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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팔이 누나 Mar 29. 2020

어린 강아지를 키우고 싶으신가요

웰컴 투 더 헬 

반려견 인구 천만 시대 + 우리나라 인구 멸종 시대. 평균 나이 40대로 늙어버린 대한민국의 미래는 아마 1인 가구 + 강아지/고양이의 조합이 지금보다 더 크게 늘어나지 않을까 예측해본다. 덕팔이 누나는 이미 그런 가구 중 하나. 덕팔이와 함께 하는 바지런한 나의 일상을 눈팅만 하던 같이 늙어가는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강아지 입양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데, 모두가 다 같은 의견일 수는 없으니 누군가는 펫 샵을 얘기하고, 누군가는 입양을 얘기한다. 펫 샵을 반대하지만 분란을 일으키기는 싫어 입양 쪽의 이야기를 우회적으로 답하고는 하는데 열에 아홉은 입양을 통해서도 어린 강아지를 분양받을 수 있냐는 질문으로 되돌아오고는 한다. 그렇다, 강아지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들 대다수는 첫 강아지로 어린 강아지를 선호한다. 


하지만 만일 누군가가 다음 강아지는 어떤 아이를 입양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의 답은 어떤 아이라도 상관없으니 무조건 1년 이상된 성견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이유인즉슨 어린 강아지는 개가 아니라 개인 척하는 악마기 때문이다. 처음 덕팔이를 만난 건 덕팔이 나이 생후 4-5 개월 무렵. 너무나도 오랜만에 어린 강아지를 본 내 눈에 덕팔이의 모습은 천사 그 자체였다. 하지만 유기견 보호소를 거쳐 집에 도착했을 때 ‘천사’라는 콩깍지가 바로 벗겨지는 다소 신선한 경험을 했다. 내가 기억하는 덕팔이의 어린 시절 모습은 완전체에 노답 그 자체. 가끔 대놓고 덕팔이 얼굴에 심한 말을 하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난폭하고 무자비했던 덕팔이의 민낯을 대놓고 까 보겠다. 

엄마의 뜨게질을 실파게티처럼 먹던 개친놈시절 덕팔이

화가 많은 B형, 개친놈(Crazy Dog)그 자식  

태어나서 세상 경험을 얼마 안 해서인지 아니면 타고난 노답인 건지 4개월 개린이 시절 덕팔이는 겁이란 개념이 아예 탑재되지 않은 아이 었다. 강아지들이 기본적으로 하는 우다다나, 대소변 못 가리는 것, 보이는 거 닥치는 대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기 등은 이해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정말 용납이 되지 않는 게 하나 있었으니 바로 엄마 아빠네 강아지한테 대드는 것과 사람 뒤꿈치 따라다니며 깨물기(이건 당해본 자만이 그 고통을 이해한다). 유튜브에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해서 혼쭐도 내보고 목소리를 키워 화도 내봤지만 덕팔이는 겁을 먹기는커녕 내가 낸 화를 모두 축적했다 역으로 더 큰소리를 내며 짖기 일수. 덕팔이가 성질내는 대상은 나뿐만이 아니라 엄마, 아빠 모두였다. 심지어 화를 내는 것으로 분이 풀리지 않으면 거실과 방울 쏘다니며 우다다다를 시전 하기까지 했다. 고작 4킬로 주제에 뭐 그리 화가 많은 건지 우리 가족은 그 뒤로부터 덕팔이의 눈치를 보며 살기 시작했다. 밥 먹을 때와 잘 때 모두 건들지 않기는 기본, 훈련 시에는 회장님을 모시듯이 정중하게 하다 순간순간 현타가 오기도 했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을의 생활을 하는 인생이란!!! 개친놈의 기운은 다행히 1살이 지나며 조금씩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종종 덕팔이는 이유 없는 화를 내고는 한다. 화가 많은 거 보니 인성검사로는 웬만한 공채는 광탈했을 듯하다. 

개티스트의 작품을 치우려고 하니 화를 내시는 모습

어린 강아지는 개티스트(Dog + Artist)다  

쓰레기통 뒤지기, 책 찢기, 배변패드 갈기갈기 찢기, 가죽구두 개껌 만들기, 아빠 셔츠 찢어서 강제 노출시키기, 가구 다리 못쓰게 만들기, 베개 찢어서 깃털 파티하기, 새로 산 두루마리 휴지 모두 찢어서 휴지 산 만들기 등등. 어린 강아지의 본능적인 어지르기 스킬은 전위 아티스트의 예술세계만큼이나 심오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광경을 치우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작품명을 붙이기에 재미를 붙였다. 사랑스러운 나의 개티스트는 매일 퇴근 후 나에게 새로운 작품을 치우게 해주는 영광을 선사해주셨다.  

항상 누나 머리 위에서 지켜보고 있응께 잘하셔잉 

어린 강아지는 개상전(Dog on Top)이다

이 자식들은 당신의 머리 위에서 잠들고 당신의 신발에 똥을 싼다. 그뿐만이 아니라 얼굴을 할퀴고서는 뭐가 좋다고 배시시 웃으면서 놀자고 한다.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 없으니 놀아주면서 살짝살짝 놀리는 걸로 복수하게 된다. 결국 나중에 보면 강아지랑 놀아주느라고 시간을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만일 하루 종일 당신을 정신없게 하는 이 어린 생명체가 갑자기 조용하고 집에 평화가 온 기분이 든다면? 응급상황이다. 집구석 구석을 뒤져 보다 보면 방구석에서 조용히 찢긴 벽지를 씹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나, 침대 위에 대동여지도를 곱게 그려놓은 아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나이 1살 ~ 2살이 지나면 거짓말과 같이 없던 일이 된다. 아니... 없었던 일이 된다. 덕팔이도 그랬다. 어릴 때의 만행은 미모로 한번, 다 커서 조금씩 말 듣는 모습으로 두 번 용서가 된다. 그렇지만 굳이 이런 과정을 또다시 경험하고 싶지는 않다. 만일 어린 강아지의 핑크색 발바닥과, 댕청한 눈빛과, 애기미 넘치는 귀여운 똥배와, 아장아장 발걸음을 보고 싶다면 공원에 나가 다른 이들이 키우는 어린 강아지를 보는 모습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남의 강아지를 보는 것은 행복 그 자체니까! ㅎㅎㅎ  


키울테면 키워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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