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어젯밤 솔이는 밤새 뒤척였다. 하룻밤 사이에 목이 잠기더니 다음 날엔 코가 막히고 오늘 새벽엔 열이 올라 시든 배춧잎처럼 축 늘어졌다. 아이들은 조금만 힘이 나도 방방 거리며 뛰놀고 조금만 힘이 없어도 풀 죽듯이 가라앉는다. 솔이는 일단 컨디션이 안 좋으면 말이 없어진다. 수다쟁이 윤솔이가 조용하다.
그런 윤솔이가 지난날 내게 던진 몇몇 말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솔이랑 같이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둘째 뚜뚜는 버선발로 뛰쳐나와 '엄마, 엄마'를 불러댄다. 어떤 날엔 빠빠이 하며 엄마랑 잘 헤어지기도 하지만 어떤 날엔 엘리베이터 문이 닫기는 순간까지 울부짖으며 엄마를 애타게 찾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이 느껴져 엘리베이터 거울을 차마 보지 못하고 서둘러 길을 나선다. 그 순간엔 오직 그래 이왕 자식 눈에 눈물 나게 한 거 가서 열심히 일해서 돈이나 많이 벌어오자, 시간 허투루 쓰지 말자 이런 다짐만 하지 내 옆에서 내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을 솔이는 잘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곤 빨리빨리, 유치원에 늦겠다며 서둘러 시동을 건다.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그래도 솔이는 등 하원이며, 요가원 키즈 수업이며, 여전히 내가 끼고 있는 시간이 많으니 상대적으로 둘째 뚜뚜를 가엽게 여기는 내 마음 한편이 들켜버린 걸까. 근래 솔이는 뚜뚜에 대한 질투가 커졌고, 질투를 느끼는 횟수도 잦아졌다. 질투를 느끼는 상황도 지극히 섬세해졌고, 그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도 너무 날카로워 눈물 흘리는 솔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역시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을 느낀다. 자식의 고통은 부모의 숨을 멎게 한다.
엄마의 사랑을 모조리 빼앗아 가는 뚜뚜에 대한 미움일까, 자기를 일등으로 사랑한다는 엄마의 말이 거짓말같이 다가와서 일까. 대체로 솔이는 엉엉 운다. 언젠가 무슨 이유로 시작된 건지는 몰라도 뚜뚜는 내 등에 업혀 떨어지질 않고, 솔이는 내 품에 안겨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를 사이에 두고 뚜뚜는 누나 머리를 때리고 잡아당기고, 솔이는 오기 가득 찬 얼굴고 넌 둘째야, 내가 첫째야 라는 말을 날카롭게 쏘아붙이며 불안해했다. 그러다가 너무 슬펐는지 자기 방에 들어가 엉엉 울었다.
둘째 뚜뚜를 달래고 솔이 방에 들어가니, 솔이가 말했다. 방금 전에 소원 가방에 소원을 빌었다고. (그날 새로 생긴 가방이 갑자기 소원 가방으로 변신) _ 내일 아침에 뚜뚜가 없어지게 해 달라고. 땅 속으로 사라져 두더지에게 쫓기게 해 달라고.
그리곤 도대체 뚜뚜를 왜 낳았냐고, 뚜뚜가 어른들의 사랑을 다 빼앗아 간다고 속상해했다. 나는 무슨 말로 맞장구를 쳐야 할지 몰라 그냥 '그러게'하며 솔이를 안아주려 했더니, 엄마 아빠가 사랑해서 뚜뚜를 낳았잖아. 도대체 왜 낳았냐고 라며 너무 당돌하게 물었댔다. 여전히 내 대답은 '그러게'다. ( 깊은 한숨 )
또 한 번은 이것도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는 몰라도, 이번에는 윤성이도 대성통곡을 하고 솔이도 대성통곡을 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솔이는 뚜뚜에게 넌 둘째야, 내가 첫째야 그러니까 엄마는 내 거야라고 말했다. 내가 너 때문에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고 하기도 했고 가슴에 큰 바위 천 개가 있는 거 같다고도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옆에 있던 친정엄마는 내가 그 심정 안다는 말을 하시며 나를 쳐다보셨다. ( 깊은 한숨 )
그리고는 나를 향해 말했다. 윤성이는 백설공주, 자기는 마녀, 엄마는 거울이라고.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니?' 물으면 엄마는 항상 백설공주라고 말한다고. 그게 윤성이라고. 이 말을 듣고 순간 완전한 패배감에 잠시 젖었다가 정신을 차렸다.
......
이 글을 쓰며 그때의 일을 생각하니 다시 정신을 못 차리겠다. 무튼 이 날은 여차여차 눈물 닦이고 양 겨드랑이에 좌윤 솔, 우윤성을 끼고 잠들었다.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세상 둘도 없이 사이좋게 지내면서 한 번씩 회오리가 몰아칠 때면 인정사정없이 서로를 할퀴고 내 마음을 후벼 파는데, 너네들 마음은 오죽하랴.
그러게 엄마는 도대체 왜 자식을 둘이나 낳았을까 (방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