동안 다 고기만 먹었다!!

엉? 정말?

봐바 첫날 오리먹었지, 그날 저녁에 소 먹었지, 그 다음날 돼지먹었지 마지막 올때 닭갈비 먹었지 ㅎㅎ

몸보신 제대로 하네 고마워 ~

그렇게 먹기도 참 어려운데 골고루 잘 먹었네 다행이다.


그는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건 뭐라고 생각해?"라고 물었을때 이렇게 말해줬었다.


나는 쁘니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당연히 생각도 많이 하고 자주 스킨쉽도 하는 것도 사랑이겠지만 함께 할 수 없을 때도 맛있는거 먹고 싶을 때 함께 가야지 이러는 것도 사랑이고, 좋은 곳 생각나면 같이 가보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며, 나중에 같이 가보는 것도 사랑이고 그런 여러가지들을 함께 하는게 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해. 우리 그렇게 사랑하자!!


아직까지 그와 홍천에서 함께한 추억은 내 가슴속에 여전히 간직되어있다. 아쉽게도 그때의 사진들은 소장할 수 없어 내 기억속에 저장되어있다. 그곳에서 제일 먼저 먹어본 음식은 속이 새빨갛고 딱딱한 복숭아였다. 홍천 특산물이라 불리던 그 복숭아의 맛은 새빨간 물이 입술에 닿을 때 달콤하고 새콤한 맛을 느끼는 듯 찡그려지는 눈가가 그려지는 맛이다.

그 다음에 맛 본 것은 그의 달달한 입술이었지만 ㅋㅋ


그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어서 김치와 참치 그리고 즉석밥을 골라담고 차를 타는데 그가 말한다. " 우리 그냥 고기 먹을까? 피곤하고 지쳤는데 음식까지 하려면 너무 힘들거 같아. 먹고 가자!!" 그렇게 그와 한우를 굽던 그날이 생각난다.


찬란했던 그 가을 스산한 콧끝을 기억하며

11월 드뎌 그가 나에게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며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상태로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나를 위해 여행 가자고 했다. 이번엔 자신이 가고 싶어도 눈치 보여 못가던 그곳으로 가자고 했다. 그곳은 바로 춘천이었다. 낯설면서 익숙한 그곳에 그와 함께하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가 버텨온 그 시간들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춘천으로 가기전 그가 꼭 들리고 싶다던 미사리경정장 공원에서 추억을 만들다가 두물머리에서 그와 정답게 나누던 대화들 그리고 장난들 춘천 닭갈비 맛집을 안다며 으스대던 그의 어깨 그리고 밤새 이어진 입맞춤들 모두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드물머리 카페에서 차 한잔을 나누며
1주년 기념일 처음으로 강화도를 가다

1년동안 자신때문에 맘고생 많이 한 나를 위해 그는 선물로 내 마음이 보상 받기를 바랬다. 그렇게 1주년 선물을 한아름 받고 우린 자축을 하기위해 여러 여행지를 탐색하던 중 가까운 곳 중에서 그나마 리뷰가 괜찮은 곳들을 골라 예약했고 그렇게 우리의 1주년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가 나를 사랑하면서 한번도 나에게 짜증이나 싫은 소리를 했던 적이 별로 없었는데 딱 한번 큰소리를 쳤던 적이 있었다

 그건 바로 엄청 추운 날 내가 옷을 너무 춥게 입고 왔다고 언성을 높이며 아빠처럼 잔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내가 분명히 엄청 추우니까 따듯하게 입으라고 말했잖아! 왜 내 말을 안 들어? 내 얘기 듣긴 한거야? 이렇게 입고 오면 어떻게 감기 들면 어쩌라고!!

이렇게 나를 딸처럼 생각하더니 그에게 단호한 말투와 차가운 눈빛이 너무 서러웠다. 그때 나는 여기서 내리겠다고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하면 그 사람을 다시 볼 수 없을거란 생각에 참고 눈물만 흘렸다. 그렇게 그 사건이 마무리 된 후 그는 내게 소리치고 다그친게 미안했는지 그 전보다 더 따뜻하게 나를 대하고 다른 것들을 살뜰히 챙겨주었다.


우리의 1주년이 10주년이 되기를 그리고 나중에 시간이 흘러 50주년이 되기를 소망했다. 그렇게 너와 함께하는 시간들이 많아질거라 믿었다. 그 소망은 결국 이뤄질 수 있을까? 우리가 갑작스레 이별 한 후 너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던 나는 친구라도 좋다며 너의 곁에 잠시 머물렀다. 그 때 우리가 갔던 마지막 여행은 내 가슴에 콕 박혀서 사라질 줄 몰랐다.


마지막 영월여행에서

너와 다시 여행갈 수 있을까? 그때처럼 우리 여행갈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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