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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팔이 누나 Apr 28. 2020

개엄마도 육아휴직이 필요하다

하이힐 신고 원피스 입고 산책할 순 없잖아 

육아휴직, 사람이 사람을 낳아서 키우고 기를 때 통칭되는 말. 하지만 강아지를 키우는 개엄마에게도 육아휴직이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강아지가 알아서 똥 싸고 오줌 싸고 밥 먹고 하는 줄 알고 있는데,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 중 '스스로 알아서 잘' 할 수 있는 생명체는 사람밖에 없다. 평생을 최대 3살짜리 지능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개엄마의 고된 육아 삶에도 사람 엄마와 같이 때로는 쉼표가 필요하다.


유진 씨도 꾸밀 줄 아네요?

글을 쓴 계기는 바로 이 한마디였다. 동네 부동산에 집을 내놓으려고 인사를 하러 갔는데 워낙 자주 마주치는 분이셔서 나의 출근룩을 기억하고 계셨나 보다. 출근 전후로 산책을 하다 보니 나의 출근룩에는 힐이라는 것이 없다, 아니 존재할 수가 없다. 최대로 사치를 부려봤자 로퍼랄까? 매일 아침 쌩얼에 로퍼 내지는 스니커즈를 질질 끌고 번갯불 콩 구워 먹듯 달려 나가는 내 모습이 이분께는 인상 깊었던 것 같다. 


우리 집에 들어올 세입자분과 함께 방문하시며 신발장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무려 4칸을 차지하고 있는 하이힐을 보고선 꽤나 놀라신 듯하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나도 한때는 꾸몄었던 것 같다. 다리가 짧은 신체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8cm 이상의 힐들만 골라서 신던 발목 삐끗하기가 일상이던 아가씨였다. 지금의 모습과는 쌩판 다른! 지금은? 공짜로 줘도 못 신겠다는 생각뿐.


밤샜어? 얼굴 상태가 왜 이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덕팔이가 어린 시절에는 잠투정에, 청소년기에는 낮에 뭘 그리도 주워 먹고 밤에 끅끅 토하는지 걱정에, 그리고 성견이 돼서는 아침에 산책을 하러 가자고 깨우는 바람에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개피곤하다 개피곤해! 


잠 순이인 나의 삶을 잠 못 자는 엄마로 바꿔버린 덕팔이와의 동거생활은 성격을 예민하게 만들어줬다. 이전과는 다르게 유기견 문제게 더욱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게 되었고, 환경보호에 관심을 귀 기울이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괴롭힘 (직장, 학교, 강자와 약자, 사이버 불링 등)'이라는 주제에 아주 예민해졌다는 것이 나의 가장 큰 변화이다. 세상의 흐름에 아무 관심 없이 살던 무던하던 내 성격이 그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시각을 갖게 해 준 덕팔이에게 감사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예민해진 성격과 동시에 생성된 눈밑의 짙은 그림자는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는 듯!


오늘 저녁에 뭐해? 뭐 못해!!! 

나와의 약속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내 사정을 사람들한테 말하면 다들 '피식'하고 웃는다. 나름 진지하게 고민해서 얘기한건데...아침저녁으로 개 산책이 필수인 내 인생에 '오늘 저녁 약속' 이란 사치 그 자체. 특히 소개팅이나 데이트를 함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덕팔이를 키우기 전 더 신나게 놀걸, 결혼이라는 숙제를 해치울걸! 하는 생각이 가득한 요즘이다. 


최근에 이직을 한 회사는 면접 때 들었던 9-6라는 약속을 벗어난 채 슬금슬금 야금야금 야근을 제안하기 시작하는데 덕팔이의 산책을 챙기기 위해 워라벨 하나만을 바라보고 입사한 나에게 있어서는 터무니없는 소리. 게다가 우리 집은 1인 1견 가구기 때문에 내가 집에 가지 않으면 집안이 무너진다는 걸 회사 사람들은 알랑가 모르겠다. 


어쨌든 나의 이런 삶에도 요즘은 '쉼'이라는 점을 찍어주고 싶은 날씨다. 공기가 너무나도 따듯하고 포근해서 이쁘게 꾸미고 놀러 가고 싶지만 좋은 데를 가면 또 덕팔이가 생각날 테고, 그러면 또 맘 한구석이 저릿해질 테고.... 응....? 


이젠 말좀 잘 듣는게 어때? 싫어? 싫다고.....? 응 그래 알았어 


아무래도 육아휴직은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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