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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리메 Nov 10. 2023

우린 운명이라서

붉은 실로 연결된 사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참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보고 아껴보는 영화가 있다.


너의 이름은

바로 "너의 이름은"이다. 여기서 둘의 사이를 붉은 실로 연결한 장면이 인상에 남는다. 그렇게 인연은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중에라도 다시 그 실로 인해 만나지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 말이다.


우린 처음부터 신기한 만남이었다. 내 생애를 통 틀어서 이런 느낌도 처음이었고, 꼭 우리가 전생에 만났다가 다시 환생해서 만난 것 같은 기시감? 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를 처음 본 날 그 사람의 외모가 내 맘에 드는 것도 아니었고 전혀 내 스타일과는 딴 판인 그에게 매력을 느끼고 호감이 가며 그와 있는 그 시간들이 천천히 흘렀다. 마치 나와 그 사람만 있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인데 오랫동안 알던 사이같이 편하고 불편함도 없이 너무나 이상하리만큼 좋았다. 그때가 너무나 그리울 만큼...


다른 사람을 만나봤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던 사람은 그 사람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 잊히지 않는 건가 싶다.




사랑에 기대가 커서 점점 아픔이 많아졌고, 더 이상 사랑 같은 건 믿기 싫다며 다른 사람들이 다가와도 문을 닫은 채 보지도 듣지도 않고 살아갔다. 그러다 큰 수술을 2번이나 하고 삶에 대한 회의가 들면서 이대로 살다가 죽는 것보다 남은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뜻대로 펼치고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그때 그가 내게 다가왔다. 마치 운명에 이끌리듯 어느 순간 나에게 다가왔다.


그와 내가 친해지게 된 건 서슴없이 거침없이 거짓 없이 너무나 진솔했던 얘기들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의 아픔들과 원하던 사랑들을 이야기하던  시간들이 모여 우리의 사랑이 되었다. 다른 이유보다 다른 조건보다 내게는 그 시간들이 가장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여주인공 미도와 남 주인공 익준이의 러브 테마곡 중에 하나인데 그들의 사랑을 보며 응원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익준이 역시 아내의 외도에 의해 아이를 혼자 키우는 돌싱남으로 나온다. 그도 대학생 때 첫사랑 미도에게 마음이 있지만 친구의 고백에 마음을 접어야만 했던 그래서 너무나 안타까웠던 그 둘 그렇게 서로에게 친구처럼 지내오다가 익숙해진 그런 날들이 계속되다가 어느 날 익준의 사고로 너무나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은 미도의 고백으로 둘은 연인이 된다. 생사를 오고 가는 현장에서도 사랑은 꽃피우기에 참 낭만적인 드라마였다.


나 역시 익준이의 상황이 그의 상황과 비슷했고, 나는 미도처럼 그를 오랫동안 봐온 친구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지내온 사람처럼 우린 너무 편했다. 드라마에 나온 주인공들과 비슷한 상황에 약간 위로를 받기도 했다.


미도는 만나는 남자들마다 쓰레기들이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만나는 남자들보다 능력도 있고 인성도 좋은 거기에 인기도 많은데 매번 그렇게 잘 이뤄지지 않았던 모습이 나와 비슷해서 더 몰입되기도 했다.


익준이는 워낙 밝고 오지랖이 넓어서 나의 그 사람과는 정 반대의 성향이지만 나와 있을 때 엄청 웃기는 센스를 보면 숨겨진 본능이 있는 게 분명하다. 아이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모습도 닮았고 특히 친구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사람이라 친구모임에서 모임장을 맡아서 리더역할을 하는 것도 많이 비슷했다.


그래서 이 드라마처럼 나의 사랑도 잘 이루어질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었다.






그와 처음 눈이 마주치던 그 순간 나는 알았다. 그와 사랑에 빠질 거라는 걸 말이다. 그의 외모와 옷차림 등등 모든 조건이 나와 맞지 않았더라도 그런 건 상관없었다. 그의 눈은 작으면서도 호수처럼 깊었고 반짝거렸다. 아마 네온사인이 많던 강남 한 복판이라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까만 뿔테를 낀 투박한 안경 사이로 보인 그의 두 눈은 너무 맑아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나도 모르게 그의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기분 좋은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그를 사랑하게 될 줄 알았다.



