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이직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붙으면 간직하고, 떨어지면 치킨 사 먹겠다던 남편의 면접비 봉투가 사라졌다. 싱크대 선반 위에 있어서 설거지할 때마다 남편의 글을 가만히 읽었었는데 언젠가 없어졌다. 그 안에 있던 이만 원은 어디로 갔을까?



몇 달째 남편은 이직 준비 중이다. 남편 생애의 세 번째 직장을 찾고 있다. 첫 회사는 외삼촌의 회사였는데 낙하산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진 못했지만 나름 첫 사회생활을 잘 시작했고 열심히 다녔다. '일머리'라는 말을 자주 했고, 열정적으로 회사를 다니는 남편을 보며 회사를 저렇게 좋아할 수도 있구나 싶기도 했다. (나는 조직 생활과 거리가 한 참인 사람이다) 그랬던 회사가 문을 닫았고 생애 처음 실업 급여를 받으며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로 이직했다. 덕분에 서울로 이사를 왔고, 양복 입고 출퇴근도 한다. 이 회사에서도 남편은 '일머리'라는 단어를 자주 썼고, 열정적으로 일을 했고 가족에게 미안해하면서도 퇴근하고도, 주말에도 종종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런 남편을 가만히 바라보면 남편이 회사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몸 담고 있는 회사를 아끼고 사랑하는 애사심이 가득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이유도 잘 알고 있다. 남편은 회사 생활을 하며 스스로 성장했고, 힘들지만 더 단단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안 그런데 회사 생활만 하면 부산사나이가 되어 늘 전투적이다. 출근도 제일 먼저 하고 퇴근도 제일 마지막에 한다. 출근길 지옥철이 싫다고 매일 첫차를 타고 출근하는 허니를 보며 꼭 저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매 달 따박따박 이체되는 허니의 월급을 받고서 고개를 숙인다. 열심히 일해줘서 고맙다고. 이런 돈은 살면서 한 번도 벌어본 적이 없는 돈이라고, 우리 남편 최고라고, 물개박수를 치며 진심을 다해 고마움을 전한다.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책임감 강한 사람이라는 걸 사실 결혼 하기 전엔 몰랐다. 그저 따뜻한 사람이기에 함께 걸었을 뿐인데 알고 보니 알짜였네? ㅎㅎㅎ






그런 애사심 강하고 기특한 남편이 이직을 준비 중이다. 아마 비전공자가 가지는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길을 찾으러 나선 것이겠지. 그래서 요즘 고군분투 중이다. 스트레스도 많고 회사 상황이 좋지 않으니 일도 몰리거나 복잡한지 안 그래도 엉덩이가 크고 무거운데 하루 온종일 쉬지도 못하고 앉아만 있다가 온다고 한다. 수다쟁이 남편은 그 스트레스를 나한테 말하며 좀 풀어야 하는데 우리 생활 패턴이 아이들 중심이 되다 보니 대화하기가 쉽지 않다. 말하다 끊기고 집중도 안되고, 나는 나대로 바쁘고. 말 그대로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의 엄마와 아빠처럼 살고 있다.


그런데 다행히 이번 주는 아이들이 시골 할머니댁에 내려가있다. 어제저녁 남편과 근처 쇼핑몰에서 만나 같이 카레라이스를 먹으며 그동안 못 다 나눈 대화의 문을 열었다. 나는 들어주기만 하면 되니 카레오므라이스가 나오자마자 먹기 시작했고, 남편은 자리에 앉자마자 이야기를 시작해 카레오므라이스가 나오고 난 뒤에도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결국엔 내가 한 그릇을 다 비우고서야 남편은 그제야 첫 술을 떴고 그런 남편을 토닥토닥여줬다. 바삭바삭한 크로켓 튀김이 카레에 담겨 눅눅해졌는데도, 남편은 할 말이 많이 남아있나 보다. 황지사장 이야기, 정사빈이 이야기, 대만 사장 이야기, 손대리 연봉이야기 등등. 몇몇의 이직 실패를 하고 지금의 회사를 다르게 바라보는 허니의 눈빛을 느낀다. 그 안에서 발버둥 치는 내 남편 이야기.







사실 나는 들어도 뭐 잘 모른다. 그렇지만 알고 모르고 뭐가 중요할까. 남편에게는 그저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건데. 카레 오므라이스를 다 먹고 아래층 서점에 들러 이것저것 둘러보다 집으로 왔다. 남편과 차에서 라디오 듣는 것도 참 오랜만이네 허허 웃으며 :)



남편도 안다고 했다. 힘든 이 시간들이 헛된 시간이 아니라는 걸,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걸 안다고 했다. 그러니 정말 다행이다. 남편의 이직, 또는 지금 이 회사에서의 변화도 남편을 단단하게 해 주고 있다는 걸, 우리 둘 다 알고 있어서 다행이다. 응원한다 김허니.



아이들 없는 수요일, 세 번째 저녁이다. 오늘은 뭘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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