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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팔이 누나 Dec 30. 2019

차라리 말을 해줘

너는 멍멍 나는 막막

강아지를 키우다 보면 얘가 사람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코를 곤다거나, 잠꼬대를 한다거나 배를 더 긁으라고 표현하는 행동에서 아니면 퇴근 후 집에 오는 나를 꼬리가 떨어지도록 흔들며 맞이하는 모습에서 나는 덕팔이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하고는 한다. 아 가끔 뿡하고 끼는 방귀 냄새는 덕팔이를 더욱 사람 같은 모습으로 느껴지는데 한몫을 한다. 


어서 와, 퇴근 마중은 처음이지?

특히 덕팔이는 입이 크고 주걱턱이라서 입을 벌리면 묘하게 댕청하고 멍한 표정이 지어지는데 그럴 때마다 멍 때리는 사람의 표정이 오버랩돼서 풋 하고 웃음이 터진다. 주걱턱에 부정교합 게다가 덧니라는 옵션까지 강아지가 가질 수 있는 최악의 치열은 고루 갖춘 덕팔이의 모습은 의외로 꽤나 귀여운 조화를 보인다. 

 나는 때론 덕팔이가 본인의 의사를 말해주었으면 하는 때가 있다. 아니, 원한다. 적어도 강아지가 카톡이라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은 대부분의 견주들이 한 번씩 했을 거다. 두툼한 큰 발로 키보드를 두들길 덕팔이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너무 심각하게 귀여워서 심장에 큰 무리가 온다. 

우리 덕팔이는 이런 사랑스러운 말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1. 불만 있으면 있다고 말을 해


덕팔이는 뭔가가 적절하지 않으면 불만을 표출한다. 불만에 가득한 눈빛으로 내 손을 벍벍 긁고는 하는데

손이 보통 큰 아이가 아니다 보니, 아픔의 강도가 장난 아니다. 


쓰다듬이 모자라도 벍벍

아침에 늦잠을 자도 벍벍

먹을게 모자라도 벍벍


덕택에 내 손등과 발등은 늘 벌건 스크래치 자국과 상처투성이. 차라리 말로 해 '한입만 더 달라고!'

아침부터 옆집 출근 소리에 우렁차게 짓는 덕팔이 ‘에~~~ 오’


#2. 짖지 말고 반갑다고 말을 해


우리 아파트에서 덕팔이는 말이 많이 나오는 강아지다. 좋은 일로만 말이 많이 나오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20층 짖는 검은 개로 소문이 나있다.  누군가를 만나면 분명 행동은 '반가워! 나 좀 만줘봐!' 이거인 거 같은데

꼬리를 치는 동시에 컹컹댄다. 짖기 대장 덕팔이의 서투른 접근방법은 웬만한 사람을 놀라게 해서 도망가게 하기 일수. 소심한 강아지들도 모두 도망간다. 덕팔이는 언제쯤이면 성숙한 방법으로 천천히 다가가서 '안녕'을 외칠 수 있을까?

애미야 나 어제 라면 먹고 자서 눈이 부었다, 냉수 한잔만 다오

#3.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


덕팔이는 조금만 불편해도 엄청 낑낑대는데, 도저히 그 아픈 곳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어서 찾아 헤매느라고 고생이 많다. 아무리 아파도 내색조차 안 해서 주인을 걱정시키는 강아지들도 있는가 하면, 덕팔이처럼 조금만 다쳐도 '아이고 개 죽어요!!!' 하면서 표현하는 아이들도 있다. 다행히도 후자 쪽이 주인의 입장에서는 좀 더 편한 편. (병원에 가면 되니까?)


정말 웃긴 건, 집에서 '나 죽네!!! 나 죽어!!' 소리 지르는 덕팔이가 병원 앞에만 가면 아주 활발해진다는 것이다.

돈 많이 깨져도 좋다, 네가 건강만 하다면. 근데 아프면 어디가 아픈지 말 좀 해줄래?

입술을 줬으니 말을 해다오!!!

만약 기술의 발전으로 덕팔이가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아마 나에게 가장 많이 하는 소리는 잔소리가 아니었을까...?


'배변패드 갈아줘라', '사료 맛없다 바꿔줘라', '일찍 일찍 좀 다녀라~' 

'주사 싫다, 병원 안 간다' 


흠.....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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