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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리메 Nov 08. 2023

너의 비밀을 듣던 날 눈물이 났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라서

나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계속 아니라고 우린 친구라고 우기는 그에게 나는 계속 물었다.


" 우리 무슨 사이야?"

"음... 당연히, 친,,,,구,,, 사이지 ㅎㅎ "

" 아? 그래? 친구구나 우리가...."


정말 이해가 안 되었다. 이 정도로 연락하고 매일 밤마다 전화로 서로에게 끌렸던 모든 감정들이 친구라고?

이렇게 편하고 그냥 예전부터 만났던 사람 같은데, 이런 사람이 처음인데 너는 그냥 나를 친구로만 생각하는구나 그런 생각으로 끌리는 감정을 멈추는 게 맞나 싶었다.


근데 그의 비밀을 알게 된 그 순간 그가 렇게 밖에 말할 수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를 더 이상 남사친이 아닌 이성적으로 호감을 갖고 있던 내게 마음을 멈추라고 더 이상 가지 말라고 붙드는 신호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는 이미 마음이 깊어져서 늦었다는 걸 몰랐었다.





그는 내게 계속 만나서 할 말이 있다며 다음 만남을 재촉했다. 웃긴 건 딱 한번 만났고, 그때의 기억이 너무 생생하고 좋았던 느낌이라 거기에 전화통화로 이어진 우리만의 데이트들은 서로를 결속시키기에 충분했다. 어느 날 그가 갑자기 잠수를 탔다. 그것도 4일씩이나? "뭐지? 내 목소리 좋다고 매일 듣고 싶어서 밤마다 기다리던 놈이 참 웃기네..." 이러면서 은근히 전화를 기다리는 나!! 어느새 그와의 연락이 습관이 되었던 것이다. 그 연락을 기다리는 내가 익숙해졌고 싫지 않았다. 당연히 연락 올 거란 기대가 며칠째 오지 않는 전화에 무너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잠수 타기 전에 그는 내게 주말에 시간 좀 내달라고 했고, 나는 그 전화를 좀 퉁명스럽게 받았다. 귀찮은 전화처럼 대충 말하고, 얼른 끊었으면 싶었다. 그때만 해도 전화 자주 하던 남사친에 불과했고, 그냥 잘 통하고 전화 자주 하고 싶은 친구 그 정도밖에 아니었다. 만나자던 그 주말에 그는 몸이 안 좋다며 눈이 많이 와서 다음에 보자며 약속을 취소했고 그 이후에 갑자기 잠수를 탄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보자고 한 것도 아닌데, 자기 맘대로 보자고 했다가 또 못 온다고 하고 뭐 하자는 거지? 그렇게 판단하고 말았는데, 점점 그가 걱정되었다. 아프다고 했는데 정말 많이 아픈 건가? 내가 그때 너무 퉁명스럽게 받았나? 정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서 걱정하느라 그의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잠수 탄지 3일째 되던 날 내가 먼저 전화를 해볼까 싶었는데, 그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나한테 관심도 없는 놈한테 뭐 하러 아까운 시간을 낭비해' 라며 그냥 내 할 일이나 하자 생각했다.


그렇게 4일째 되던 어느 날 그는 내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너무 반가운 마음에 벨이 울리자마자 전화를 받았고, 그렇게 다시 그와 재밌는 전화 데이트를 이어갔다. 그래서 그럴까? 아니면 내가 너무 걱정을 해서 그럴까? 오히려 이번엔 그 보다 내가 더 전화를 자주 했고, 뭔가 심심하고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지면 자존심 버리고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지친 날엔 위로를 듣고 싶었고, 가끔 뭔가가 기는 날엔 야한 농담도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그와 친해지고 있던 어느 날 주말인데 그가 보자는 말도 없어서 '하냐'라고 물었고 그는 '잠깐 자고 있었다'며 나와 통화를 이어갔다. 뭔지 모르겠지만 그는 내게 할 말이 있다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러더니 내게 너무도 무겁고 너무도 어려운 상황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그에게 그의 상황을 전해 듣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때 당시에는 정말 이유를 몰랐다.