음식 취향이 닮은 우리 둘

어떤 음식을 먹어도 둘 다 싫어한 적이 없다. 그도 별로 가리는 것이 없었지만 나 역시 그랬다. 그는 너무 수더분하게도 모든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심지어 맛이 없어도 불평불만 없이 감사해하며 먹었다. 나는 그의 그런 점이 더 좋았고 그와 함께 밥을 먹는 그 시간들이 너무 즐거웠다. 그래서 매일 그와 집에서 밥을 만들어서  먹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가끔 기회가 생겨서 만들어준 음식을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그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그도 나를 위해 요리를 해주겠다며 알리오올리오를 해주던 그때가 생각난다. 마늘을 많이 넣어야 한다며 올리브오일에 마늘을 볶으며 삶을 면을 잘 삶아졌는지 입에 넣어보며 긴장하던 그의 모습...ㅋㅋ 너무 잘하려다 그만 면수에 넣은 소금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엄청 짰던 기억이 난다.



판타지가 같을 수가 있을까?

우리가 신기한 건 서로의 섹스 판타지가 비슷하다는 거다. 어찌 그리도 내가 원하는 것과 그가 원하는 것이 같은지 할 때마다 놀라웠다. 그냥 내가 한번 얘기한 것들도 세심하게 기억하고 꼭 그렇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에 더없이 사랑을 느꼈다. 사랑을 나눈 후 지쳐있는 그와 나는 잠시 누워있다가 서로에게 밀착해서 안겨있는다. 그러다 둘 다 눈을 맞춘 후 동시에 씻으러 가자고 하면서 욕실로 들어가면 그는 나를 나는 그를 씻기느라 정신없다. 서로의 몸을 만져주며 비누칠을 하고 꼼꼼하게 자랑이 와 소중이를 씻어준다. 물기를 잘 닦아주고 내 긴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려주는 그의 손길에 사랑받음을 느낀다. 그러다 다시 눈이 맞아서 입을 맞추고 서로의 체온을 느끼다 보면 어느새 또 욕실이다. 그런 과정들이 반복되어 지쳐도 우린 계속 붙어있다. 그렇게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붉은 실로 연결된 우리

행복하게 만날 때도 많았지만 그의 상황들로 우리의 불안한 만남은 매달 매달 외줄 타기 하듯 위태로웠다. 그때마다 나를 집어삼킨 불안과 두려움이 점점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그 불안을 떠넘기며 그를 점점 더 힘들게 만들었다.


만난 지 한 달째 되던 날에 그가 법정 관련일로 나에게 소홀하게 대할 때 그의 차가워진 말투와 그 온도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우린 어쩌면 계속 이런 일들로 불편한 상황들이 생길 테고 그럴 때마다 나는 그에게 섭섭하다고 속상하다고 얘기하다가 서로 그 말들에 지쳐가겠구나 그렇게 그려졌다.


 아니나 다를까 이혼 관련해서 점점 예민해지더니 점점 변해갔다. 신경질적이 되거나 예민해져서 조금만 마음이 상하는 말만 들으면 바로 말투가 변하면서 나도 그전 와이프와 똑같다고 했다.


그가 변해가는 모습이 너무 싫었고 정말 안쓰러웠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져갈수록 나는 그의 아픔을 계속 내가 끌어안았다. 그에게 더는 아픔이 없기를 또 상처가 없기를 그렇게 바라며 변해가는 그를 내 안에 품었다.


결국 그는 이혼을 했고, 나와 그는 행복한 미래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우리 부모님의 협박적인 반대가 아니었다면 그랬을까?




그와 나는 헤어지려고 몇 번이나 다짐하고 여행도 이별여행이라고 다녀오고 이혼하기 전에 서로에게 위험할 수 있다며 나중에 다시 만나자고 그렇게도 이별하려고 했다.


 그때마다 우린 헤어질 수 없다고 서로가 없는 세상은 있을 수 없다며 그 이별들을 다시 이어왔다.

그 이어진 실들로 우린 헤어질 수가 없다. 근데, 내가 어쩔 수 없는 힘이 우리를 멀어지게 만들었고 우린 감당할 수 없는 이별을 맞이하며 헤어져야만 했다.




우리가 정말 인연이라면 다시 서로를 향해 달려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영화 '너의 이름은'에서처럼 붉은 실로 연결되어 있다면 아마도 우리는 다시 만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나의 단 하나의 연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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