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유치원 가는 길에 까치를 다섯 마리나 봤다. 세 마리가 나무에 앉아 있었고, 곧 한 마리가 날아왔고 그 네 마리를 지나치며 또 다른 한 마리를 보았다. 오늘은 분명 좋은 일이 다섯 가지나 생길 거야 라며 기대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날은 아이들에게 평소보다 '빨리빨리 하라'는 재촉을 덜 했고 아침밥도 자율적으로 든든하게 먹어서 나도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분명 나에게도 좋은 일이 생길 거 같았다.
연후는 왼손잡이다. 연후는 솔이가 좋아하는 유치원 같은 반 남자 친구이다. 그 친구에게 지난여름쯤 고백했다가 잘 안 됐지만 여전히 연후는 솔이를 웃게 하는 좋은 친구다. 이번에 자리를 바꾸면서 방학이 끝날 때까지 둘이서 짝꿍이 됐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얼마나 좋을까. 새 지우개를 선물 받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한 얼굴이다. 그런데 어제 아침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연후가 왼손잡이라서 식사시간에 둘이 팔이 부딪힌다며, 선생님이 짝을 바꾸셨다고 했다. 혼자 앉아 있던 다른 친구가 윤솔이 옆으로 오고 연후는 혼자 앉는 자리로 갔다고. 얼마나 아쉬울까.
그 말을 들으며, 그랬구나 어쩔 수 없지라고 혼자 생각하는 찰나 솔이는 무심하게 말했다. ' 아니 그럼 나랑 연후랑 자리를 바꾸면 되지 '
아차차! 맞다. 그러면 돼지, 그러면 팔도 안 부딪히고 연후랑 계속 짝도 할 수 있는데 선생님이 그 생각을 못하신 걸까? 왜 자리를 바꾸셨지? 단순히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받아들이려고 하던 찰나, 연후랑 헤어진 게 얼마나 아쉬웠으면 곰곰이 생각해 내 저런 말을 할까. 나 역시 아쉬우면서도 반가웠다. 그리고 솔이에게 선생님께 지금 마음을 말해보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 솔이의 마음은 이러이러한데 이러이러한 방법도 있으니, 다시 연후랑 앉고 싶다고. 그냥 솔직하게 말해보라고 했다. 사실 이렇게 말하고도 솔이는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자기표현이 분명한 아이지만 솔이에게도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
까치를 다섯 마리나 본 어제 하원 길에서, 솔이가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나 유치원에서 거의 처음으로 제일 많이 울었다?' 에엥. 무슨 일일까?
엄마가 말한 대로 선생님께 연후랑 앉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선생님이 화를 내시며 특정한 친구의 이름만 골라서 앉겠다고 하는 건 안된다며 화를 내셨다고 한다. 그래서 거의 처음으로 유치원에서 많이 울었다는데 아유 속상해라. 저렇게 큰 용기를 냈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다니 ㅠ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들고 안쓰러웠다. 한편으로는 그 말을 진짜 꺼낸 솔이의 용기에 놀라기도 해서, 얼른 마음도 풀어줄 겸 말을 꺼냈다. 많이 속상하겠지만 솔이의 마음을 그렇게 용기 있게 말한 건 칭찬해주고 싶다고. 아주 잘했다고. 그리고 솔이가 겁이 나서 선생님이 화내시는 것처럼 느껴졌겠지만 선생님은 아마 단호하게 유치원의 규칙을 말씀해 주시려 한 거였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솔이는 내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알아, 나도 알아]라고 말했다.
좀 전에 울었다는 말을 할 때와는 새삼 다른 톤으로 다 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운전하느라 얼굴을 못 보는데도 다 느껴지게 웃는 얼굴로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그 일 이후 뽑기를 해서 다시 짝꿍을 정했는데 정말 다행히도 다시 연후랑 짝이 되었다고 한다. 방학이 끝날 때까지 초등학교에 갈 때까지 연후랑, 왼손잡이 연후랑 짝꿍이 됐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보니 내 얼굴에도 함박꽃이 핀다. 한 편의 짧은 드라마를 접한 것처럼 그 서사에 감동까지 밀려온다. 요 녀석 내가 이렇게 말할 줄 알고 이야기를 이렇게 꺼낸 거였구나. 엄마의 격려를 기다린 거였구나. 지금 글을 쓰면서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실실 웃게 된다. 요 똘똘한 녀석 같으니. 그렇지만 정말 다행이다. 솔이에게 좋은 경험이 생긴 듯 해 뿌듯하다. 솔이가 또 자란 듯 해 대견하다. 그리고 마무리로 오늘 일을 축하하며, 저녁밥반찬도 없으니 집 앞 초밥집에서 외식을 하기로 했다. 이것마저 너무 좋다.
또 생애처음으로 어린이초밥을 주문해 오물오물 먹으며, 아빠한테도 무용담을 들려주 듯 오늘의 이야기를 했다. 남편은 무슨 복사 붙여 넣기 한 듯 내가 한 말을 토씨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솔이에게 말해주었다. 우리 딸의 용기를 칭찬하고, 오늘 일을 축하한다고. 아빠한테 말할 땐 나한테 한 번 연습이라도 한 듯 더 감질나게 강약강약 조절하며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솔이의 뒤통수가 야물다 못해 알밤같이 사랑스럽다. 귀여운 것.
이 글을 적으며 나도 이런 경험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뭐 시어머니 한 테라던가 남편한테 라든가 ㅋㅋㅋ 용기 있게 마주하는 연습. 내 경험도 지금처럼 기록하는 날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의 글은 여기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