눈물을 흐르면서 웃었으니까...



근데, 지금은 알 것 같다.



우리는 슬픈 사랑을 할 거라는 거

그 사랑이 정말 아플 거라는 거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거라는 거

나는 숨겨져야만 한다는 거

우리는 사회에서 불륜으로 불린다는 거





그의 상황은 이렇다. 결혼한 지 10년 넘었고, 별거 한지 2년 가까이 되어가는 중이며, 딸아이 하나 있다는 돌싱도 아닌, 유부남인데 별거 남이란다. 하, 참나,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 무슨 드라마 찍냐고, 내가 여주인공인데, 불륜녀가 되는 상황인 거잖아? 내가 제일 싫어하는 임자 있는 사람 만나는 건데, 이걸 내가 어떻게 감당하지? 자신 없는데... 근데, 이 사람과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눈물이 나지? 그와 손을 잡지도 않았는데 정말 딱 한번 얼굴도 제대로 못 봤는데 왜  슬프지? 그리고 이런 상황인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그를 만날 수 없다는 온갖 핑계들과 내가 그동안 지켜왔던 개념들 그리고 그와 함께 그려나가려 했던 모든 그림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걸 느꼈다. 와르르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집에서 데이트 하는 모습

이렇게 잘 맞는 사람과 이쁜 연애를 하는 꿈을 꾸는 게 내게는 사치구나라는 생각에 더 하염없이 눈물만 나왔다. 더 이상 그와 통화하기 어려운 나는 저녁 먹는다는 핑계로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그와 통화를 끝내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뭐지? 이 상황은 대체 가 잘못된 거지? 혼동스러웠다. 그와 이쁘게 연애하던 꿈들이 물거품이라는 사실과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그를 만나야 한다는 점이 나를 더 미치게 만들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그에게 수많은 카톡들이 왔음을 알림이 알려주고 있었다. 그 핸드폰을 바라보며 또다시 눈물이 나왔다. 어쩌지 못함을 그리고 그를 놓아버릴 수 없음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 이런 상태인 그를 놓아버리는 순간 나는 더 힘들어질 것임을 알기에 어쩔 수 없음을 알아차렸다. 이미 그에게 빠져버린 나이기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나와 어떻게 할지 중요하지 않았다. 내겐 그냥 그가 필요했다. 그땐 그랬다.



그와 만나기 딱 1년 전 나는 큰 수술을 다. 그것도 여성이라면 견디기 힘든 수술이었다. 물론, 암은 아니라서 다행이었지만 내겐 반을 절제해야 하는 수술이라 아직 결혼도 못한 내가 견디기엔 너무나 큰 충격이 컸다. 그때 남편이라도 아니 남자 친구이라도 곁에 있다면 덜 할 텐데... 하는 생각에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 나 아무라도 좋으니까 그냥 만날래!! 그래서 이렇게 수술로 없어지는 것보단 그렇게 사랑받을래!!" 엄마, 이번엔 나 말리지 말아 줘 제발!!"


우리 엄마에겐 여자가 조신해야지 라는 사고방식이 강해서 남자를 만나도 함부로 몸을 놀리지 말라는 신신당부가 있었기에 내가 이렇게 얘기 한건 엄마에게 놀라움 그 자체였다. 내 말을 주치의 선생님께서 더 강조해 주셨다.

"어머님 따님은 결혼하셔야 다시 이런 게 안 생겨요. 그러니 얼른 결혼시키세요." 그 말에 엄마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만약 내가 그런 수술을 안 받았다면, 내 나이가 아직 20 대거나 30대 초반이라면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을 거 같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친놈 아니냐며 저리 꺼져라 했을 것이다. 근데, 나는 상황이 달랐고, 남자의 사랑이 필요했다. 아니, 절실했다. 그를 만나기 전 8년간 연애를 안 했던 내가 얼마나 절실했겠는가? 그와 빨리 더 자고 싶었고, 그에게 안겨있고 싶었다. 그렇게 그를 내게서 멀어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어떤 조건이라도 내게는 해당되지 않았고, 나는 그를 그 상태 그대로 품기로 결심했다.


"우리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믿어볼래?" 라며 내가 먼저 그에게 제안을 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정말 혼자이긴 죽어도 싫었다. 매번 집에서 티브이와 함께 엄마와 보내는 크리스마스는 정말 한심했다. 물론 편하긴 하다. 아무 곳에 가지 않아서 붐비지도 않았고, 시간도 돈도 덜 들긴 하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사랑하는 시간은 오로지 남자에게 안겨있을 때 가능한 거라. 그가 너무나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후회할지도 모르는 결정을 내린다.

따뜻한 온기를 서로 느끼며

"너와 함께하고 싶어! 그래서 좋으면 계속 고! 하는 거고 만약 별로라면 빠빠이 하는 거야 어때?" 내 말에 그는 의아해하면서도 자신도 나를 포기하기 어렵다며 그래서 이렇게라도 고백하는 거라며 그날 함께 하자고 말했다.


그에게 왜 별거 중인지 물었을 때 그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얘기해 주었다. 연애기간 동안엔 그 사람에게 잘해주더니 결혼하자마자 변하더라고, 그리고 자신에게 너무나 많은 질타와 모든 잘못은 그의 탓이라고 하는 그녀에게 정나미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그녀가 아이를 양육하는 방식이 그 아이에게 앞으로 살아가는데 정말 도움이 안 되는 것을 느꼈을 때 아이가 너무 안쓰럽고 가여웠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자신의 전부이지만 그러다 자신마저 잃을까 봐 두려웠다고 했다. 그래서 별거하다가 차라리 이 삶을 정리할까도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 나를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그의 결혼생활을 듣는데,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남편과 맞지 않는데 우리 때문에 억지로 결혼생활을 유지해 오면서 정작 자신을 잃은 우리 엄마!! 지금 그 남편과 별거 중이고, 생사도 모르다. 그 사람의 결혼생활이 남의 얘기 같지 않고 꼭 내가 일찍 결혼했다면 벌어질 수도 있는 일 같았다.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울 텐데 이해가 되었고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 너무나 보고 싶은 딸아이를 못 보는 마음과 잘 살아보려고 노력했으나 상대가 따라주지 않을 때 오는 비참함과 암담함 등등 그대로 전해졌다.

 

내가 마음이 넓어서 그를 이해한 것이 아니다. 신기하게도 그는 그런 것들이 다 이해가 되고 그와 이야기하는 것이 마냥 좋고 그와 어디든 그와 무엇을 하든 다 좋았다. 그래서 지금이 너무 슬프지만 그때는 정말 행복했다.


아이 러브 유


사랑이란 어떻게 정의할 수 없지만 내가 느끼기엔 이런 것 같다. 그 사람의 단점까지도 다 보듬어 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사랑할 수 있거나 아니면 그냥 좋아만 하거나

그렇지 않을까? 내가 겪은 사랑은 어쩌면 다른 사람들의 시각에선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을 손가락질했던 사람이기에 하지만 그 안에서 정말 당사자가 되어보니 그럴만한 이유들과 그럴만한 상황들 그 속에는 그 사람들만의 공유된 무언가가 있기에 함부로 그들을 판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 것이 정당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순수하다는 점 그 부분은 인정받고 싶다. 





사랑은 기침과도 같아서 어쩔 수 없이 티가 나게 되어있기에 가린다고 가릴 수 없기에 나도 모르게 감염되는 것일 뿐 그 누구도 알 수 없고 그것을 낫게 하는 약도 없다.


그와 겁 없이 뛰어든 이 사랑에 후회가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럼에도 다시 그 상황이 온다면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그를 선택할 거다. 그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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